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g satisfied Mar 31. 2024

23’09 밀라노 필름기록

몇 해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삼촌이 쓰던 미놀타 카메라가 내 손에 들어왔다. 어릴 적 가족여행을 가면 여행 내내 사진을 찍고 기다림 끝에 나온 사진들을 보던 시간들이 기억났다.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사진기를 들고 다녔다. 첫 수동 필름카메라였다. 잘 나왔을 리가 없었다. 36장 한 롤에 건질만한 사진이 10장도 채 되지 않았다.. 서점으로 달려가 사진 관련 서적을 샀다. 책 몇 페이지 읽었다고 사진이 잘 찍혔을 리 없었다..ㅋㅋ 필름이 문제인가 싶어 비싼 필름도 사봤다. 장비 탓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의 필름을 낭비한 후 미놀타는 지금 장롱에 잘 자고 있다.

어느 가을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던 시절
몇 안 되는 나의 마스터피스..ㅋㅋ

작년 호주 여행을 앞두고 필름 카메라가 문득 떠올랐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이라 설레었는지 괜한 사진 욕심이 났다. 미놀타를 가져갈까 고민을 하다가 무겁고 나의 사진실력을 잘 알기에 포기하고, 자동 필름카메라를 챙겼다. 새로 구입한 필름카메라는 코닥 하프 필름카메라다. 이걸로 고른 이유는 일단 디자인이 취저였고, 2개의 연속프레임으로 한 장에 두 개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필름이 36장이면 72장을 찍을 수 있는 거다. 필름 값은 하루하루 오르는데, 내 실력은 여전히 하찮았기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후기를 보니 퀄리티가 좋은 사진들이 많았다. 나의 호주 여행 또한 멋진 사진으로 남을 줄 알았지만 그 또한 오산이었다..ㅋㅋ 자동만 믿고 맘껏 셔터를 눌러댔는데, 필름의 반도 못 건졌다..

코닥 하프 필름카메라(세이지)
슬픈 나의 호주 사진들…

호주여행 필름 인화를 통해서 깨달은 건 일단 실내에서는 사진이 안 나온다. 조명이 밝던 안 밝던 안 나온다. 그리고 해가 지면 실외에서도 안 나온다. 그래서 결론은 해가 좋은 낮 실외에서만 사진을 찍는다.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밀라노에 갔다. 밀라노 체류 내내 날씨도 쨍쨍하고, 지난 경험을 살려 전보다 꽤 많은 사진을 건졌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건 사진 해상도가 좀 떨어진다. 추측상 해가 정말 쨍쨍했는데, 너무 높은 감도의 필름을 쓴 것 같다. 감도가 높을수록 어두운 곳에서 촬영 시 사진이 잘 나오는데, 해가 쨍쨍한 야외에서는 높은 감도의 필름을 쓰면 사진이 선명도가 떨어질 수 있다. 호주에서 필름의 반도 못 건진 악몽이 떠올라 감도 400짜리 필름으로 준비해 갔는데, 이번 밀라노 사진이 전반적으로 선명도가 떨어진다.. 이번엔 좀 더 많은 사진을 건진 것에 만족하며 다음 도전을 기약해 본다.

밀라노 두오모 풍경
밀라노 두오모 풍경. 맨 오른쪽은 밀라노 성당 내부인데 해가 들어온 부분만 절묘하게 사진이 찍혔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갤러리아
밀라노 풍경들
프라다 폰다찌오네에서 찍은 사진들
데센자노의 풍경들
베로나의 풍경들
시르미오네 풍경들
작가의 이전글 23'09 밀라노를 여행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