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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Nov 29. 2015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2015)

나도 너도 힘이 되는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사실 나는 정말 빼박 '동기제일주의자'인데, 어떤 모임/조직에만 들어가면 선후배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동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에 정말 맘도 주고 몸(이라고 쓰고 체력이라고 읽어야 오해가 없다)도 주고 정신머리도 주고,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련할만큼 all-in 해서 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공유하는 추억도 옅어지다 보니 마음이 퍽퍽해지면서 경조사에서나 보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돌아오는 길엔 사는게 다 이런 게 아니겠나 싶어 익숙해져야겠다 하면서도 마음이 헛헛해 지는 건 숨길 수가 없었다.


#1.

지난주엔 내 생일이었다. 특히,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11월이 참 좋아졌는데 아무래도 어렸을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내 생일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내 생일 당일엔 들린 광대가 제 자리를 못 차릴 정도로 내 조이메모리가 가득한 신촌에사 사랑하는 홍국이랑 신나게 놀았고, 그 다음날부터는 '20대 마지막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동기 언니와 삿포로 여행을 떠났다. 바로 그 삿포로에서 또 다른 동기 언니로부터 참 따뜻한 카톡을 받았다. '책 하나 선물로 사무실로 보낼게' 심지어 내가 몇 번이나 살까 말까 들어다 놓았다 했던 바로 그 책이라니. 아니 언니 천사인가. 날개를 봤던 것도.


#2.

위에서 잠깐 언급한 삿포로 여행off to sapporo을 정리하자면 다녀와서 목이 아픈데, 이게 목감기에 걸려서 인지, 아님 너무 웃어서 성대가 나간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라고 하면 그 느낌적 느낌이 잘 전달이 될 수 있을까. 이야기하다가, 웃다가, 걷다가, 먹다가 씻고 잘 잔 아주 즐겁고 행복하고 마음이 너무너무 든든해지는 여행이었다. 정말 무수히 많았던 대화 중에 '너는 정말 괜찮고 좋은 아이니, 꼭 그런 사람 만날 것이다', '20대가 지나면 못하는 일은 없으니 지금에 충실하라'는 언니 말에 코 끝이 찡해지고 눈물샘이 촉촉해 지는 경험을. 고마웠다. 뭔가 내가 근사해진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랄까.


#3.

오랜만에 동기 친구 결혼식엘 갔다. 우리가 동기 중에 막내들이라 토끼 클럽이라면서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모였는데, 그 토끼 클럽의 3번째 유부초밥이 탄생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아직 3명의 토끼 클럽 회원이 남았고, 부디 내가 그 마지막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오늘 내 동기, 내 친구의 결혼식에서 우리는 참 즐거웠다. 동기라는 이름으로 양껏 축하해주고 환호해주는 우리의 모습에서 5년차지만 아직 죽지 않았음에 마음 뿌듯해졌다.


자 그럼, 동기애 충만한 이번 주의 책은 제목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그들처럼.


이 책은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노란 책 <보통의 존재> 출간 이후 6년 만에 내는 책이라고 하는데, 이 책의 구매를 꺼렸던 것은 작가 이석원보다는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을 더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의 익숙함이 항상 미쳐버릴 듯이 난 힘들어 (사진출처 : http://jamp.tistory.com/100)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p.87)


나는 대학생일 때 연애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항상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고, 또 언제든 만날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외로움이랄지 그 필요성을 크게 못 느꼈던 것 같다. 오히려 '2만 학우'라는데 졸업 전에 적어도 2000명은 알고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진짜 패기가 넘치다 못해 오기처럼 보이는 생각도 가진 적이 있더랬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가끔은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어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내 머리에 입력되어 있지 않는 백과사전보다 두꺼울 매뉴얼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참 내가 이렇다니. 아이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 좋다. 관심사가 비슷하고, 대화가 통하고, 그 대화에서 느끼는 게 많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내 주위에는 정말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순간을 즐기면서도 그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끊임없이 예의 주시하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내 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나, 정말 복 받은 거겠지.


웃을 일이 많아서 웃는 게 아니라 웃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웃게 되는 것처럼 가치란 건 원래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는 얘기다. 이 넓은 세상에 너와 나, 둘만의 이야기에서는 더더욱. 원래부터 소중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주고 다른 사람은 해주지 못하는 이해를 해줌으로써 오직 내게만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가치란,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p.127)


어쩌면 난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라고 하면 내 친구들이 무지하게 화를 낼 것 같다. 넌 그냥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거라면서). 이 말 참 좋다. '원래 소중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B사감처럼 깐깐하게 체크체크 또 체크보다는 장점을 바라보고 좋아라 해주고 북돋아 주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bgm은 무조건 걱정말아요, 그대 여야 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내 사랑 내 곁에는 덤)
철들지 말고 살아요, 우리


올해 1월 1일, 지인들에게 신년인사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과 함께 보낸 말이다. 어른들처럼 현실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재기 발랄한 엉뚱한 생각, 살아 있어 몽실거리는 감정을 잃지 말자는 의미였는데 어느 순간 내가 어느 부분에서만큼은 철이 들어 버렸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누누이 말하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나와 너의 삶의 체온을 0.1℃ 높여야겠다 다짐해 본다. 내 삶에 들어와 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 밤이다.


어려서는 별 대가 없이도 넘치도록 주어지던 설렘과 기대 같은 것들이 어른이 되면 좀처럼 가져보기 힘든 이유는 모든 게 결정되어 버린 삶을 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벌 수 있는 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 등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정해져 버린다. (중략) 점점 계산 가능한 수치로  뚜렷해지는 것이다.(중략) 나는 노력하기로 했다. 너무 빨리 결정지어진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은 생에서도 한두 번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기길 바라며 살고 싶다. 자고 일어나서 막 눈을 떴을 때 또다시 맞을 하루가 버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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