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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Dec 12. 2017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1977)

아날로그가 그리운 너무 시끄러운 고독

끝의 시작. 12월의 첫 날, 여름휴가 때 챙겨간 소설 책의 제목이 불현듯 생각났다. 올해 마지막 달의 시작이라 그런가. 뜨겁지 않음으로 뜨거움을 표현하는 남자와 더이상 뜨거울 수 없는 그의 어머니, 언제나 뜨겁고 싶어하는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도만 얼핏 기억에 남는데 말이다. 마침 그 날은 엄청 춥기도 해서 약속도 다 제치고 집에 오자마자 허겁지겁 그 책을 다시 열어 제쳤다.


감정이나 사랑을 표현하는건 여전히 어려웠다. 그는 외로움 속에서 늘 누군가를 기다렸으나 막상 다른사람과 함께 있게 되면 어색해하며 혼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고독속에서 안도하며 충분한 시간을 보낸 뒤에는 다시 누군가 다시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p.105)


기분이 참 뭐 같다 싶었다. 그래서 불쑥 강원도에 갔다. 사실 갈까말까 망설였는데,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면서도 지루하면서도 그냥, 정말 그냥 심지어 잘 타지도 않는 고속버스를 훌쩍 탔다. 눈이나 왕창 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밀리면 너무 힘들테니까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버스는 기차나 비행기와는 다르다. 비행기가 설렘이라면, 기차는 낭만이고, 버스는 뭐랄까 고독이다. 그렇다. 이건 분명히 고독이다. 시끄러운 엔진소리하며, 바퀴소리 하며, 씽씽 울려대는 옆 차 소리하며, 바람소리하며, 귀에 꽂은 내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 하며, 그리고 바깥을 보면서 드는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입 밖으로는 단 한마디 꺼내지 않았지만, 이건 분명하게도 너무나 시끄러운 고독. 자연스럽게 가장 최근에 읽은 이 책이 떠올랐다.



삽십오년 째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서적의 책등과 표지를 발견하는 그 놀라운 순간이 내게는 언제나 축제나 다름없었는데 말이다. (p.88)


이 책은 완벽하게 삽십오년째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는 '나'의 온전한 러브스토리다. 주인공은 언젠가 자신을 덮쳐버릴지 모르는 책들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버려져 하늘에서 내려오는 책들 속에서 예수,노자,니체,헤겔 등을 만난다. 그는 '글의 향기를 들이마신 뒤 첫 문장에 시선을 박고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


너무 시끄러운 이 책을, 철저하게 혼자서만 시끄럽고 그 안에서 고독해 하는 이 책이 나는 왜 익살스럽게 느껴질까. 결코 주인공의 망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그냥 주인공의 행위 자체를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뜬금없이 떠오르는 철학자의 이름과 이론들,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심지어는 현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술가들과 예술작품들. 그와 연관되는 개인적인 추억과 환경들 그리고 환상인지 현실인지조차 모르게 이어지는 내가 사는 이야기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절대로 손에 잡히지 않을 떠다니는 생각과 상상들이 다시금 책을 읽게 하는 매력이지 않을까. 영상은 상상의 범주를 다소 한정시키고 하나의 씬을 뇌리에 강하게 인식시키는데 반해 (때로는 상상을 실제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있어 무한 감동이 있기도 하지만) 책은 상상의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 매력적인데, 이 책은 이 매력을 다소 정신없는 감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p.89)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우리가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도 모두 끝장이었다. 그러나 내 용기를 결정적으로 꺾어놓은 건 그 젊은이들이었다. 양다리를 벌린채 손을 허리에 갖다대고 우유와 코카콜라를 병째 들이켜는 젊은이들. 더럽고 지친 일꾼이 일감에 매달려 혼신의 힘으로 맞붙었던 시절은 완전히 끝이 나고 만 것이다! (p.91)


우리 모두는 '웃고 떠들며, 치즈와 소시지가 든 샌드위치를 보란듯이 우유와 코카롤라와 함께 먹어대'는 휴가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작업공이 아닌가. (맞다.) 삽십오년간을 일했으면서도 압축기를 집으로 와서 나만의 책을 만드는, 책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책을 구원하려던 명장의 정신이 있는가. (아니다) 이 책은 책뿐만이 아니라 아날로그로 대변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향수와 찬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결코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이 아닌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지막은 그대와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히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p85)


주인공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지만 시적이고 숭고하다. 그래도 완벽하게 자신만의 동굴에 틀어박혀 주절주절 비현실적으로 내뱉었던 모든 내용 중에 가장 현실적이었던 러브스토리의 집시 이름이 생각 났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이었던 삶이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토록 말하던 인간적이지 않은 하늘을 넘어서 존재하는 연민과 사랑이 주인공의 마지막이었으므로.





휴일 아침에는 밀린 라디오를 듣고, 여행가서는 엽서로 선물을 대신하고, 고마운 사람에게는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스마트폰 메모장보다는 다이어리와 펜을 가지고 다니는 안-스마트한 아날로그인 나는 이 책에 매우 반갑다. 입력과 삭제가 쉬운 요즘같은 시대에 지워진다는게, 잊혀진다는 게, 없앤다는게 이렇게나 힘들다는 건 표현해주는게 좋아서. 나도 누군가에게 쉽게 지워지지도, 잊혀지지도, 없애지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슬프지 않게, 속상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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