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파리 뮤지움 기행 - 루브르 2편

문명의 시작 이집트로부터 그리스까지

by 써니스타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최고 유산으로 꼽히는 농업과 문자의 사용은 이집트까지 흘러간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남쪽 지역 -현재의 이라크 남부 지역- 에서 살던 기원전 5500~4000년에 출현한 수메르인(Sumer)이 가장 잘 나갔는데 기원전 3000년 정도부터 1000년 간 왕조 시대를 이루며 문화를 전파시켰는데 기원전 2000년에 나타난 아모리아인에게 점령당하면서 국가는 사라졌으나 종교와 문화는 전파된다.


이후 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함무라비 법전(Hammurabi code of laws)의 282가지 법이 제정되면서 일부 내용은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볼 수 있다. 물론 처벌에 관해서는 조금 섬뜩한 구석이 있기는 하다.

함무라비 법전을 새겨진 돌


“If a man knock out the teeth of his equal, his teeth shall be knocked out,”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진 문구가 여기서 나왔다. 내용이 공표된 이후 국민의 정서를 지배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함무라비 법전은 천년이 넘게 영향력을 끼쳤다. 루브르의 구석까지 훑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바로 국가 문명의 시작부터 본다면 학창 시절 아무 의미 없이 암기했던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법전이 남아있듯 파피루스에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필기구와 주변 용품의 발달을 함께 가져온 이집트 문화. 그 기록 덕분에 현재의 우리는 몇 천년 전의 삶까지 엿볼 수 있다.

이집트인이 생각한 가장 용맹한 존재는 사자였다. 파라오의 얼굴과 사자의 조합으로 탄생한 스핑크스는 세상에서 태양신 다음으로 가장 용맹한 존재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어느 시대나 주화에 자신의 얼굴을 새긴다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동전의 크기에 따라 권력의 강약을 나타내는 수단이 된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뽐내는 것이라고나 할까. 권력과 재력을 동시에 나타내는 수단 인류의 초창기부터 사람들은 돈의 맛을 느끼고 있었다.


강효주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니 주화를 발행하는 것은 지금의 패션 매거진을 발행하는 것에 견줄 수 있다고 한다. 최고의 권력자의 얼굴을 새겨 넣으면서 자신이 권력자임을 서로 주화 발행을 통해 권력욕을 채워나갔다.


그리스의 여신 vs 남신

역사시간에 단 한 명의 선생님도 이런 정보를 준 적이 없었다. “여신과 남신을 어떻게 구분할까요?”라는 가이드의 질문에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생각보다 조금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비교를 한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왼쪽)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여러 겹의 천을 두르고 있고, (오른쪽) 전쟁과 파괴를 관장했던 남신 아레나는 민망하게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다.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오면서 조각상의 포즈는 한쪽 다리에 무게를 실어 자연스러운 포즈를 연출한 일명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자세를 반영하면서 이집트의 직각, 수직, 평면으로 대변되던 부자연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자세의 혁명’을 가져오며 조각상에 입체감을 더한다. 미술로 보자면 평면 분할에서 사선 구조로 소실점을 넣으며 공간감을 구현한 것과 같은 혁신인 셈이다.


올림푸스 신화의 왕 제우스

이에 더해 아름다운 몸의 비율 7등신을 표현한 것이나 남신과 여신의 팔 동작과 동물 배치 등 주변 액세서리 표현까지 조각의 표현법은 날로 발전하게 된다.


이후 시대를 발칵 뒤집었던 오르세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인상파 화가 에두아드 마네의 작품 <피리 부는 소년(The Fifer)>에서도 7등신의 비율을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

그리스 조각 중 가장 최초의 비너스로 알려진 조각상이 밀로 섬에서 한 농부가 발견하면서 세상에 아름다운 8등신의 자태를 드러냈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는 안타깝게도 두 팔이 분실된 채 발견되었는데 한 손은 치맛자락을 한 손에는 금사과를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정확하지 않다.

보통 인간의 키를 훨씬 뛰어넘는 202cm의 키는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 신에 대한 경외감을 나타낸 것으로 여신으로 자주 소개되는 아프로디테를 모태로 조각한 비너스 조각상이다. 관능적이고 육감적인 신체를 표현한 헬레니즘의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 조각가의 이름이 분명치 않아 발견된 섬의 이름을 따와 밀로의 비너스라고 부른다.

앞서 말한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며 어깨의 높이가 서로 다른 것으로 보아 동작 또한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는 기원전 3000년부터 고대 그리스 문명을 꽃피우지만 헬레니즘 시대를 이끌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년)과 기원전 146년 사실상 로마가 그리스의 심장부를 병합하면서 사실상 정치적 독립체제는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한다. 이후 로마의 기독교 문화가 부흥하기 전까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는 로마 초창기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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