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 시드니에서 먹은 것들

by pig satisfied

이 포스팅은 올 해의 마지막 글이자 호주 여행의 마지막 기록이다. 호주 여행 중 시드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가장 마음에 드는 도시였는데, 정작 여행 일기장에는 수산시장 찬양과 스테이크 맛있었다는 얘기 밖에 없다..ㅋㅋ 배부르기만 한 돼지는 아니길 바라는 소망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는데, 태생적으로 배부른 돼지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래서 시드니에서 먹은 것들로 호주 여행 포스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시드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수산시장과 비밀스러운 스테이크 집이다.


1. 시드니 피시마켓

시드니 피시마켓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수산시장을 두 번이나 갔다는 점에서 이곳은 강추를 안 할 수가 없다. 해산물 러버라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다. 한 번은 수산시장에서 직접 먹었고, 한 번은 음식을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숙소에서 취식이 가능하다면 포장해서 먹는 걸 추천한다. 시장 안에도 식사할 수있는 공간이 있지만, 갈매기들이 매우 적극적이라 편안하게 먹기가 쉽지 않다.

수산시장 안에는 원재료뿐만 아니라 조리된 음식도 판다. 냄새와 비주얼이 너무 강력해서 배고픈 상태로 들어가면 굉장히 위험하다. 이 날 배가 고팠던 나는 새우, 문어 꼬치, 깔라마리, 랍스터와 가리비 구이까지 다양하게 샀는데, 결론적으로 굴이 제일 맛있었다.

시드니 수산시장 내부
시드니 수산시장에서 먹은 것들

새 때문에 조금 힘들었지만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러 가는 길에 한 가게에 들어갔는데, 성게알이 너무 쌌다. 색도 연하고 덩어리가 큼지막한 게 평소 한국에서 먹던 성게알의 비주얼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궁금해서 한 통을 사 와서 집에서 먹어봤는데 세상 맛있었다. 보라성게알이라는 품종인데, 알 덩어리가 크고 버터처럼 크리미 한 맛이 특징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보라성게알이 수입이 되고 있었는데, 가격이 두 배 이상이었다. 현지에서 먹으니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일단 너무 맛있었다. 한국에서 보통 먹던 성게알 같은 쌉싸름함은 덜한데, 엄청나게 크리미 했다. 크리미 덕후인 나는 이 성게알 때문에 수산시장에 다시 가게 된다.

성게알을 팔던 가게 내부

성게알과 굴을 정말 질릴 때까지 먹고 싶어서 다시 한번 수산시장을 찾았다. 이 날 비가 오기도 하고, 지난번 시장에서의 식사가 갈매기로 인해 다사다난해서 포장을 해서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내가 고른 메뉴는 더즌 오이스터 두 팩과 성게알 두 팩이다. 첫날에는 다양한 메뉴를 시도했는데, 이 날은 굴에 집중했다. 시드니 수산시장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굴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산지와 크기가 다른 굴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먹을 줄만 알지 굴에 대해 잘 몰라서 구입할 때 상인들한테 어떤 맛이냐고 물어보고 구입을 했다. 직원들이 “브리니하다”, “버터리하다”, "스윗하다" 같은 표현으로 설명해 주는데, 사이즈가 작을수록 굴 맛이 또렷하고 짭짤한 편이고, 크기가 큰 굴일수록 질감이 더 부드럽고 크리미 하다고 한다. 나는 은은하게 달큰한 향이 나고 크리미 한 걸 좋아해서 중간 사이즈의 굴로 골라왔다. 그리고 며칠 전 보라성게알을 산 가게에 가서 성게알 두 팩을 샀다. 사실 성게알과 굴은 나만 좋아하는 메뉴라 나 혼자 다 먹었다고 봐도 된다..ㅋㅋ 무조미 김까지 사서 성게알 성게알 마끼를 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2. 비스테까

