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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Nov 07. 2015

행복의 정복, 러셀 (1930)

나를 넘어야 하는 행복의 정복

제 꿈은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행복하게 살기'라고 곧잘 답하곤 한다. 그런데 목표라는 건 도달하고자 하는 결승점이 있다는 건데 행복에 결승점이 있는 걸까. 그러니까 행복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는 건지 항상 궁금했다. 아 그런데 행복이 뭐지?


누구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최근 몇 년간 이런 게 많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 뭐든 보여주겠다며 이를 부득부득 가는 패기 넘치는 사람이었다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멈춰서 버릴까 고민하는 나약한 사람도 되었다가, 내 곁의 사람들이 다 먼저 떠나가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동굴로 찾아가는 이기주의자가 되었다가 아무튼 스스로도 이게 뭔지 모르겠는 혼돈의 시간이었다.


어렸을 땐 그래도 꽤 행복하다를 느끼는 사람이었던거 같은데, 부쩍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요즘 (그렇다고 막 불행한거 같진 않은데) 생각나는 이 책. 러셀의 『행복의 정복』


이 책에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선배 언니가 좋은 책이라면서 '행복해지라'며 알라딘에서 사준 이 책. 언제쯤 오려나 할 때쯤 출고가 늦어 양해드린다며 판매자로부터 온 문자가 왔고 마음을 순식간에 따뜻하게 불지펴준 한마디. '행복한 삶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 이 문자에 마음이 참 따뜻해졌었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씩 생각나는 이 문자
Cuases of Unhappiness/happiness


사실 이 책은 뭐랄까 용두사미 같은 느낌적 느낌이다. 행복이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참 공감을 많이 했는데, 행복으로 가는 길은.. 글쎄 soso. 목차에 '일하는 사람이 덜 불행하다'가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개뿔. 요즘 들어 제일 부러운 사람이 11시에 스토케 유모차 끌고 백화점 10층 식당가 커피숍에서 수다 떠는 젊은 엄마들인 나에게 이건 무슨 산타클로스 콧수염 뜯어지는 소리인가.


러셀은 불행의 이유를 경쟁, 권태, 걱정,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두려움 이렇게 7가지로 제시하는데, 내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권태'이다.



지나치게 많은 자극은 건강을  해칠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근본적인 만족감을 표면적인 쾌감으로, 지혜를 얄팍한 재치로, 아름다움을 생경한 놀라움으로 바꾸어버린다. 나는 극단적으로 자극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정한 양의 자극은 건강에도 이롭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문제는 그 양에 있다. 자극이 너무 적으면 병적인 갈망을 자아내고, 너무 많으면 심신을 황폐하게 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훌륭한 책들은 모두 지루한 부분이 있고, 위대한 삶에도 재미없는 시기가 있다.(p.69)



자극의 중용. 적절하게 자극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어쩜 이렇게 모든 자극 하나하나에 충실하게 반응했는지 진짜 남아나는 게 없다. 정말 '심신'이 '황폐하게'됐다. 집에 있으면 젊음이 낭비되는 느낌이라 어떻게든 기어나가서, 금요일 23시에 퇴근해도 무조건 놀았다. 피곤해 죽어도 놀았지. 육체적인 피로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피곤하니 정신까지 피곤해지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다. 여유가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배려도 적어지고, 말투도 생각 없이 틱- 내뱉게 되고. 아무튼 그땐 권태로움의 중요성을 너무 외면했다. 왜 그땐 오롯이 혼자 있음을 단절의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참 미숙했네. 수동적인 즐길 거리를 찾기보다는 유익함을 끌어내는 지루함을 즐겨야된다. 평온한 휴식의 삶. 그래 나에게도 안식을 주자. 오늘도 수고했다 토닥토닥


이 사진 때문에 이 영화가 보고싶다. 더 랍스터(2015)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행복이란 건 이렇게 어려운 거다. 심지어 노벨문학상을 탄 러셀의 책을 읽어도 사실 손에 딱 잡히는 게 없으니까 말이다. 일단 어렴풋이 느껴지는 건 내 마음 속에 있는, 내 환경 속에 있는 불행을 원인을 제대로 알 것. 그리고 미리 체념하고 무릎 꿇지 말 것. (역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라, '행복' 자체는 내가 노력하면 충분히 쟁취가 가능한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 자 그렇다면 이제는 행복을 정ㅋ복ㅋ하자. 꼭 행복하자.

to be happy!


정신이 최고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적은 순간에 사람은 가장 강렬한 기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참된 행복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뭔가에 도취해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거짓된 행복이며, 충족감을 줄 수 없는 행복이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충족감을 주는 행복이다.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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