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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Aug 13. 2022

22’07 전남기행 해남에서 먹은 것들

해남의 코스요리

나는 해남에 사는 친구가 있다. 해남이 고향인 이 친구는 특이하게도 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유학을 와 친구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친구는 해남의 모 은행에 취직하여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대학교 시절 방학에 종종 친구를 만나러 해남에 내려갔다. 친구는 해남에 내려갈 때마다 늘 유명 현지인 맛집에 데려가 날 놀래켜줬다. 30대를 넘어가면서 바쁘고 멀어 해남에 자주 내려가지 못하고, 친구가 수도권으로 교육을 종종 오면서 한동안 해남에 가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하다, 이번 여름휴가에 여수에 가는 김에 친구네에 들리게 됐다. 이번 해남 기행에서도 정말 맛있는 식사를 경험하고 왔다.


1. 해남의 터줏대감 <토담>

이 집은 친구들 사이에서 겉절이 맛집으로 기억되는 집이다. 10년 전쯤 해남에 갔을 때, 친구가 데려간 집인데, 배추 겉절이 너무 맛있어 7번인가 리필을 했다. 보다 못한 친구가 동네 창피하다고 그만 좀 먹으라고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데 이 집에 올해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고 하여 이번에 꼭 방문하기로 했다. 토담은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 깡패다. 읍내 뒤쪽에 위치한 토담은 한옥집을 개조해서 운영하는 식당인데, 입구부터 방 하나하나 정겨움이 느껴진다. 포털 사이트에는 12시부터 운영이라고 되어 있어 시간에 맞춰 갔는데, 이미 식사를 하는 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픈 시간이 대중이 없으니 미리 전화를 해보고 가도 좋을 것 같다. 토담에는 룸과 야외평상 자리가 있는데, 야외평상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야외에서 한옥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먹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네이버 마이박스에 찾은 10년 전의 토담의 모습(왼) 삼계탕 집인데 겉절이가 너무 맛있어 겉절이 사진 밖에 안 남아 있다..ㅋㅋ(오)
토담 입구(왼, 중간) 토담의 평상자리(오)

토담에서는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삼계탕 하나다. 삼계탕 3마리를 시키니 대망의 겉절이가 나왔다. 된장 베이스로 추정되는 이 배추 겉절이는 독특한 맛인데 정말 맛있다. 생배추의 달달한 맛에 짭조름하고 고소한 양념이 버물여져 정말 맛있다. 근데 이 날은 겉절이보다도 깍두기를 재발견한 날이다. 깊은 맛은 아닐 수 있는데, 적당히 익고 시원한 게 삼계탕이랑 정말 잘 어울렸다. 삼계탕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채로 나온다. 밖에서 파는 삼계탕은 국물이 걸쭉해서 싫어하는데, 이 집은 국물이 정말 맑고 시원하다. 영계를 쓰는데, 압력솥에 푹 고아서 그런지 퍽퍽한 부분이 없이 정말 부드럽다. 맛있는 삼계탕 집이다. 잘 먹는 성인이라면 양이 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밥 말아먹으면 충분히 배부르다. 이 맛있고, 멋지기까지 한 집이 올 해로 닫는다니 너무 아쉽다. 절친과 올 겨울 폐업 전에 꼭 다시 들리기로 약속했다.  

토담 내부(왼), 토담의 기본 밑반찬(오)
토담 삼계탕(13,000원)


2. 해남읍 성내식당

신선한 한우를 다양한 조리법으로 만나 볼 수 있는 집이다. 친구가 데려가 쫄래쫄래 쫓아갔는데, 알고 보니 예약을 미리 안 하면 맛보기 힘든 엄청난 맛집이었다. 성내식당은 해남과 광주에 있는데 해납읍 성내식당이 원조다. 이곳은 생고기 샤브샤브로 유명한 집인데, 이 날 어쩌다 보니 육사시미부터 시작해 샤브샤브, 숯불구이, 갈비탕으로 이어지는 소고기 코스를 먹었다. 식당이 전부 룸으로 되어 있어 굉장히 프라이빗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니 육사시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고기가 정말 싱싱했다. 육사시미를 좋아하는 나는 단골 정육점이나 한우전문점에서 종종 육사시미를 사 먹곤 하는데, 이곳은 지금껏 먹은 육사시미와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종종 고기를 잘못 손질하면 너무 질겨서 식감이 떨어지는데, 성내식당의 육사시미는 정말 부드럽고 고소했다. (이곳에서는 육사시미를 생고기라 부른다.)

