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이 Sep 09. 2024

4. 이성적이라 힘들지만 고맙기도 한 남편

감성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일반적으로 남성이 이성적, 여성이 감정적인 것처럼 내 남편은 이성적인 이다.

이 부분이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시험관을 하는 아내들에게는 공감을 받지 못해 힘든 요소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남편은

난자 채취에 실패하는 등 시험관에 진전이 없어도


"이번에 식단을 잘 못해서 그래", "이번에는 운동이 좀 부족했던 거 아냐?" 등등


무언가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고 '안 될 타이밍이었나 보다' 하며 담백하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그래서 다른 시험관 하는 부부들의 갈등 요소 중 하나인

'노력 부족'을 들며 서로를 탓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남편이 나를 탓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남편을 탓할 요소들은 차고 넘치다. (흡연하는 간 큰 남편)


그런데 한 번은 정말 정말 중요한 결전의 채취날이었다.

난포 하나 키우기도 힘든 나로서는 난자 채취 전

무리하지 않고 좋은 것 먹으며 심신의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


앞 포스팅에 나온 대로 채취를 앞둔 주말 시댁 식구들 집들이 후

결국 나는 난자 채취(정확히는 채취는 했으나 수정 불가의 질 나쁜 난자 채취)에 실패했다.


왜 불안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지...

난 채취한 난자를 수정할 수 없다는 슬픔보다

왜 채취를 앞두고 무리하게 시댁 식구 집들이를 했는지 후회가 밀려왔고

이번 채취 실패의 화살은 당연하게도 남편을 향했다.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시작된 나의 후회의 말에 남편은 정말 예상치도 못하는 반응을 내놨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반적이라면 혹은 내가 기대한 답으로는

"미안해, 나라도 우리 식구들 다음에 오라고 했어야 했는데" 나

적어도 

"안타깝게 됐네, 다음엔 더 잘 될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게 너무너무 일반적이지 않는가?


그런데 남편은 정말 정말 내가 믿고 너무나 사랑해 결혼한 상대가 맞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순간에 모든 신뢰가 떨어지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정말로 말 그대로 남편이 '꼴도 보기 싫어서' 

바로 발걸음을 재촉해 회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채취날 온전히 연가도 못쓰고 오전 반가 내고 오후에 사무실로 향하는 점도 너무 서러웠는데...)


남편이 한 말은 바로 다음과 같았는데,


 "안 되려고 했으니 안 된 거야. 다른 이유를 들지 마"


이게 시험관 하는 아내를 둔 남편의 반응이란 말인가?

뭐 법적으로 규정된 건 없지만. 시험관 하는 아내를 둔 남편들의 태도, 반응 등 암묵적인 룰이 있지 않나?


어떻게 이렇게 안타까운 감정 하나 없이 공감이나 위로는 못해줄 망정,

아픈 마음에 오히려 상처를 내는 말을 할 수가 있는지

정말 내 남편이 맞나 싫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일이 계속 상처로 남아 나중에 얘기를 꺼내보니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뭐든 이유를 찾으려면 끝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되면

'네가 몸 관리를 못해서 그래'. '이번엔 뭐가 부족해서 그래' 등등

서로의 잘못만 찾으면서 핑계만 댈 뿐,

'다음엔 더 잘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단다.


듣고 보니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채취 실패로 마음 아픈 와이프에게 어떻게 1~2시간 지나서도 아니고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설령 정말 그 뜻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감정이라도 조금 실어서 안타까운 표정이나 마음을 더욱 듬뿍 드러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무미건조하게 그렇게 얘기했으니

당연히 나로서는 오해에 오해를 하고 서운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게 남편의 스타일이었다.

내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어 불만을 토로하거나 누군가의 욕을 하면

남편은 공감 대신

내가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누가 이해해 달래?

그냥 '아, 그렇구나' 이렇게만 얘기해도 될 텐데..


공감 좀 해 달라고 하면

'내가 왜 억지로 공감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사람이다.

남편에게는 '공감'이 아닌 '동감'의 요구로 여겨져 꽤 피곤했나 보다.


그 후 이런 공감 문제로 여러 번 다퉈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감정적인 공감 대신 이성적인 남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처럼

'이해가 안 된다'는 등 평가가 우선으로 나온다.


이런 점에서 불만도 있고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적어도 남편은 감정적인 경우가 잘 없고

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남 탓을 하지 않으니

그런 점에서는 시험관 하면서 '혹여나..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 

하는 죄책감을 들게 해주지는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작가의 이전글 3.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는 시험관 할 때 접어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