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i Oct 03. 2017

바깥은 여름, 김애란 (2017)

위로가 필요한 바깥은 여름

난 여름이 싫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찐덕거려 잔뜩 예민해 지게 되는 그런 계절이라 별로다. 그리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에 부스터 한두개쯤 달아야할 것만 같은, 괜히 쿵쿵거리는 베이스가 귓가를 맴돌아 화끈해 져야할 것만 같은 그런 과한 생동감이 부담스럽다. 그런데, 누군가의 상실과 이별을 이야기 하는 이 단편소설 모음의 제목은 왜 하필 여름일까. 아주 더웠던 여름에 산 이 책을 이젠 서늘한 초가을 바람이 부는 날, 다시 읽어본다.

 


입동
아이들은 정말 크는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입동, p.18)


사람들은 눈 앞의 째깍거림에 울고 웃느라 시간개념이 없다. 주말을 바라보며 비슷하지만 다른 업무들을 해치워내고, 스카프를 둘러야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케 하는 오늘 날씨를 보느라 미사일관련 뉴스를 귓등으로 듣기도 한다. 여름 내내 걸려있던 긴소매 셔츠를 이리 금방 다시 입게 될 줄은 몰랐다며, 정리를 차일피일 미뤄 놓은 선견지명에 자조섞인 감탄을 하기도 한다. 그런 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경이로운 방법은 바로 아기의 성장일 것이다. 그런 내 아이의 상실이라니. 남편(아내)을 먼저 보내거나, 부모를 잃은 사람을 가르키는 말은 있어도, 아이를 먼저 보낸 사람을 가르키는 말은 세상에 없다. 계절의 정지가 아닌, 지구의 자전이 멎는 듯할 그 아픔을 설명할 세상의 단어는 없다.



건너편



이수가 공부를 그만둔 계기는 '도화'였다. 이수는 도화가 '어디 가자'할 때 죄책감없이 나서고, 친구들이 '놀자'할 때 돈 걱정 없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사소한 갈등에 속했다.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 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중략) 입사 초 수다스러울 정도로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도화가 어느 순간 자기 앞에서 더 이상 직장 얘길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수는 모든 걸 정리하고 노량진을 떠났다. (건너편, p.99)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는 드라마처럼 알고보니 네 배다른 형제, 부모의 웬수의 자녀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단순한 것일 때가 많다. 오래된 연인이 헤어지는 과정의 단편은 일상적이다. 어긋나는 타이밍과 줄어드는 공감대. 같은 방향성에서 오는 깊은 유대감과 드림스컴트루의 달콤한 미래는 우리를 묶는 더할너위 없는 강한 끈이었지만, 시험의 승패로인해 벌어지는 현실의 벽은 씁쓸하고 불편하다.



풍경과 쓸모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는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풍경과 쓸모, p.182)


비로소 다시한 번 이 책의 제목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름은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이라고 했다. 나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무언가를 잃어 차가운 바람 밖에 느낄수 없는 황량한 겨울인데, 바깥은 온통 시끄럽고 에너제틱한 여름이라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주 긴 계절을 겪은 적이 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한 아주 추운 겨울. 다른사람들은 앞을 향해 뚜벅뚜벅 잘도 걸어 나가는데 제자리걸음도 아닌 그냥 서버린, 앞이 보이지 않아 한 발자국 디딜 수 없는 그런 혹한기. 그런 눈보라에도 장작을 패 등불들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 작품에서의 꼭 아내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계절의 시차를  얼마나 들여다 보고 있을까. 혹시 그냥 모른척하고 있는건 아닌지, 누군가의 시차를 맞추기 위해 독촉하고 있는건 아닌지.



가리는 손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건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 중 하나이니까. 긴 시간이 지난 뒤, 자식에게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 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란 걸 배웠다.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세상은 이 곳과 비교도 안되기 냉혹할 테니까. 이 세계가 그 차가움을 견디려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방식을 택하는 곳이되리라는 것 역시 아직 알지 못할테니까. (가리는 손, p.190)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겪어봤을까. 자연스럽게 학습되어 봤을까. 제대로 경험되지 못해 분노조절을 못하고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위 사람의 성공을 쿨하게 축하하지 못한 나를 감추려고 누군가를 아주 뜨겁게 미워하는 내 모습이 후져 기분이 나빠 본 적이 있다면 우리는 그냥 보통사람이다 생각하고 그래도 다음 번엔 좀 더 쿨해져보자고, 더 이상 후져지지 말자고 다짐하자. 응원하고 응원받는 나이길. 우리는 할 수 있다.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지나간다. 아이러니하게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각 또한 신들의 배려라는 드라마 대사가 있듯이. 그렇다고 모든 것이 지워져 흩어지진 않을 것이다. 과거는 '지나가고 사라지는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것이니 영원한 상실은 없다. 그러니 긴 겨울 지나 따뜻한 입춘을 맞이하길, 여름을 이겨내고 기분좋은 가을을 만끽하길.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나왔다. (풍경의 쓸모, p173)
매거진의 이전글 82년생 김지영, 조남주(20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