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연 교수의 흐름을 꿰는 중국
88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 국민학교(현재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던 나는 호돌이 마스코트를 따라 그리며 국군 아저씨(지금 생각해보면 불고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다)께 보낼 엽서를 꾸미고 있었다.
평생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어른들이 80-90년대 당시 아주 가장 흔하게 물었던- 말에는 항상 “아버지요”라고 대답했던 첫째 딸이었다.
문득, 아버지께서 “우리 중국에 가면 어떨까?” “정말요?” “그런데 중국에는 왜 가요?”
잠시나마, 중국행을 꿈꾸셨던 아버지는 중국이 앞으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재직 중 방통대 과정에서 ‘중국어’를 선택하셨다. 10대 내내 <포청천>이나 <쿵푸> 같은 중국 시리즈물과, ‘성룡’과 ‘이연걸’ 등이 출연했던 액션 홍콩 영화를 보며 홍콩에 대한 환상과 중국이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정의감 같은 것을 느끼면서 보냈다.
어찌보면, 조금 일찍이라도 눈을 떴더라면 지금에 와서 어학을 공부한다고 힘빼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앞선 경험 덕분인지 국민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한문수업 만큼은 늘 만점을 받았다. 아마 이런 덕분에 중국어에 대한 장벽이 조금은 얕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수업> 이욱연 교수의 책이라서 그런지, 정말 중국 수업을 받는 느낌이 든다.
비단 중국 뿐만이 아니라,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진화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은 -물론 사회주의 체제여서 더 심하게 나타났을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나 다른 국가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사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개개인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 격차가 크기 때문이리라.
“개혁개방 정책으로 도시는 빠르게 발전하는 반면 농촌은 정체되면서 많은 농민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나오게 됩니다. 농민 출신 노동자란 뜻인 ‘농민공(农民工)’이 그들입니다. p209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혜택은 받지 못했던 농민공 덕분에 중국은 G2 대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다마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일반적으로 다마는 50대 이상의 여성을 지칭하지만, 금이나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광장에서 춤을 추는 중년 여성인 ‘중국 다마’를 지칭할 때는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35세부터 60세 사이의 ‘젊은 다마’를 가리킵니다. -중략-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만 한정할 경우, 그 수가 약 1000만 명 정도라고 추산합니다.” p192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집단을 비하하는 속어로 발전한 케이스가 ‘아줌마’다. 다마와는 맥락을 약간 달리 하지만 그 배경은 비슷한 것 같다. 다마와 비슷한 용어라면 ‘복부인’ 정도랄까. 최근 떠오른 신조어 ‘맘충’도 비슷한 맥락이다.
잡지기자에서 마케터 그리고 해외영업까지 직업의 영역을 넓히면서 찾은 공통점이 있다면 업무로 만난 관계라도 친구가 되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터뷰이와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가다 보니 서로 도움이 필요한 때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해외영업을 할 때 보면 바이어와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니 서로 조금 애매한 부분도 말하기가 쉬워진다. 그리고 서로 바쁜 비즈니스 일상 속에서 단순히 메일만으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친구가 무엇인가? 친구가 되면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정보도 애매하게 흘려줄 수도 있고 -물론 기밀 사항인 경우엔 다르지만- 현재 계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가늠하여 맞춤형 제안도 할 수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비즈니스 관계에서 진심으로 대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다보니, 비즈니스를 더 이상 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친구관계로 발전했다.
꽌시에 대해 사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내가 느끼는 바는 비단 중국인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중국의 관계의 거리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거나 하는 것은 조금 다른 부분이기는 하지만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회사 동료 중 베트남 부인을 둔 분이 있는데 한국에 산 지 오래되었지만 택시비는 한국인의 두 배를 내야 한다고 한다. 해외 바이어 중 수염이 많이 난 서양인의 경우 종종 가까운 거리(2km정도)라도 5~7만 원을 내야한다며 불평을 한 것을 보면 꼭 중국에만 있는 문화는 아니다. 나 역시 러시아에서 1km에 3만 원을 내야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모두가 지니고 있는 관계의 거리가 가격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의 모조품 열풍은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2008년을 전후해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모조품을 보통 ‘자마오(假冒)’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말로는 ‘산자이(山寨)’가 있습니다. 산자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입니다. 산적이나 정부에 대항해 난을 일으킨 사람들이 산속에 만든 진지나 소굴을 뜻합니다. -p110
중국 산자이 열풍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종종 일어났던 표절과 비슷해 보인다. 물론 동일하지는 않지만 베끼고 따라하는 것에 대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의식이 많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과 동일선상에 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 산자이가 좀 더 애국적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권리 회복이나 침해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집단으로 행동한다는 부분이 달라보인다.
현지화에 성공한 브랜드로 오리온 초코파이 예시를 들었는데, 구글이 쫓겨난 이유도 현지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 퇴출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중국.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게임, 맥도날드, KFC, 한국 배우 추자현 등의 성공사례를 꼭 살펴보고 현지화 전략을 펴야 한다.
지금 중국의 한 기업와 MOU를 맺고 사업을 추진하려는 단계에 있는데, 애초에 차이나탄 을지로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된 계기가 중국 출장 후 중국이나 중국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를 깨달아서였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한권씩 쌓아 나가다보면 중국에 가지 않아도 중국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중국의 소설과 중국에 대한 책을 읽을 수로 하나를 파야 답이 보인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