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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Sep 26. 2019

기다리는 게 가장 힘든 사람

여보,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래

남편과 나는 신을 믿는다. 신의 가호 아래 30여 년, 각자의 인생 앞에 놓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깎이다가 조금은 둥그스름해졌을 때 서로의 존재를 알아챘다. 크게 닮은 부분이 없음에도 끌려서 결혼을 했고, 신의 축복으로 새 생명까지 태어나 제법 수선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같은 시간 안에서 다른 기질의 세 사람이 박자를 맞추며 내일을 쫓는 삶이란 얼마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

가장 먼저 우리 셋은 속도가 다르다. 남편은 기차처럼 빠르고 시간 개념이 칼 같은 사람이다. 반면 나는 느긋하기로는 알아주는 성격에, 건전지가 거의 닳은 시계처럼 머뭇거리는 순간도 많다. 우리 아이는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인 내 볼 때 성격은 급하나 아직 몸도 마음도 잘 따라주지 않아 자기가 가장 답답한 상태이다. 남편은 원치 않아도 꾸물대는 두 사람을 늘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아는 한, 우리 집 남자는 기다림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다.


곧 19개월이 되는 아기. 18개월이 되어서야 걷기 시작했다. 마음은 날라다니고 싶지만 몸이 안 따라주는 1인.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이란 인물은 약삭빠르게 자기 이익을 계산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형을 속이고 야반도주해 삼촌 댁에 머물며 가축 돌보는 일을 하는데,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삼촌에게 크게 한 방을 먹이고 처자식(아내 둘은 모두 삼촌의 여식)을 데리고 또다시 도주를 일삼는 인물. 하지만 야곱이 하는 일은 대체로 승승장구한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일도 잘하고 수익도 곧잘 내니 탐이 나는 인재일 것이다.

나는 가끔 남편에게서 야곱의 기질을 본다. 남편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잠깐 동안에도 머릿속으로 그 사람이 자신을 밉보고 있는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관계 안에서 신망을 두텁게 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간사한 성격은 못 되어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적을 만들 때도 있다. 이 사람은 기본 애티튜드를 잘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결국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평소 행동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연애할 때부터 남편은 나를 기다릴 일이 많았다. 남편은 8시 출근, 5시 퇴근에 월말 마감 업무를 담당해서 남은 일의 부채감을 크게 느끼지 않고 회사 문을 나섰다. 하지만 나는 1년에 6권 정도의 책을 마감해야 하는 편집자에, 저자가 원고를 늦게 준다거나 외부 미팅, 감리 일정 등이 잡히면 자연스레 시간에 쪼들려 야근을 했다. 우리는 주로 남편이 야근한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방식으로 짬짬이 데이트를 즐겼는데, 그때 나는 이 남자의 독특한 ‘쪼’를 발견했다.


“몇 시쯤 일 끝날 것 같아?”

“음, 두 시간 정도만 하고 가려고.”

“내가 데리러 갈까?”

“히히, 그래!”


정확히 1시간 40분이 지나면 남편은 내게 문자를 보낸다. 두 정류장 지나면 역에 도착한다고. 그 말은 슬슬 정리해서 역으로 나오라는 의미였다. 회사에서 역까지 도보로 15분 거리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신호를 알아듣지 못해서 남편이 회사 앞까지 오면 부랴부랴 가방을 가지고 나갔는데, 몇 번씩 같은 이유로 다투다 보니 나중에는 남편과의 약속에 늦지 않는 내가 되었다. 물론 나란 사람은 미리 가서 기다릴 위인은 못 되고, 약속 시간에 꼭 맞게 도착했다.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실랑이이지만, 남편은 여전히 나와 밖에서 만날 때면 미리부터 예고 독촉 문자를 수시로 보낸다. “나 어디쯤 왔어.” “몇 분 있으면 어디 지날 거야. 넌 어디야?” 심지어 집에 버젓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5분 후 도착.” 이 말은 5분 후 도착하니 슬슬 식탁을 차려도 좋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 성경 속 ‘기드온’을 볼 때마다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그는 용사 중에 용사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실상은 겁이 많아서 천사가 나타나 축복의 약속을 들려줘도 몇 번씩 되물으며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증거를 보여주라며 천사를 상대로 실험을 하고, 신의 뜻을 알고 싶다며 양털 솜을 땅에 두고 밤사이, 이슬이 다른 땅은 다 그대로 두고 이 양털만 적시게 해달라는 특이한 기도도 한다(어릴 적, 이런 비슷한 기도를 참 많이도 했다). 나는 기드온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는 분명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세심한 사람일 것이다. 나처럼.

