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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Dec 21. 2015

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2015)

위로가 되는 당신이라는 안정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없는 12월이다. 왁자지껄한 송년회 모임 하나 없이 역대 가장 조용하고 경건하게 20대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사실은 12월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느라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상태)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짬이 난다 싶으면 습관처럼 들어가는 인스타그램 속 책 한구절에 퇴근을 못 기다리고 점심시간에 당장 서점으로 갔다.


나는 모든 행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어요. 불안하고 우울하다고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울해서 죽을 것 같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목이 다소 오글거리는 건 인정하는 바, 내용이 캡짱.


아. 정말 읽을 수록 새로운 내용이 읽히는 책이다. 퇴근이 아무리 늦어도 자기 전에 침대에 앉아 몇 장이라도 꼭 읽고 자려고 했던 책이다. 읽을수록 선물해 주고 싶은 누구가들이 떠오르던 책이고, 읽을수록 위안이 되던 책이다. 책 냄새가 너무 좋아 출판사에 이 본문 종이재질이 뭐냐고 전화까지 했던 책이다.(만화중질지 100g라고 친절히 알려주셔서 통화 중에 배꼽인사한 건 비밀) 와 나 정말 오랜만에 여운이 길게 남는 좋은 책을 만났다.


사람들은 모두 확인 받고 싶어한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나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내 손을 놓지 않고 꼭 잡고 있어줄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힘들 때마다 그런 사람이 나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런 바람들을 눈으로, 손으로 직접 확인받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이 약해지고 지쳤을 때, 가슴이 온기가 사라졌을 때 이런 마음은 더 커진다. (p.174)


나는 약속에 늦는 사람을 싫어한다. 우리 회사 최종면접에 올라갔는데 사장님이 직접 물어본 '어떤 스타일의 사람을 싫어하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을 싫어합니다'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로. 음.. 그냥 내가 무시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던거 같기도 한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확인받고 싶어하고, 내 삶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의미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약속에서 그런 확인들이 보이길 바랐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려고 하면 화가 났던 것 같다. 바보.


생각해면 내 행동 대부분의 기준은 항상 내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었다. 부모님, 친구들, 선후배까지. 그들의 눈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으로 나를 맞춰 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모습들에 부합하면 내가 확인 받았다,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히는 걸로 만족 했던거 같다. 하지만 정작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싳을 때 누구에게 어떻게 어디까지 보여줄지 몰라 바둥거리다 낙담하곤 혼자 삭히려고 동굴까지 만들었는데 말이다. 아. 외면하지 않고, 내 손을 놓지 않고 꼭 잡아줄 사람. 생각만으로도 고맙네. 아이구 진짜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지는구만.


나에게도 (소지섭같은) 방공호가 필요하다. 엄마, 근데 왜 나를 공블리처럼 낳아주지 않았나요. 주군의 태양(2013)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언제 좋은 느낌이 드는지 그것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느낌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행복이라는 모호한 관념어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흐리게 만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행복해 지고 싶다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느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과 그 느낌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간절히 원한다고 말해야합니다. '나는 불행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아프다'라고, ' 나는 행복하지 않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외롭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p.136)


아차 싶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행복하게 살기'라고 곧잘 답하고 했는데 말이다. 하긴 8월 꿀같은 서울바캉스 때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행복이라는게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목표는 결승점이 있다는 건데 행복에 결승점이 있는 걸까라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자. 나에게 '행복'은 뭐지? 어떤 상황에서 내가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리는걸까. 음 그렇다면 나는 편한 분위기에서 옛 이야기를 하며 지금 우리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기 위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나를 생각하는 사람들)x같이 공유한 추억x편한 공간x미래계획=행복. 어쨋든 사람이긴 사람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야. 역시 행복은 단순복잡스러웡. 어려웡.


당신이라는 안정제


오늘 친구들을 만나고 마음이 흐뭇해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날짜를 봤더니 12월 20일이었다. 1993년 국민학교 1학년 오늘은 피아노가 집에 들어와서 젓가락 행진곡을 쳤던 날이고, 중고등학교 내내는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라던 제일 좋아했던 연예인(!)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5년 전 오늘은 우리 회사에 합격한 내 인생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 날이었고, 3년 전 오늘은 참 좋아하는 우리 동기들과 찐하고 짠하게 송년회를 한 만취 인 멜로디를 부른 날이었다. (내가 이런 기억력이 좋다. 넘나 변태같은 것)  맞다. 난 내 생일만큼이나 이 날짜를 좋아하는데 바로 오늘이 그 날이었던거다. 행운처럼 만나 10년을 지지고볶은 내 친구들과 함께. 토할 때까지 먹어야 보내주는 엔젤 아니고 엥겔 홍국이. 그리고 오늘도 스팟선정이 완벽했던 루트킴과 오방학님까지.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건강하십시오.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세요. 힘들면 당신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분명 거기에 누군가 있을 겁니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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