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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Sep 01. 2022

22’07 전남기행 윤선도 어부사시사 명상길을 걷다

이렇게 고된 명상길이 있었던가


나는 여행 중 트래킹을 하는 것 좋아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트래킹은 빠질 수 없었다. 그리고 보길도는 워낙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기에 기대가 컸다. 보길도의 유명한 등산 코스로는 섬의 중심에 있는 적자봉을 중심으로 한 등산로들이 있다. 적자봉으로 오르는 다양한 코스들이 있는데, 후기 사진들을 보니 크게 당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윤선도 어부사시사 명상길이란 트래킹 코스를 알게 됐다. 이름부터 매력철철이었다. 2019년 고산 윤선도 선생님 거닐었던 부용동 원림의 옛길을 복원해 만든 길이다. 2020년 엄홍길 대장이 어부사시사 명상길을 걷는 영상이 완도군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윤선도 명상길은 예송리(예송리 해수욕장)에서 보옥리(공룡알 해변)를 잇는 길로, 예송리에서 시작해 전망대까지 1km, 전망대에서 큰구미까지 2.1km, 큰구미부터 보옥리까지 2.1km로 총 약 5.2km에 달한다. 사실 5.2km는 평지길로 치면 한 시간 이내로 오갈 수 있기에,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트래킹 길에 올랐다.

보길 윤선도 어부사시사 명상길 코스. 이름과 전망은 끝내주는 코스다.

보길 윤선도 어부사시사 명상길이란 귀여운 이정표 팻말을 보며 기분 좋게 출발을 했는데,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상치 않은 숲의 기운을 느꼈다. 초반 몇 미터는 길이 잘 닦여 있었는데, 초입을 지나니 험한 숲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트래킹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즐거움이 무서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길이 험한 것도 있지만, 지난 코로나 2년 동안 발길이 뜸해져 그런지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방문객이 적은 작은 섬인 데다, 최근 조성된 트래킹 코스니 그럴 만도 했다. 좁은 숲길에는 거미줄이 빼곡해 나뭇가지로 거미줄을 치며 산행을 해야 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지만, 너무 날 것의 자연이라 당황했다. 거미줄보다 무서운 건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면 해가 쨍쨍한 대낮인데도 등장하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인적이 없어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것도 무서운 포인트였다.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윤선도 선생님이 정말 이 길을 걸으신 게 맞는지…

보길 윤선도 어부사시사 명상길 입구
명상길에서 날 것의 자연을 만나다. 사실 정말 험난한 구간은 걷느라 바빠 사진도 못 찍었다.

코스의 중간 지점까지만 해도 서로 씩씩한 척을 하느라 말없이 걸었는데, 코스의 중반쯤 되어 계속되는 험한 산세에 지쳐 우리는 무서워 죽겠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모기의 습격이나 풀독은 이미 해탈한 지 오래였고, 노루 똥인지 멧돼지 똥인지 알 수 없는 흔적을 보며 산짐승의 급작스런 습격에 대한 공포 시나리오를 쓰며 빨리 이 숲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물론.. 종종 빼어난 경치에 위로받은 것도 사실이다. 산을 타면 탈수록 중간중간 마주하는 남해바다의 푸른 절경을 잊을 수 없긴 하지만, 트래킹의 공포가 함께 떠오른다..ㅋㅋ 보길도 앞바다에는 커다란 김 같은 물체가 있는데, 바로 양식장이다. 완도는 전복, 김이 유명한데, 전국 전복 생산량의 60% 이상이 완도에서 생산될 정도로 전복 양식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바다 곳곳에서 흡사 거대 김과 같은 양식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친구에게서 들은 바로는 보길도 주민의 대다수의 주업이 양식업이고 식당이나 민박은 부업이기 때문에 육지와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 했다..ㅋㅋ 손님이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고. 이해가 간다 전국 전복 생산의 60%를 주무르는 상인들에게 어느 손님이라고 무서울까.

명상길에서 마주한 보길도 바다 전경
양식장이 가득한 보길도 앞바다
길을 헤메다 만나 정말 반가웠던 김우근님의 산행리본. 감사합니다!(왼) 잠시 쉬고있는 나(중간).

걷고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나오지 않아 절망했다. 중간에 길을 헤매느라 진땀을 빼고, 분명 5km라고 했는데 트래킹 시간이 2시간이 훌쩍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 터널 너머로 종착지의 공룡알 더미가 보였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얼마나 반갑던지. 공룡알 해변의 자갈은 정말 영화 속에서 본 공룡알처럼 생겼다. 공룡알 해변에 한 번도 와 본 적도 없는데, 보자마자 이게 공룡알이구나를 알 수 있었다.  출발지점부터(예송리) 도착지점(보옥리)까지 약 3시간이 걸렸다. 안내 표지판에는 5.2km라고 했지만, 직선거리인 것 같고, 실거리는 약 8km 정도 되는 것 같다. 애플워치 등산기록에 7.88km, 2시간 48분으로 되어 있는데, 잠시 휴식을 하고 산행을 재기하면서 재시작 버튼을 안 눌러 십 분 정도가 누락됐다. 이것까지 고려하면 8km 정도 된다고 본다. 5km짜리 가벼운 명상길로 생각하고 갔다가 큰코다치는 길이다. 보옥리에서 콜택시를 불러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택시 기사님께서 등산을 했냐고 물으셔서 바다를 끼고 트래킹을 했다고 하니 거기를 어떻게 왔냐면서 공수부대가 훈련하는 장소라고 말하셨다. 기사님이 꽤 놀라 하셨다. 네.. 기사님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걷고 또 걸어도 멀고 너무 멀다
보길 윤선도 명상길의 종착지인 보옥 공룡알해변
애플워치에 기록된 명상길 트래킹 정보.

보길 윤선도 명상길의 종착지인 공룡알 해변은 보길도 최남단의 보옥리에 위치해 있다. 보길도 면내에서부터 차로 약 20분 정도 걸리는 이 마을은 정말 평화롭고 곳곳에 아기자기함이 가득하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콜택시를 기다리면서 담은 보옥리 마을 사진을 공유하면 글을 마친다.  

보옥리 풍경
보옥리 가옥들은 정원이 하나같이 참 잘 꾸며져 있었다.
선인장 넝쿨(중간)
햇볕이 빨래 말리는 풍경이 참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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