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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May 10. 2018

지지않는다는 말, 김연수 (2012)

이기지도 않고 지지않는다는 말

나인 투 식스를 지키라고 성화다. 돈은 '회전초밥집에 갔을 때 그릇 색깔을 신경쓰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려고 버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은 나란 미생이기 때문에 이런 조직문화가 고맙기 그지없다. 늦게 나와서 지하철에 사람들에 치여 출근도 하기 전부터 파이터게이지가 폭발하기보다 평소대로 일찍 나오는 대신 아침에 어슬렁버슬렁 커피 한 잔 마시며 책 하나씩 뒤적이면 이너피스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커피값이.. 카드만세)


오랜만의 에세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 지다라는 말이 윈 앤 루즈에서의 그 루즈일까, 선라이즈 앤 선셋의 그 선셋일까. 사실 어느쪽이든 상관 없겠다 하는 생각으로 첫 장을 넘겼다. 시작하는 첫 어귀에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에 모든 것이 명확해졌지만.



추억의 위로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잇었다. (중략)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p.162)


추억으로 먹고 사는 나는 그동안 왜 추억의 필요충분조건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나 하는 아차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점차 혼자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친구랑 화장실도 같이 가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 해 지는 거 같다(feel like). 혼자서 밥도 잘 먹고, 혼자서 여행도 가고, 혼자서 사진도 잘 찍고 아무튼 둘이 아니면 무척이나 어색해 하고 부끄러워 하던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울리는 건 '위로'받는 다는 것. 혼자는 멋있지만 (소위 말해 간지다) 둘 이상이 하는 추억은 우리를 위로 할 것이라는 것은 단언코 부정할 수 없다. 가장 좋은 순간에 '좋지?'라고 말하며 상황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언제고 그 날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그래서 마음을 떨리는 미소를 짓게 하는 황홀하게 따뜻한 여행선임이 분명니까.



인생을 선용하는 기술


인생을 선용하는 기술은 바로 거기에, 지금 이 순간 할 일을 하는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으니까. 인생은 이다지도 기니까 지금 할 일은 꼭 지금 하고 지나가는 게 좋겠다. 나중에는 또 그 때 할 일이 있을테니까. (p.169)


인생을 선용하다는 말이 왠지 멋있어 보여 밑줄을 슬쩍 쳐뒀다.나만의 인생선용 기술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니 '기록'이지 않을까 싶다.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된 기록하는 습관. 눈 떠보니 2분기 마감 막 이래서 호들갑떨다 3분기 마감을 하기 전에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된 습관이 나만의 기술인듯 싶다. 거창하지 않아도 간단하게라도 하루를 정리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내 마음에 가장 안정감을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명확해 진다는 것이다. 후에 읽어보면 어린 내가 제법 기특할 때도 있어 보이고, 그 때의 내가 그립기도 하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지내야 겠다 생각도 들고. 아무튼 나만의 인생 선용 기술은 정말 보잘 것 없지만 기록에 집착하는 나에게 있어 오트쿠튀르라고 해야할까. 후후


예능프로그램에  잘 나오는 외국인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한다는. 크리미하고 달달한 모카라떼같은 미래를 꿈꾸며 너무 쓴 에스프레소같은 지금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지금 이 순간만을 사는 것은 (살라고 해도 그렇게 못사는 성격) 아니지만 지금 해야 할 일들은 늦추지 말고 꼭 한 번 시도쯤이라도 해봐야겠다고 다시 한 번 셀프 다짐.



기회를 느끼는 법


그러던 어느 날이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다가 문득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달리고 싶지 않아서 달리지 않은 삶을 성공적으로 살았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달려보기를. 달리고 싶지 않을 때 달리지 않고 달리고 싶을 때달릴 수 있는 삶, 그가 바로 러너니까. (p.85)


달리기를 하면 밀려오는 근육의 피로를 감당하지 못 해 내일부터는 달리기 안 해! 못 해!를 외치는 나에겐 작가가 말하는 달리기에서 배우는 숱한 성찰중에서 이 부분이 제일 와 닿았다. 문득 할 수 있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흔한 것 같지만 결코 자주 오지 않는 기회를 피부로 느끼지는 순간이지 않을까. 기회의 신은 앞머리의 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이며, 양발 뒷꿈치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양손에는 각각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고 한다. 마음에 중심을 세우지 못 해 어영부영 놓치고는 전의를 상실하기 전에 기회를 기회로서 알아보는 큰 눈을 가져봐야겠다. 그리고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고 달려볼 것이다. 




이전부터 어떤 대상과 견주어 이기고 지는 것이 절대적인 성공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일상 속 순간의 감정과 깨달음으로 엮어진 이 책의 면면이 획기적으로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 책을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내 기준은 내가 세우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내 기준을 만족시키는 하루하루로부터 내 행복은 시작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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