브리즈번에 이어 시드니에서도 정말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스테이크 맛집을 찾다가 비스테까라는 식당을 발견했다. 구글맵 평점이 좋아 예약을 시도했는데, 예약이 쉽지 않았다. 출국 전까지도 확인했을 때 디너 타임 예약이 전부 마감이었는데, 시드니에서 머물던 어느 날 운 좋게도 저녁 8시 반에 딱 한 자리가 나와서 갑작스럽게 갔다. 평소라면 저녁식사를 다 마쳤을 시간에 식당을 향했다..ㅎㅎ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식당에 도착했는데, 문은 잠겨있고, 반대편으로 돌아오라는 안내만 적혀 있었다. 안내대로 반대편으로 갔는데도 식당 입구처럼 보이는 문이 보이지 않아 헤맸다. 예약한 시간이 임박해서 진땀을 빼다가 정말 식당 문처럼은 안 보이는 방화문을 열었는데, 거기게 아주 코딱지 만하게 비스테까라고 적혀 있었다.. 문을 열고도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입구가 없는 비스테까(왼), 비스테까 입구(중간), 비스테까 바(오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두운 바 공간이 나왔다. 고기 굽는 냄새도 안 나고, 손님도 없어서 다시 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잘못 온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어디선가 웨이터가 나타나서 예약 여부를 확인한 뒤 음료를 고르고 있으면 자리를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바 뒤편에서 다른 웨이터가 나타나 바 구석의 작은 문으로 데려갔다. 작은 문을 여니 전혀 다른 공간이 나왔다. 홀 중앙에서는 티본스테이크가 오픈 키친 형태로 구워지고 손님으로 가득 찬 식당이 나타났다. 숨겨진 공간에 들어온 것 같아 설렜다.

테이블에 앉자 미리 바에서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우리 테이블은 오픈키친 바로 옆이어서 요리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신나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서버가 와서 휴대폰 보관함을 주며 휴대폰을 제출하라고 했다..ㅋㅋ 사진촬영이 안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식사 중 대화에 집중하기 위한 식당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핸드폰 제출 전 사진을 남겨도 된다고 해서 급하게 오픈 키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비스테카의 오픈키친

그래서 식사 중 찍은 식당내부 사진이나 음식사진은 없다.. 이곳의 메인 메뉴는 티본스테이크로 단일 메뉴다. 셋이 먹기에 900그람이 좋다고 추천해서 그대로 주문을 했다. 전채로는 피자 도우와 문어 샐러드를, 스테이크에 곁들일 사이드는 컬리플라워 구이와 로켓샐러드를 시켰다.

주문 후 식전빵과 함께 촛불이 나왔는데, 그냥 초가 아니었다. 소기름에 소금과 마늘을 섞어 만든 초로, 녹은 촛농기름에 빵을 찍어 먹는 음식이었다. 소기름이 처음엔 조금 무겁게 느껴졌는데, 묵직한 고소함이 인상적이었다. 지방을 워낙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잘 맞았는데, 엄마는 누린내가 난다며 싫어하셨다..ㅎㅎ

식전빵을 먹는 사이, 서버가 눈앞에서 썬 티본스테이크를 가져와 보여주며 컨펌을 받았다. 바로 옆 오픈 키친에서 고기를 써는 장면부터 굽는 과정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정말 어린아이 몸통만큼 큰 고깃덩이를 눈앞에서 주문에 맞춰 썰었다. 썰어진 고기는 손님의 컨펌을 받은 후 숯불과 오븐에서 구워져 나온다. 우리 테이블의 고기 무게는 950g, 가격은 171달러였다.

티본스테이크 특성상 조리 시간이 길어, 전채를 먹고 한참 수다를 떨다가 "대체 고기 언제나와?"라는 말이 나올 때쯤 메인 메뉴가 나왔다. 정말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비주얼이었다. 티본스테이크는 하나의 고기 안에서 두 가지 부위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스테이크로, T자 모양의 뼈를 기준으로 한쪽은 안심, 다른 한쪽은 등심이 붙어 있다. 그래서 부드러움과 씹는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안심 쪽은 담백하고 부드럽고, 등심 쪽은 씹는 맛과 함께 고소함이 있었다. 전채와 사이드 메뉴는 다 무난했는데, 컬리플라워 구이는 유난히 맛있어서 식사 중에 한 접시 더 추가했다.

비스테까의 핸드폰 보관함. 식사를 마치면 돌려받을 수 있다.


이 날도 동생은 생일을 맞이했는데, 미니 티라미수를 서비스로 받았다. 앞에 나온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놀랄 맛은 아니었지만 이태리 식당다운 마무리 었다. 정말 맛있는 한 상이 었는데, 비밀스러운 분위기 덕에 더 기억에 남는 식사였다. 시드니에 또 간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집이다. 일주일 동안 시드니에 머물면서 좋았던 기억 7장과 함께 호주 여행기를 마친다.

keyword
이전 10화23'07 브리즈번에서 먹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