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이 Sep 02. 2024

3.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는 시험관 할 때 접어두자!

채취 전 시댁 집들이하는 캔디가 되고 싶었니?

정말 정말 중요한 채취를 앞둔 주말이었다.


앞 글에서 얘기했듯이 난포 하나 키우기도 힘든 내게

난자 채취 전의 시간은

무리하지 않고 좋은 것 먹으며 심신의 절대 안정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하필... 월요일 이식을 앞둔 주말에 시댁 식구들의 집들이가 있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왜 내 나이대 한국 여성들은 착한 며느리, 착한 딸 등등 콤플렉스가 있는지...

사실, 시험관 일정은 예상 수 없기에 무언가 계획을 세우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이 일정도 채취날이 잡히기 훨씬 전에 미리 잡아 놓은 건데...


'아뿔싸, 왜 하필 채취일이 집들이 하는 주말 지나 월요일인지...'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때 난 시험관 한다고 유세 아닌 유세를 부리지 않았을까?'

'왜 뭐든 씩씩하게 잘하는 캔디가 되려고 했을까?'

 

그때의 나에게

'너만 생각해도 돼', '누군가에게 미움받아도 돼', '남이 아니라 네가 우선이다' 

라고 얘기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아무튼 시댁 식구들을 주말 이틀 동안 대접하고 함께 멀리 나들이도 가면서

식당 화장실에서 시간 맞춰 주사도 맞았다. (시험관 주사는 시간 맞춰 맞는 게 엄청 중요)

쇼핑몰의 식당 화장실은 왜 이리 조명도 어두운지...

집에서 해도 어려운 주사기에 약물을 주입하는 세팅 작업을

어둡고 낯선 이곳에서 하려니 괜히 눈물도 났다. 

그때는 서러운 것도 모르고

'난 내 아픔보다는 타인을 잘 배려하는 착한 며느리'나 '쿨하다'는 이런 이미지가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이 글 쓰는 동안에도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서럽다.

누구 남편은 시험관 한다고 와이프 손에 물 한 방울 안 히게 하고,

특히나 채취를 앞두고서는 몸보신에, 몸만들기에 얼마나 몸을 아끼는데...

나는 이틀 강행군, 그것도 일반적인 날에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 시댁 식구 집들이라니...

(아무리 좋은 시댁 식구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실제 우리 시댁 식구들은 흔히들 말하는 시댁 갑질도 없고

그런 만큼 간섭도 없으시다.

시어머니는 내가 부담받을까 봐 아기 얘기도 안 하시는데

남편이랑 전화하면은 '며느리 힘들어서 어떡하냐'라고 걱정만 하신다는 얘기는 들었다.


아무튼 이런 일정 후 혹시나 몸이 피곤해서 난포가 자라지 않았으면 어쩌나

불안함 가득 안고 병원을 찾은 날!


다행히 채취까지는 들어갔는데, 마취에서 깨어 담당 선생님을 만나러 가니...


"안타깝지만 난자가 좋지 않아 수정을 할 수가 없네요... 

이번 일정은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잘 쉬다가 다음 생리 이틀 차에 봅시다!"


아. 왜 괜히 착한 며느리 되려고 애썼을까?

집들이는 언제든 해도 되는데...

왜 남편은 나서서 일정을 바꿔주지 않았을까?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하다...


이제 내 몸은 내가 지키고, 내 일정 손해 보면서까지 남들 챙기지 않으리!

그것도 이제 더는 오지 않을 중요한 기회라면 더더욱 말이다.

한 번쯤 나쁜 사람 되어 욕먹는 거 그게 뭐 대수라고...


시험관 하는 예비 엄마들,

제발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는 접어 두세요!


이전 02화 2. 시험관 하는 아내를 두고 흡연하는 간 큰 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