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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Oct 06. 2019

경비 반 내놔! 따로 다니자 쫌!

여행 스타일도 다르면서, 꼭 같이 다녀야 한다네

이사를 하면 한동안 정신이 없는 게 정상이라서 매우 바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리해야 할 짐이 도착하지 않으니 관공서 업무를 제외하고는 의외로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셋이서 마음껏 산책도 하고, 삼시세끼 촬영을 하듯이 그간 먹지 못했던 그리웠던 음식들을 집에서 자글자글 요리해먹는다.

나와 아기에게는 평온한 시간들이지만, 남편의 시간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본에서 짐이 도착하기 전에 수납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며 좋아하는 인테리어 세계에 빠져들었다. 속세의 요란함에 등을 지고, 거룩한 노동에 뛰어드는 모양새가 매우 남편 같다고 느껴졌다. 매일같이 나사를 조이고(남편은 대체로 조립형 가구를 주문한다), 천장에 뭔가를 달고 어린 묘목과 토분을 따로 사와 조심스럽게 옮겨 심는다. 그러면서 시아버님의 등쌀에 틈틈이 채용 공고를 확인하며 여기저기 원서도 넣고, 아기랑 놀아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현재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나는 놀랍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서 퍽 즐겁다. 지난 주말에는 무려 야외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출산 후 아이와 이렇게나 오랜 시간 떨어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시간을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보내다니. 공원에 앉아 맥주와 갖가지 푸드 트럭 음식을 먹으며, 재즈 선율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해가 저물도록 왁자한 분위기를 즐겼다. 그날은 형님과 나(덤으로 아가씨까지)의 공식적인 휴가였다. 아버님과 두 아들은 두 돌 된 여자 아이(아주버님 댁 조카), 18개월 된 남자아이(우리 집 애)를 돌보며 반나절을 보냈다.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건 이유가 있어~’ <바람이 부네요>란 곡이 특히 좋았다.


밤 11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해 보니 남편과 아이가 곤히 잠들어있다. 그날 내 기분은 하늘을 날아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두둥실, 그런데 막상 남편의 고단한 모습을 마주하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복합적으로 비져나왔다. 그리고 남편이 얼마나 나와 붙어 있는 시간(실은 나는 ‘늘 함께’라는 말이 좀 부담스러운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떠올렸다.


나는 온전히 내 속도대로 사부작사부작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그래서 결혼 전에는 혼자 하는 여행도 즐겼다. 내 체력에 맞게 일정을 짜고, 여행 때마다 스스로와 약속한 몇 가지 소소한 이벤트도 거행한다. 하나는 여행지 근처에 있는 미술관과 서점 한 곳씩은 꼭 들르기, 그리고 종류별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기, 길을 걷다가 분위기 있어 보이는 카페에 무작정 들어가기, 문구류를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엽서가 있으면 구입하기 정도. 나머지는 대개 그렇듯,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들을 보고 맛있다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한다. 어쩌면 여행지에서는 평소보다 잰걸음으로 움직이는 편일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머릿속이 바쁘고 행동도 재빠른 남편은 나와 달리 여행지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고 한다. 연애 시절, 남편의 유럽 여행 에피소드를 들으며 나는 좀 시시하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본인이 정확히 어딜 갔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좋았다는 얘기, 풍경이 어떠했다는 말만 했었다. 일정도 딱히 없어서 매일 아침,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종이에 적어준 곳 위주로 다녔다는 말에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가올 신혼여행을 기대했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우리가 전에 없이 느긋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




아무튼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따지자면 나는 홀로 빨빨거리며 목적을 달성하는 여행을, 남편은 어슬렁어슬렁 풍경을 눈에 담는, 마음에 맞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더없이 행복한 그저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닌 기억이 많고, 그에 따른 웃픈 에피소드도 많다. 그중 평생 가도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남편이 끈덕지게 나를 따라다녔던 신혼여행의 추억을 꺼내보려 한다. 휴양지에 가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을 것 같은 우리는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날 유럽으로 떠났다. 짧은 일정 동안 많은 곳을 둘러보기보다 한두 곳이라도 자세히 보고 싶었던 마음에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빈, 두 곳만 택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당시 패션 관련 일을 하고 있던 남편은 나처럼 문구류, 식기류, 서점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아담한 도시에 관광 명소와 소소한 상점들이 적절히 어우러져 있어서 그랬는지, 아님 물가가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인지 프라하에서는 모든 의견이 척척 맞았다. 카프카 박물관에 가자고 해도 흔쾌히 따라왔고, 프라하 전통요리를 먹으러 가자고 해도,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을 보러 가자는 것도 순순했다. 원 없이 먹고 원 없이 걷고 원 없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프라이탁 매장이었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으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브랜드(나는 참고로 ‘패알못’, 패션을 알지 못한다)이지만, 리사이클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빈에 가면 꼭 프라이탁 매장(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정식 매장이 없었다)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예물, 예단을 생략하고 식만 올린 우리는 그날 그 매장에서 가방 하나씩을 질렀다. 그러고 나서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나는 마음이 상했다. 내게는 프라이탁 가방보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슈니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메뉴판을 대충 훑더니) 야,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냐? 난 그냥 커피만 마실래.”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모양 빠지는 소리인가. 아니, 방금 전에 산 그 가방은 얼마짜리였더라? 우리는 식탁 위에서 속삭이는 소리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메뉴 두 개를 주문했다. 막상 먹으니 바삭하면서도 입안에서 금세 사라진다며, 뭐 이런 음식이 다 있냐는 남편 덕에 그래도 화는 금방 누그러졌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내내 비슷한 패턴으로 다퉜다. 빈의 카페하우스는 분위기가 너무 엄숙하다고 탈락, 점심은 비싸니까 길거리 핫도그로 해결하자고 해서 2차로 열 받고,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찾아가던 중에 길을 좀 헤맸더니, “그냥 다른 데 가면 안 돼?”라고 해서 나는 완전히 뚜껑이 열렸다.


