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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 Aug 19. 2024

1. 나의 시험관 5년의 여정

난포 키우기부터 힘들어

한국 나이 42세(만 40)의 늦은 나이에 결혼해 아이 갖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무지해도 너무 무지했지, 결혼하고 부부생활만 잘하면 아이는 쉽게 갖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생물학적 나이는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의학의 발달로 생명은 연장되었지만, 여성의 가임기는 변하지도 않는지...

만 35세가 되면 어김없이 노산으로 분류된다.


주변에서 누군가


'나 아는 누구누구는 45에 낳았으니, 걱정 마!'

'내 친척 누구누구는 50 넘어 이번에 늦둥이 낳았잖아~' 


이런 말을 한다면 그냥 무시하거나 무지함을 속으로 욕해주기를!

(분명 남아 있는 난자 개수가 많은 초산이 아닌 여성이거나,

가임력이 선천적으로 좋은 여성이었을 것!

여성의 가임력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인데 주변 사례를 들며

어쭙잖은 위로를 하는 것에 불과한 오지랖일 뿐이므로...)


각설하고 다시 돌아와서 35세만 해도 노산인데 42세, 만 40세의 나이에 아이를 가지려 하니 쉬울 리가!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나자마자 난임병원을 찾았다.

부랴부랴 찾은 난임병원에서 실시한 검사 결과는

'난소 나이(amh) 0.4'라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가임력으로 치면 또래 평균보다 6세나 많은 나이에, 게다가 임신 가능성은 3%였다.

거의 임신이 불가한 상태라고나 할까...

처음 난임병원을 가서 하는 대표적인 검사가 이 amh 검사인데,  

남아 있는 난자의 개수를 추정하는 것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 되어 생명이 탄생하며,

이 난자는 매달 여성의 몸에서 배출된다는 것쯤은 잘 아시리라 생각된다.

그러니 이 난자가 몇 개 없다는 것은 임신 확률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래도 정말 간절했고, 어쭙잖게도 '나는 다를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과학의 적중률은 왜 나를 비껴가지 않는지...

정말 난자 하나하나 잘 키워서 채취하고 수정, 냉동시키고 또 이식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시험관이란 일명 체외수정으로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에서 각각 난자와 정자를 채취해

몸 밖에서 이 둘을 인공적으로 수정시켜 수정란을 만든 뒤

이 수정란을 다시 여성의 자궁으로 이식시켜 임신의 확률을 높이는 시술이다.

그래서 이 난자 확보가 우선적으로 정말 중요하다.


시험관을 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난자를 많이 확보해 놓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시험관의 1차 단계가 난자(난포)를 잘 키우는 일인데, 그러기 위해 다양한 약을 몸에 주입한다.

그게 바로 시험관 주사이다.


그런데... 이 난자 키우는 일부터 나에게는 난관이었다.

아무리 약을 많이 써도... 아무리 다양한 종류의 주사를 맞아도...

난포 1개 겨우 나타날까 말까 하는 최악의 상황...


그리고 겨우겨우 키운 난포 1개를 채취해도

공난포(난포라는 주머니 속에 난자가 없음)이거나

찌그러진 난자(노화로 인해 온전하게 생긴 건강한 난자가 부족하고 모양이 안 좋은 난자들만 남음)라서

수정이 아예 불가하거나

어렵사리 수정을 해도 며칠 못 가 죽거나

애지중지 키워 정자와 수정시켜 만든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시켜도 착상이 안 되거나 등등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다.


난포 키우는 데에만 이렇게 힘드니

시험관의 마지막 단계인 이식은 나에겐 사치였다.

시험관 경력 5년 동안 딱 4번 이식했을 정도니 말이다.


주사를 맞으면 난포가 너무 많이 키워져서 배에 복수가 차 힘들다는 누군가의 후기도

나에게는 다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나의 시험관은 이렇게 1차 단계부터 힘드니 정말 어려운 과정이었다.

다행히 몸이 둔한 건지, 약물 및 주사의 부작용은 없어서 육체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이렇게 진전도 없고, 성과도 없고, 언제 임신에 성공할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 및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초조함에 힘들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난 42~46세에 이르기까지 2세를 맞이하기 위한 시험관 여정을 5년 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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