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관리(2)
가장 기억에 남는 명리학자는 여든의 어르신이었다. 복채도 아주 저렴했다.
그 당시 30대 후반의 아경에게 40대 중반 무렵 퇴사하고 싶은 위기가 오는데, 그때만 잘 넘기면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주에 있는 금(金)은 ‘아들’로 풀이했다. 최악의 명리학자가 <미용사>를 말한 것은 아경의 사주에 있는 오행 중 금 때문이었다. 이렇게 명리학자마다 같은 오행을 다르게 봤다.
어르신은 아들복이 있다면서 아경에게 잘 키우면 판검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녀가 결혼 생각이 별로 없다고 하자, 펄펄 뛰며 화를 내셨다.
혼기 꽉 찬 손녀에게 하듯이 호통을 쳤다.
꼭 혼인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말이다.
옛날에는 마흔다섯에도 애만 잘 낳았다고, 달 밝은 청명한 날에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술 마시고 사고 치지 말고) 아이를 갖는다면 휼륭한 아들을 낳을 거라고 조언했다.
미래의 남편 되는 이에게도 꼭 말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결론적으로 오십이 넘긴 아경은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다.
퇴사는 40대 중반에 참지 않고 했다.
즉, 그 어르신의 조언을 하나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인생은 사주팔자가 아닌 <자유의지(free will)>로 결정된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퇴사를 고민할 무렵 아경은 명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회사를 떠나려는 열망이 커져만 가는 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았다.
왜 그 어르신이 그렇게 말했는지 말이다.
40대 중반 아경은 <자신>과 <명예&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었다.
알다시피 아경은 그때 자신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아경은 자신의 사주팔자를 완벽하게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돈 몇만 원 주고 30분 남짓 상담해서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둘러싼 사람들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명리학의 사주팔자는 <미래>를 점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타고난 성향>을 알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나침판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았다.
타고난 운명(運命)이라는 것을 해석해봐도 그랬다.
운(運)은 ‘운전하다’의 뜻이고 명(命)은 ‘목숨’, ‘운’, ‘운수’를 의미했다. 즉, 자신의 ‘삶(목숨)’ 그리고 ‘운’을 ‘운전하다’ 또는 ‘운영하다’로 볼 수 있다.
어떤 명리학자는 자신의 판단과 의지가 7이고, 타고난 것이 3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좋은 사주와 나쁜 사주는 없었다. 타고난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얼마나 잘 운영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아영은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를 파악했다.
사람은 출생연월일에 따라 오행을 타고 난다. 나무 목, 불 화, 흙 토, 쇠 금, 물 수이다.
맞다. 일주일에서 해(일)과 달(월)을 뺀 것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하늘의 별을 보고 인간의 운명을 점쳤다. 그리고 그 순간 땅의 기운(계절)도 함께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타고난 오행 중에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우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잘 사는 방법이다.
아경은 사주 상 <수(水)>, 물의 기질을 타고났다. 그중에서도 바다나 호수를 의미하는 <임수>다.
그녀의 성향은 이것을 중심으로 나머지 오행 목(木), 화(火), 토(土), 금(金)의 영향을 받았다.
다행히도 아경은 치우침 없이 오행을 그럭저럭 타고났다.
명리학의 어려운 것은 건너뛰고 아경은 자신의 사주팔자에 근거한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만들었다.
너무 너무 많아서, 딱 3개만 추려보았다.
문제점 1) 생각이 너무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머릿속은 난리 블루스를 친다.
바다는 잔잔해 보이지만 그 속은 수많은 물살이 지나고 소용돌이가 치는 것과 같았다.
생각이 많으니 좋은 생각도 많았지만, 나쁜 생각도 그만큼 많았다. 그러니 불안과 걱정도 클 수밖에 없다.
개선방안 1) 생각을 글로 썼다. 이상한 생각은 <소설>로 써보고 불안과 걱정은 조목조목 보고서처럼 썼다. 옆에 해결방법도 적어보니 막상 닥쳐도 잘 헤쳐나갈 만하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문제점 2) 생각하느라 세월을 다 보낸다. 즉, 행동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개선방안 2) 뭐, 이것은 간단하다. 당기면 일단 저질러보자. 경험만큼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은 없다는 것쯤은 오십을 넘은 아경이 몸소 체험한 것이기도 했다.
문제점 3) 원칙주의자.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착한 아이로 커서 학교에서는 모범생, 회사에서는 성실 직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과 다른 <자유로운 영혼>을 질투하고 부딪히면 쓸데없이 화를 냈다.
개선방안 3) 원칙에도 예외를 인정한다. 사실 그 원칙이라는 것도 사람이 상황에 맞춰 만든 것이다. 어린 시절 반복적인 학습으로 절대 지켜야 하는 것처럼 아경은 세뇌되었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보니 모든 것이 기성세대가 어린 세대를 길들이려고 만든 수작임을 알았다.
하지만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원칙은 있어야 했다.
인생의 황금률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 같은 것은 지켜야만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자유로운 영혼들은 여전히 싫지만, 화를 내는 대신 <그럴 수도 있지>하고 재빨리 피했다. 그것도 최대한 멀리.
이것이 <내 안의 오행>이라면 <내 밖의 오행> 아경을 둘러싼 인간관계도 사주팔자로 해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