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sunnyi Feb 01. 2018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1959)

사랑의 시작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마음보다 머리가 커져 버린것 같다. 이제는 나이먹어 그런가 무엇을 막론하고 되도 않는 머리를 굴리게 된다. 특히 사람만나는 것에 있어서는 유독 심한데 이게 자기방어인지 아니면 관계장애인지를 잘 모를 정도다. 처음에는 그냥 모른척 지나쳐버렸는데, 숨이 차오르니 피할 곳도 없고 날 이렇게 만든 세상이 원망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왜 이러고 사는지 내 자신이 한심해진다.   


마음 먹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되는 것도 하나 없는 이 와중에 아주아주 애간장을 녹일 듯한 러브스토리를 읽고 싶었다. 시시껄렁한 것 말고, 설익어 풋풋한 것 말고, 현실적인 것도 말고 아주 말랑말랑한 그런 사랑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그냥 이 추위를 녹이고 본격적으로 봄을 준비하기 위한 예열 과정이라고 해야하나.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이 책을 권해줬다. 사랑이야기는 또 브람스라며.


고전 중에 고전인 책이 아니던가. 사실 브람스는 손재주가 없는 문과생인 내가 가장 어려워 했던 고등학교 음악 실시 시간에 연주해야했던 곡의 작곡가라 그냥 ‘어후’ 소리가 절로 나서 재미 없을꺼야로 몇 년을 일관하던 터였다.




취향저격


나는 완전히 간파-간파당한게 나뿐이겠냐마는-당했다. 취향을 제대로 저격당했고, 완벽하게 니즈가 충족되었다. 직관적이면서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심지어 사랑앞에서 매우 당당한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쉼없이 만개해 읽는 내내 마음이 간질간질 봄이 온 것 같았다.


당신이 다시는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당신의 시몽 (p.73)


유독 눈에 띄는 한 줄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고 해서 울고 보채고 화내지 않았다. 다만 행복해 하지 않을 뿐. 바꿔 말하면 네 마음이 내 마음과 같다면 많이 행복할거라는.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지금 당장 어딜 향하는지 생각했고, 표현했다. 이게 요즘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 크게 공감이 됐다. 표현함이 초라해지지 않게 받아주고 배려해 주며 또 과하지 않을만큼 표현해 주는 사람과의 공유되는 생활이야 말로 내가 제대로 피어날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왜곡됨 없는 직진의 표현을 서로를 확신하고 의지하고 응원받는다면 그 자체가 정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겠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완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중략)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p.57)


지극히도 현실적인 이유로 밀어내면서도 받아주던 폴을 무장시키게 한 한마디. 관성과 같은 사랑의 (누군가는 이걸 자발적 청승이라고 표현하더라) 폴과 뜨거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질주하는 사랑의 시몽, 고마움도 모르고 자유로움만 좇지만 그렇다고 놔주지도 못하는 이기적인 사랑의 로제. 이 세 사람의 사랑 모두가 사랑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는 내가 나임을 잃게하는 사랑이 사랑이 맞냐는 것이다. 물론 기꺼이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 그건 그냥 인내, 헌신, 기다림일 뿐이다. 시몽에 의해 가까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폴은 로제의 전화 한 통에 다시 역행하게 되는데, 안타깝다는 마음밖에. 역시 선택의 댓가는 책임과 고독이다.



영화화 시킨 good bye again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시몽이 말했다 (p.58)


시몽은 폴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는 브람스의 사랑이야기를 알았기에 상관없는 척했을 것이다. 14살 연상을 사랑한 브람스와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클라라 슈만(심지어 브람스 스승의 아내라는)의 사랑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시몽의 상황과도 너무나도 일치하니 말이다. 슬프지만 사랑의 열기는 모두 사그러지기 마련이며, 정신적 사랑만이 영원한걸까?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은 오직 드라마일 뿐일까?


Marc Chagall - The Birthday (1915)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


스물네 살에 고독, 슬픔, 권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가 너무나 흥미롭다. 지금은 나도 개구리마냥 경칩하는 때라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에 집중하고 표현하는 시몽이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폴을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때에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좋을 멋진 책을 만나니 정말 더 좋은 사랑이 하고 싶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p.44)
이전 08화 쿨하게 한 걸음, 서유미 (2008)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다른사람이 읽어 주는 이야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