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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Nov 23. 2015

스무살, 김연수 (2000)

쉽게 잊혀지지 않을 나의 스무살

지지난 수요일 하루, 회사를 쉬었다. 사실 회사 워크숍이 있었던 날인데 다들 재충전 시간을 갖자면서 자유시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재충전이라. 아 그럼 오랜만에 학교엘 가야겠다. 첫사랑처럼 박제 되어 있는 나의 사랑 나의 학교. La Vie En Rose. 세상이 온통 장밋빛일 줄 알았던 내 스무살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재학생들 사이에선 새로 생긴 상업시설이 어떻구 저떻구 말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새로 생긴 학교 스타벅스가 매우 핫하다. 그 핫 플레이스에서 정말 몇 년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하고 책을 사러 무작정 서점에 갔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권을 책을 보았다. 15년만에 다시 펴내는 김연수의 『스무살』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변하느냐 변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변한 자신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문제였다.


딩동. 머리에서 벨소리가 난 것 같았다. 샤이니가 말하던 링딩동이 바로 이건가 싶었다. 더 생각하지도 않고 서둘러 책을 사서 학교로 향했다. 스무살. 나이가 든다는 것. 학교. 수능까지. 아 진짜 삭막한 생활 속에서도 하나의 따뜻함을 추구하는 회상주의자인 나에게 이건 정말 최고의 조합이지 싶었다.


대학생로망은 클래식, 현실은 남자셋 여자셋.. 클래식(2003)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 한 살이 오는 것이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p.9)


문학동네 페이지에서도 많이 봤던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김연수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번 개정판엔 두 작품의 미발표 단편도 실렸는데, 흠 아무렴 나는 스무살이 속이 아려오는게 참 좋았다.


연둣빛. 내 눈으로 연둣빛 바람이 부드럽게 우리를 감싸고 돌며 멀리 강으로 날아가는 광경이 보이는 것 같았다. 휴일 강변의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고, 연둣빛 바람은 우리 둘 사이를 빠져 나간다. (중략)
" 여기에 오니까 그 노래가 생각나. 떨어지는 낙엽들 그 사이로 거리를 걸어봐요..."
"<사랑해요?>"
"응 아마 앞으로도 그 노래만 들으면 여기가 생각날 거야.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거야."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거야.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좋았다.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거야. 내 스무살은 정말이지 도무지 절대 잊혀지지가 않는다. 잊고 싶지도 않다. 아 이 책을 읽으면서 할 말이 참 많았는데 이렇게 쓰려니까 아무 것도 생각나지가 않는다. 그저 좋았던 기억밖에. 정말 매일 보는 친구들인데 뭐 그렇게 할 이야기들이 많았는지 수업끝나고 쉴새 없이 웃고 떠들면서 내려오던 기억이 가득한데 정녕 그것이 무슨 내용이었는지가 생각이 안난다.


함께해서 좋았고, 기뻤고 또 다행이다. 대학친구들은 다 가짜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서 행운이다. 유유상종, 근묵자흑이라고 누누히 말하는데 훗 나도 썩 괜찮은 사람인가봐~ 어떻게 하면 좋지 ?.? 꺄


마음이 너무 아련해 이번 글은 여기서 그만 허겁지겁, 허둥지둥 마쳐야겠다. 잘 지내길 바란다. 다들.


생에서 가장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따금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말 역시 우스운 말이지만, 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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