생고기라 불리는 육사시미(35,000원)

육사시미를 다 먹을 때쯤 된장 샤브샤브가 세팅되었다. 샤브샤브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샤브샤브 집에 간대서 속으로 적잖이 실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내식당의 샤브샤브는 좀 달랐다. 보통 샤브샤브에는 차돌박이 같이 얇은 고기를 사용하는데, 두툼한 생고기가 나왔다. 된장 육수에 배추와 각종 야채가 끓기 시작하면 소고기를 넣는다. 중요한 건 샤브샤브이기 때문에 고기를 너무 오래 익히면 안 된다. 살짝 익었을 때 건져야 고기의 야들야들함을 느낄 수 있다. 비주얼도 비주얼인데 소고기 샤브샤브를 먹는 성내식당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었다. 잘 익은 배춧잎 위에 김 장아찌를 올린 후 살짝 익은 고기를 올린 다음 특제 파 양념을 올려 먹는다. 고기의 고소함에 배추의 개운함, 파 양념의 짭조름함,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함 김 장아찌의 향이 더해져 감칠맛이 엄청나다. 점심식사 후 물놀이를 하며 간식을 너무 많이 주워 먹어 많이 못 먹는다고 했는데, 한우 두 판이 순식간이 사라졌다..ㅎㅎ 샤브샤브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남은 고기육수에 우동사리를 말았다. 나는 먹지 않았다. 우동면을 안 좋아하기도 했고, 나에게는 사실 다른 계획이 있었기에 우동으로 배를 채울 수 없었다. 고기가 너무 신선해서 숯불고기를 맛보지 않고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 은근슬쩍 숯불고기 파티원을 모집했는데, 다들 한입은 먹는다기에 숯불구이를 시켰다. 샤브샤브와 숯불구이를 둘 다 세팅하는 게 사실 식당 입장에서는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라 좀 눈치가 보였지만, 해 주신다 하여 숯불구이를 맛볼 수 있었다.

한우 된장샤브샤브(1인분  23,000원)

배가 이미 많이 부른 상태라 2인분을 시켰다. 불이 잘 오른 숯불에 마블링이 환상적인 생고기가 나오니 다시 침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분명 다들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고기가 익기가 무섭게 철판에서 사라졌다..ㅋㅋ 이 집은 샤브샤브가 유명한 집이지만, 꼭 숯불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만약 나에게 생고기 샤브샤브와 숯불구이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고민 없이 숯불구이를 선택할 것이다.(물론 이건 내가 샤브샤브를 원체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숯불구이가 넘사벽으로 끝내준다..) 숯불 열기에 육즙이 쓱 올라온 한우는 정말 고소하고, 양념장 없이도 맛이 좋다. 고기를 다 먹고 나니 미니 갈비탕이 나왔다. 아마 숯불구이에 나오는 식사메뉴 같다. 마지막엔 고기에 취해 사진도 못 찍었는데, 갈비탕이 진짜 맛있었다. 고기를 푹 고았는지 전혀 질기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먹다 보니 의도치 않게 한우 코스요리를… 한우 식당이기에 가격대가 있는 식당이지만, 고기 퀄리티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말 맛있는 한우 코스를 대접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해 본다.  

숯불구이(1인 35,000원)


3. 일미정 해남  코스요리

해남에는 닭요리촌이 있다. 해남 연동리라는 마을에 가면 닭 코스 요리 집 몇 개가 줄지어 있다. 해남 닭 코스요리는 토종닭 한 마리를 잡아 부위별로 다양하게 요리하는 코스요리다. 닭 코스요리는 닭 사시미로 시작해, 닭구이, 닭고기 주물럭, 닭백숙, 닭죽이 순서대로 나온다. 사실 이 날 가장 기대했던 건 닭 사시미였는데, 아쉽게도 여름철이라 식중독 문제로 닭 사시미는 안 파신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겨울을 기약했다..ㅋ 처음 나온 건 닭구이요리였다. 닭발, 모래집, 날개, 목이 노릇하게 구워져 나왔다. 기름이 쪽 빠지고, 껍질이 바삭바삭하여 맛있었다. 요즘 후라이드 치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닭 구이(왼), 닭 주물럭(오)

닭 코스의 메인인 닭 주물럭은 뼈를 발라 양념장에 매콤하게 재운 요리이다. 제육볶음과 비슷해 보이지만, 닭고기로 요리해 더 담백하고 야들야들한 맛이 있다. 사진상으로 양념이 쎄 보이는데, 쌈 채소에 싸 먹으면 간도 적당하고 정말 맛있다. 마음 같아서는 남은 양념장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벼 먹고 싶었지만, 나는 공식적으로 체중감량 중이었기에 거기까지는 참았다..

닭 코스 요리의 메인인 닭고기 주물럭

주물럭을 다 먹을 때쯤이면 닭백숙이 나온다. 양이 상당하다..ㅋㅋ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또 넘어간다. 닭백숙은 평소 시판되던 닭에 비해 좀 질기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토종닭이 육계보다 씹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토종닭은 육계보다 콜라겐 함량이 높아 육계에 비해 식감이 있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씹다 보면 육계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고소함과 담백함이 올라온다. 닭백숙을 먹고 나면 마지막으로 녹두 닭죽이 나온다. 개운하니 입가심 식사로 안성맞춤이다. 닭 코스요리도 신선했지만, 주물럭이 정말 맛있었다. 맛보지 못한 닭 사시미를 먹으러 겨울에 꼭 다시 와야겠다 다짐해본다.

일미정 식당 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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