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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 Aug 26. 2024

2. 시험관 하는 아내를 두고 흡연하는 간 큰 남편

거기에 1년 휴직까지

남편은 흡연 경력 30년 이상의 골초이다.


이 말은 담배 끊기가 쉽지 않고, 또 금연할 마음도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시험관 시술 중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더 불행하게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남편 흡연에 대해 

강경하게 나오는 담당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시험관 경력 5년 동안 담당 의사만 6명이었는데, 한 분도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의사가 없었다. 

시험관 카페를 보면 남편 금연 전까지는 병원 오지 말라며 엄하게 나오는 의사도 있다는데...

시험관 시술하는 아내를 두고 흡연을 한다는 건 정말 간 큰 남편이자, 

시험관 카페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뭇매 받을 큰 죄(?)이다. 

특히 시험관 하는 이들이 얼마나 예민하냐면 병원 대기 중에 흡연하고 들어온 어떤 남편이 있었는데,

 '어떻게 담배 냄새를 풍기며 아이를 가지려는 병원에 드나들 수가 있냐?'

라며 분개하고 성토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내 남편은 그런 것쯤은 아랑곳 않는다. 

오히려 금연 얘기를 하면 자기 정자는 이상 없으며(실제 검사에서 큰 문제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니 자기한테 금연을 요구하지 말라고 큰소리 칠 정도였다. 

시험관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고 의사도 모르고 신 이외에는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흡연 하나만으로 몰아가냐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반응에 너무 어이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 말을 해봤자 나만 지쳐나갔고, 

보아하니 아마 학창 시절부터 흡연해 와서 정말 인이 박히고 중독이 되어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금연이 너무너무 힘든 사람 같아 이상의 금연 요구를 안 했을 정도로 

정말 정말 간 큰 남편이었다.


흡연 외에도 시험관 하는 아내들이라면 분개할 또 다른 남편의 간 큰 행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1년 질병 휴직을 낸 것이었다.

아내가 아니고 남편이 말이다.


나는 난소 기능이 저하된 케이스라 난소가 더 노화되기 전에 하루빨리 난자를 채취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약도 잘 안 들으니 약물 투입 없이 자연적으로 난포를 키워 매달 한 번씩 채취하는 시술을 했기에

남편도 당연히 시술 차 병원에 가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연가 혹은 병가를 내야 했다. 

그런데 남편 업무가 워낙 바빠 한 달에 한 번 쉬는 게 쉽지 않고 상사에게 말 꺼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시험관 3년 차에 1년 질병 휴직을 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서로 소통이 잘못되었는지, 나는 그가 시험관 때문이 아니라 

결혼 전부터 준비하던 시험 준비로 휴직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책상에 앉기는커녕 늘 tv 앞 소파에 누워 

주식 방송만 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물어보니 시험 준비가 아닌 시험관 준비를 위해 휴직한 거란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시험관 준비?"

"자기가 뭘 했는데?"


남편의 말로는 누구 한 사람이라도 휴직을 하면 편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시험관 준비라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데, 

앞서도 얘기했듯이 남편은 금연하지 않았다. 당연히 줄이지도 않고 끊을 생각도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운동?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는 없었고 내가 퇴근하면 같이 공원 산책을 간다거나 

주말에 집 근처 낮은 산을 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나는 이때 휴직이 뭔가? 당연히 회사를 다녔다. 

게다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안이 정리되어 있다거나, 저녁이 준비되어 있다거나 이런  없었다.

너무너무 화가 나서 


"집에 쉬는 사람이 있는데 일하고 온 내가 식사 준비해야 되냐?"라고 다그치면 


"나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건 내가 할 줄도 모르고..." 


와 같은 황당한 변명에 오히려 더 화가 날 뿐이었다.


그러고선 분위기 파악도 못한 듯


"자기 힘드니 맛있는 거 시켜먹자!"


와 같은 소리나 해댔다. 


남편이 나를 위해 해준 건 빨래 개기, 쓰레기 버리기, 화분 물주기, 가끔 설거지 및 

퇴근하는 나를 마중하러 지하철 역까지 오는 것이 다였다. 

(이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도 이런저런 문제로 다투어서 마중 나온 남편을 아예 무시하고 나 혼자 저 멀리 떨어져서 오는 날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뇌 구조다.


 '남편이 그때 금연하고 건강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생명이 생긴다는 건 수많은 요소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디 한 두 가지 원인으로 돌릴 수 있을까? 싶어 

또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그냥 고개를 흔들고 더 이상 생각 않고 넘어갈 뿐이다.

지난 일 지금 돌이켜보면 무슨 소용인가? 하고 말이다.


그저 이렇게 글로 그때의 답답했던 마음을 쏟아낼 뿐이다.


정말 간 큰 남편이지만 이 외에 장점도 많은 남편이니... 그런 점 보고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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