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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Nov 01. 2015

피로사회, 한병철 (2010)

내가 나를 피로하게 만드는 피로사회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할로윈halloween.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10월 31일을 이렇게 난리법석으로 즐겼나 싶다. 나는 생각도 않고 장판 틀고 누워 자다가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페이스북을 한 번 스키밍 하고 나서야 '아- 맞네' 했더랬다. 코스튬 쭉 보다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SM 할로윈에서 인사이드 아웃 슬픔이로 변한 소시 수영. (싱크로율 인정)


아! 인사이드 아웃? 좋았지 좋았어. 참 좋았어. 영화 시작 전 오프닝 영상부터 취향저격했던, 정말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의 조이 메모리가 가득한 신촌으로 향했는데, 문득 몇 년 전에 읽은 『피로사회』 란 책이 생각났었지. 아 그래 맞다. 이번 주엔 『피로사회』 이야기를 한 번 끄집어 내봐야겠다.


어른들을 위한 픽사의 선물.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2015)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p.28)


기쁨만 강조되고 슬픔은 외면하려는 감정 컨트로 타워에서 일어난 따뜻한 소동 이야기가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과잉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를 만든다는 이 책과 연결된 건 아마도 아이러니하게 '긍정'이 아니었을까.  


『피로사회』는 2010년 가을 독일에서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12년에 번역되었다. 그 당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딱 2개. 첫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었다는 점. 두 번째는 책 뒤편의 한 구절이다.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완 전 공 감! 나만 봐도 그렇다. 옆 사람이 하고 앞 사람도 하는데 '나는 못 하겠다'라고 말 못해서 속앓이 한 적이  한두 번인가. '그냥 해. 하다 보면 하게 되어있어. 유 캔 두잇? 아이 캔 두잇'을 주문처럼 외운 게  한두 해인가. 또 그런 하고자 하는 모습을 '열정'이니 '책임감'이니 라벨을 뙇!하고 붙여버리는 걸 수십 번도 더 보지 않았었나. '성과'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은 없어지는 글자 그대로의 '성과 사회'에 살고 있는 거다 우리는.


성과사회, 활동 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상태를 야기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부정성의 결핍과 함께 과도한 긍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적 징후이다. 그것은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을 전제하는 면역학적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으로 유발되기 때문이다.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p.66)


참 무미건조한 삶이다. 콘텐츠는 없고 툴만 있는 생활이다. 의무만 덩그러니 놓여있으니 성취감이 약하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삶을 탈서사화entnarrativisierung라고 표현한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줄 이야기가 붕괴되었다는 의미다. 삶의 가치가 비단 좋은 대학 가기, 좋은 직장 가기, 승진하기, 부자되기가 아닌데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너무 단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긴 2차원 3차원, 인터스텔라마냥 4차원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들 변하는 건 없지. 우리는 지금 이 사회를 살아 내고 있다는 점.


혹시 모르니 감자 심는 법은 꼭 알고 있어야겠다. 마션(2015)


성과 사회, 활동 사회에 맞서기 위해 사색적 삶과 무위의 피로를 즐겨야 한다고 하는데, 아- 무식한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성으로 무장된 나를 조금 쉬게 만들자고. 피로하면 좀 쉬라고. 그리고 피곤한 당신 떠나라고. (그러니까 내가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가 이거인 거다. 찾았다 자기합리화근거. 무위의 피로 즐기기)


니체는 『우상의 황혼』 에서 교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 과업을 거론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신의 부재 상태, 천박성은 '자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 자극에 대해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즉각  반응하는 것,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미 일종의 병이며 몰락이며 탈진이다. 여기서 니체가 표명하는 것은 바로 사색적 삶의 부활이다. (p.48)


 이 책에서 가장 가슴 뜨끔한 대목이었다. 나..... 음 천박한 거였네.. 즉각 반응하는데 심지어 대꾸도 못하고 투콤보네 투콤보. 가만있어보자.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법이라.. 문득 중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봤던 지문 내용이 머리에 스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작/다독/다상량을 해야 한다던 중국인 문장가 구양수의 말이. 삼시세끼 어촌 편에 따르면 군소쯤 될까 싶은 나는 일단 열심히 생각하는 법부터 원스텝 투스텝 밟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없으면 어때. 여유를 갖고 충분히 즐기면 되는 거지. 괜찮아 쫄지마 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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