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삼촌이 쓰던 미놀타 카메라가 내 손에 들어왔다. 어릴 적 가족여행을 가면 여행 내내 사진을 찍고 기다림 끝에 나온 사진들을 보던 시간들이 기억났다.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사진기를 들고 다녔다. 첫 수동 필름카메라였다. 잘 나왔을 리가 없었다. 36장 한 롤에 건질만한 사진이 10장도 채 되지 않았다.. 서점으로 달려가 사진 관련 서적을 샀다. 책 몇 페이지 읽었다고 사진이 잘 찍혔을 리 없었다..ㅋㅋ 필름이 문제인가 싶어 비싼 필름도 사봤다. 장비 탓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의 필름을 낭비한 후 미놀타는 지금 장롱에 잘 자고 있다.
작년 호주 여행을 앞두고 필름 카메라가 문득 떠올랐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이라 설레었는지 괜한 사진 욕심이 났다. 미놀타를 가져갈까 고민을 하다가 무겁고 나의 사진실력을 잘 알기에 포기하고, 자동 필름카메라를 챙겼다. 새로 구입한 필름카메라는 코닥 하프 필름카메라다. 이걸로 고른 이유는 일단 디자인이 취저였고, 2개의 연속프레임으로 한 장에 두 개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필름이 36장이면 72장을 찍을 수 있는 거다. 필름 값은 하루하루 오르는데, 내 실력은 여전히 하찮았기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후기를 보니 퀄리티가 좋은 사진들이 많았다. 나의 호주 여행 또한 멋진 사진으로 남을 줄 알았지만 그 또한 오산이었다..ㅋㅋ 자동만 믿고 맘껏 셔터를 눌러댔는데, 필름의 반도 못 건졌다..
호주여행 필름 인화를 통해서 깨달은 건 일단 실내에서는 사진이 안 나온다. 조명이 밝던 안 밝던 안 나온다. 그리고 해가 지면 실외에서도 안 나온다. 그래서 결론은 해가 좋은 낮 실외에서만 사진을 찍는다.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밀라노에 갔다. 밀라노 체류 내내 날씨도 쨍쨍하고, 지난 경험을 살려 전보다 꽤 많은 사진을 건졌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건 사진 해상도가 좀 떨어진다. 추측상 해가 정말 쨍쨍했는데, 너무 높은 감도의 필름을 쓴 것 같다. 감도가 높을수록 어두운 곳에서 촬영 시 사진이 잘 나오는데, 해가 쨍쨍한 야외에서는 높은 감도의 필름을 쓰면 사진이 선명도가 떨어질 수 있다. 호주에서 필름의 반도 못 건진 악몽이 떠올라 감도 400짜리 필름으로 준비해 갔는데, 이번 밀라노 사진이 전반적으로 선명도가 떨어진다.. 이번엔 좀 더 많은 사진을 건진 것에 만족하며 다음 도전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