“경비 반 내놔. 그냥 따로 다녀.”

“…”

“아, 빨리 돈 주라고!”

“…”


나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진짜 혼자 다니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경비도 안 주고 내게 사과도 안 하면서, 3m 정도 떨어진 채 내 뒤꽁무니만 쫓아왔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발견하고 기뻐서 외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남편은 내게로 바짝 다가와 어물쩡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많은 싸움들이 알고 보면 이렇게 별 것 아닌 이유로 유치하게 말다툼을 하다가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그래서인지 시시콜콜한 사건보다는 내 요구는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뒤꽁무니만 죽어라 쫓아오던 남편 모습 같은 게 더 선명하게 남는다.




꼭 신혼여행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에서 남편은 나를 따라온다. 몇 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파리에 한 달간 머물 때의 이야기이다. 그때도 역시나 걷다가 싸우고 화해하고, 또 걷다가 싸우고 화해하는 게 우리의 주된 일과였다. 여행지에서 목적 없이 발 닿는 대로 다니는 남편은 정말로 지도 한 번을 펴지 않는다. 모든 길은 내가 찾고, 남편이 가보고 싶다는 장소도 내가 인도한다. 그러다가 딱 한 번, 남편이 키를 쥔 적이 있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지나 SPA 브랜드 매장과 백화점, 서점 등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이 길, 와 본 적이 있다’며 흥분해서 말했다.


“아~ 여기구나! 내가 전에 여행할 때 가본 장소가 있는데, 거기 가볼래? 파리 시내도 보이고 굉장히 높은 곳이었는데.”

“몽마르뜨 언덕 아니야?”

“음, 글쎄… 그런 이름은 아니었는데.”

“길은 기억하고 있는 거야? 찾아갈 수 있는 거지?”


여기, 거기, 저기 말고는 특별한 설명이 없었고, 몇 번 버스인지를 묻는 내 질문에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저쪽 방향으로 가는 거 타면 될 것 같은데…”라는 그 애매모호한 말을 믿고 일단 갔다. 눈에 익은 길이라며 내리면 덩달아 따라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기도 했고, 낯선 도시를 걷는 긴장한 발로 레게 미용실이 쭉 이어진 후미진 골목도 지났다. 그저 감으로 더듬더듬 찾아간 길 끝에서 남편은 ‘여기’라고 말했다.


“오빠, 여기가 몽마르뜨 언덕이잖아.”


나는 이 일을 순전히 남편을 놀리기 위해 기억한다. 그날도 머쓱해하는 남편 앞에서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는지 모른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오른쪽, 으슥한 길로 올라온 우리는 성당 앞 언덕에 앉아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에그타르트와 산딸기 파이를 먹었다. 내려올 때엔 반대편으로 난 길을 걸으며 낡은 서점과 공방, 현악기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는 반지하 레스토랑 같은 것들을 구경했다. 웃음 띤 사람들의 표정이 거리를 가득 채우는 그런 날이었다.


여기가 남편이 말하던 파리 시내도 보이고 굉장히 높은 곳에 있는 그 유명한 몽마르뜨 언덕. 여보, 내가 평생 놀려줄게!


혼자 하는 여행이 최고로 좋은 줄로만 알았던 나는, 남편을 만나서 조금씩 함께 하는 시간의 의미를 알아간다. 그래도 성격은 통째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일정 거리 안에 아무도 없었으면 싶은 순간도 있다. 그래서 나는 피로에 찌든 남편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여보, 미안하지만 난 오늘 꿀이었어. 한동안 또 열심히 오빠랑 붙어 다녀줄게.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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