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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Jun 28. 2024

만나는 선배마다 "제발 간호학과 가지 마"

3년 내내 진로희망이었던 간호사를 미련 없이 접은 이유

16살,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그 당시 나에게는 당연했던 선택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막연히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유독 특출 나거나 큰 열정을 뿜어 나는 분야도 마땅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은 확실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호사는 적당히 있어 보이면서도 전문적이고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도 인정하는 좋은 직업이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나의 1학년 진로 희망사항란은 '간호사'로 채워졌다.


"제발 간호사 하지 마"


운이 좋게도 우리 학교는 간호사 선배들이 많은 여고였고, 양호실 선생님도 이를 활용한 여러 활동에 의욕이 많은 편이었기에 나는 직접 현업 간호사 선배님들을 만나거나 관련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서울대학병원을 탐방 가서 선배님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고, 처음 들어본 대학교의 간호학과 출신 선배님이 대단한 대학병원에서 재직하고 계신다는 (그 당시 나에게는) 신선한 가능성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보다 더 못한 한국의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그러한 경험들은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일들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해나가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긴 있었다. 만나는 간호사 선배마다 모두 "제발 (한국에서) 간호사 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 그들은 그동안 간호사로 일하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는 여전히 얼마나 힘든지를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맥락으로 만남이 이어졌는지에 무관하게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모두 같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결심은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내가 원하고 꿈꾸는 바를 다른 사람의 부정적 의견만으로 철회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였는지 혹은 그 외에 그럴듯한 다른 장래희망을 찾지 못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하지 말라는 말에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마인드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3년 내내 나의 진로 희망은 "간호사"로 채워졌다. 본인의 희망과 부모의 희망이 옆칸에 적히니 딱 깔끔하게 6칸이 동일한 항목이었달까. (지금 생각해 보니 공적인 문서에 부모의 희망사항을 적는 것이 참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문득)


나는 그렇게 간호학과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아무 미련도 없이.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첫 수능을 치렀다. 이미 재수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갈 수 있는 대학이라기보다는 가고 싶은 대학을 지원했다. 수시 6개의 논술과 적성고사를 모두 성실히 치르고 깔끔하게 불합격한 이후, 이상하게도 큰 정신적 데미지를 받지 않은 채 정시 3개도 간호학과에 지원하였다. 결과적으로 깔끔하게 9광탈을 한 나는 큰 고통 없이 재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내게 간호학과에 대한 미련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선배들에게 들어왔던 한국 간호사의 혹독한 현실과 과학적 지식과 생명에 대한 책임이 점점 크게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 이유라고 돌이켜 짐작해본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3년 내내 희망했던 간호학과를 완전히 접었다. 아무 미련도 없이.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보니 속이 시원해서 홀가분하게 정리한 기분으로 말이다.




나는 커서 뭐가 될까?


'커서'라는 말의 기준은 법적 성년일까? 그럼 민법으로는 몇 살이고 형사법으로는 몇 살인데 공직선거법에서는 또 몇 살이고 … 하는 이따위의 허공을 헤매는 생각을 해본다. 역시나 답은 없는 문제이지만 그나마 근접하다고 느끼는 나의 생각은 '스스로의 인생에 선택권이 주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동안의 나의 선택들이 이 질문에 답을 해나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 어디서부터 이 모호하고 분주한 발버둥들이 이어져왔는지 생각하다 보면, 앞으로의 길을 조금은 더 원하는 대로 이끌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딱 떨어지는 답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아주 조금 덜 불안해지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 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 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_허준이 (서울대 졸업식 축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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