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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Aug 07. 2024

하지 않기로 한 것

여자가 ROTC 해서 뭐 하게?

군인이 되고 싶었다.

물론 화가도 되고 싶었다가, 간호사도 되고 싶었다가 이것저것 꿈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하지만 아주 가끔씩 강한 마음으로 군인이 되고 싶었다.


이건 부정하고 싶어도 명백하게 아빠의 영향이 크다. 내게 가장 멋진 제복은 아빠의 전투복이었고, 저녁마다 듣는 아빠의 이야기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내 안에 새겨졌을 것이다. 정의로움, 명예로움에 두근거려하는 나의 성격도 물론 아빠로부터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느 평범한 군인자녀와 같이 한 번쯤 아빠와 정복을 함께 차려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해 왔다.


아빠에게는 아마 선택권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내게 말해준 것이라고는 군인과 선생님 둘 중에 고민하다가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었고, 여러 이유들이 많았겠지만 어려웠던 가정환경이 작지 않은 결정적 이유였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그렇게 안정적인 환경을 갖추고 가정을 꾸려온 그의 시간들이 내게 많은 선택권을 마련해 준다면, 이 또한 그가 바라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무튼, 그를 닮아 너무나 독립적인 성격의 내가 이런 고민의 연속에서도 그에게 한마디 조언도 구하지 않은 것을 너그러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루는 학교에 있는 학군 사무실에 갔다. 여자 ROTC는 모집인원이 적기에 전형 절차와 경쟁률도 그만큼 쉽지 않다. 이것저것 지원에 대해 물어보려는 찰나, 담당자님이 내게 물었다. “취업 스펙으로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님 장기하고 싶은 거예요? “ 나는 당황했다. 둘 다 나의 이유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군인 경력을 우대할만한 회사에 취업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20대를 모두 군대에서 보낼 생각도 없었다. 그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가 지나면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내 삶에서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라를 지킨다는 그 뻔한 문장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명예로움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저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여전히 무서웠다. 이상적인 정의로움과 현실은 항상 다를 테고,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 여군으로 나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 직업과 군인 사회 자체를 싫어하게 될까 걱정되었고,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게다가 그 당시 나는 연극영화학과 복수전공을 준비하고 있었고, 학과 특성상, 매 학기와 방학에 촬영 실습이 필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ROTC와 연극영화 복전 두 가지 모두 손에 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로 둘러대더라도 무서웠다는 건 그저 핑계일 수 있다.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그 길을 원한다면 다른 작은 이유들은 뒤로하고 그저 앞으로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 않기로 한 것’의 반대편에 ‘하기로 선택한 것’

결국 나는 ROTC에 지원하지 않았다. 연극영화학과 복전을 신청하고 면접을 보고 수업을 듣느라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새는 없었다. 여전히 가끔씩 누군가의 소식을 듣거나, 감동스러운 다큐 또는 영화를 봤을 때 군인이 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불쑥 크게 느껴졌지만, 그뿐이었다. 그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촬영도 하고, 영화제도 가고, 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모두 내가 ‘하지 않기로 한 것’의 반대편에 ‘하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 와서 이걸 왜 다시 돌아보냐고 묻는다면, 앞으로 내가 ‘하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더 큰 힘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종종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아쉬운 감정이 들 때면, 나의 선택을 믿고 더 앞으로 나아갈 힘이 필요하다. 그때의 결정이 그 에너지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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