모험심 가득한 남편과 살다 보니 나도 전에 비해 담력이 늘어 계획이 틀어져 번외경기가 펼쳐져도 ‘아, 그런가 보다’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지나친 새로움은 당혹스럽다. 뭔가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을 끄는 편이고, 약속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하다가도 빠진 게 없는지 살피다 보면 늘 급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궁색한 변명이지만 항상 지각하는 사람은 아님).


기다려야 하니 기다리지만, 기다림이 익숙지 않은 우리 집 남자는 이번 주 내내 감정의 물결이 거친 파도와 같았다. 지난주 일요일, 김포공항에 도착해 바로 시댁으로 갔다. 하룻밤 자고 이튿날, 새로 구한 집으로 짐도 별로 없이 이사를 했는데, 집이 집답지 않아서 남편의 마음이 바빠 보였다. 일본에서 보낸 짐이 도착하려면 최소 2주는 걸린다고 하여, 여행용 트렁크에 간단한 집기류도 챙겨 오고, 우리가 입국하기 전에 미리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설치까지 완료해둔 이 철저함. 게다가 이삿날에는 쌀과 냄비, 몇 개의 반찬통과 식재료, 청소도구까지 도착하도록 인터넷으로 장까지 봐뒀다고 했다. 와우.

그런데 문제는 누구 하나 약속 시간을 지켜주지 않았다. 마트 배송은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도착해 결국 하루 종일 외식을 했고, 아기의 의료 보험 처리도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장이 난 베란다 등을 새로 설치해준다던 전기공은 아직까지 전화도 없고, 이사한 다음날(화요일) 바로 해결될 줄 알았던 인터넷 설치는 오늘에서야 끝났다. 옷을 넣을 수납함은 아직까지 ‘배송 준비 중’이란 멘트만 뜨고, 흔쾌히 마무리된 일은 전입신고 정도 되시겠다. 아, 오늘 세탁기도 왔으니 빨래 문제도 해결.


오늘 드디어 밥상을 샀다. 아기가 생기고 조금은 재빨라진 나. 후다닥 반찬도 만들고 국도 끓였다.



아직은 집이 통째 빌린 게스트하우스 느낌이라서 나조차도 대충 숙박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는 한다. 약속 시간을 애매하게 둘러대며 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오지만, 나는 내 마음이 화나 짜증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차오르는 게 더 아까워서 적당히 무시를 한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그것들로 작은 성취감을 얻는다. 이를테면 야무진 울 아기 입으로 쏙 들어갈 밥을 짓고, 동네를 걸으며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것 같은 공원이나 빵집을 기억해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의 엄청난 취업난 속에서 나 혹은 남편이 무사히 근로자가 될 수 있을지 때때로 걱정한다. 하지만 걱정은 짧을수록 좋으니 긴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남편의 감정이다. 나는 나쁜 감정의 전이를 극도로 싫어한다. 어두움에 매몰되어 순간의 작은 기쁨을 놓치는 건 어리석다고 여기기 때문에, 불평이 많은 사람의 말은 대충 흘려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의 화는 가장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서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다. 어떨 때는 그의 성격을 아니 짠하다가도, 이 투덜이를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내 속에서도 뭔가가 욱하고 올라온다.


“아, 진짜. 적당히 좀 하지?”


정리해야 할 짐조차 없으니 하루가 길고 서로가 서로를 지나치게 의식한다. 우리 삶이 일상의 궤도에 오르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나 역시 지금 처한 상황이 답답하고, 매일이 황당하다. 여행용 트렁크 위에 밥상을 차리는 게 헛헛하다가도 기가 차서 웃음이 나고, 넉넉하지도 않은 살림인데 결혼 6년 차에 벌써 세 번째로 가전을 마련하고 있는 현실이 코미디 같다.

가장 웃긴 건 이 와중에도 내가 남편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면 잘하는 사람’이라는 내 속마음이 그저 현실을 방어하려고 나에게 거는 세뇌인지, 아니면 남편이 진짜 그런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사람은 자기 일에 있어서는 객관적일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아직도 남편에게 콩깍지가 씌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짜, 지독한 사랑일세. 오늘은 이렇게 기도하고 자려고 한다.


‘하나님, 하루빨리 우리의 삶이 평범해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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