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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Jul 13. 2018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2011)

답은 내 안에 있는 여행의 기술

언제부턴가 여행을 갈 때면 생각하는 요소 중에 하나가 '이번엔 무슨 책을 가지고 가서 읽을까'가 되었다. 물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에 눈길이 가는 책 한두권을 챙겨가긴 하지만, 어쨌든 고민은 늘 빠지지 않는다. (두권을 넘지 않는 이유는, 지난 번에 욕심내서 세권 가지고 갔다가 고-대로 정말 겉표지도 들추지 않고 가지고 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번 10일간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부터 가장 먼저 챙겼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정말 뭔 말인지 1도 모르겠다며 멀리 했었는데, 올해 초에 다시 읽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나에게 연애의 신지평을 열어주었고, 그 연속에서 보통의 다른 책을 찾고 있던 중 눈에 너무나도 독보적으로 띈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예민까지는 아니지만 늘 시니컬하게 기술하는 그의 여행은 어떠할까 궁금했다.


혹시나가 역시나다. 여행에선 가벼운 다른 책을 먼저 읽느라 이 책은 또 고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의리로 여행에서 다녀오자마자 시작했는데, 이것은 아마 후에 생각해도 가장 잘 한 일이다 생각할 것 같다. 완벽하게 내 여행을 이 책에 대입해 복기 할 수 있었기에 왠지 여행을 한 번 더 다녀온 느낌이었다고 할까.


여행용 기분



아름다운 대상이나 물질적 효용으로부터 행복을 끌어내려면, 그 전에 우선 좀 더 중요한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요구들 중에는 이해에 대한 요구,사랑, 표현, 존경에 대한 요구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목조 오두막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수가 없다. (p.39)


사진을 찍어보면 그 때의 심리상태가 드러난다고 믿는다. 몇 년 전 동굴을 파 들어가 앉아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심지어 그 곳이 도시 전체에서 샹송이 흘러나오는 프랑스 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매우 불편했었다. 웃는게 웃는게 아닌 즐겁다고 행복하다고는 하지만 얼굴 한 부분은 그늘이 진 듯한 그 사진더미를 보고나서 나는 한동안 여행을 가서도 인물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행은 계속 다녔다는 말이다 ^^^) 동굴 밖으로 슬금슬금 나와 찍은 지금의 사진은 그 동굴 속 내 모습과도, 출근길에 내 모습과도 완전히 다르다. 밝고, 해맑은 꾸러기 같은 모습이 내가 봐도 보기 좋았다. 내가 언제 이런 표정을 지었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내 머릿 속이 아닌 내 눈 바로 앞에 놓여진 아름다움을 흠씬 받아들이려면, 그러니까 여행을 충분히 즐기려면 내 감정이 잘 다스려져야 한다는 이 말에 정말 완벽하게 공감한다.


순간에 만족하려면



일상의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관습에 따른 무관심에서 벗어나 우리 앞의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초자연적인 것을 만났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맛보게 하는 것. 사실 우리 앞의 세계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보고이지만, 익숙함과 이기적인 염려 때문에 우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p.194)
거리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아름다움에 관한 관심, 연상적인 사고, 경이감이나 고마움, 시각적 요소에 의해서 촉발되는 철학적 일탈은 잘려나갔다. 그 대신 어떻게든 빨리 지하철 역까지 가고자 하는 집요한 요구만 남았다. (p.314)


날씨의 노예인 나는 그냥 시원한 바람만 불어도 흥얼거리고, 해가 나면 기분이 업되서 어쩔 줄 몰라하지만 요즘처럼 파-아란 하늘에 열광했던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하늘색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희뿌옇게 하늘을 메워버리는 미세먼지라는 볼썽사나운 자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과 그 풍경이 우리에게 주는 평화로움을 느끼지 못했으니 열광한만도. 있을 때 그 존재를 잘 알아봐줘야 더 가치가 있다. 가치를 알아봐야 매력을 느끼고, 순간이 매력적이어야 순간으로 이뤄진 내 하루도 더 의미 있어질 것은 당연하다.




나를 이루게 하는 소중한 관계들과 더 멀리까지 함께 가기 위해서 뭘해야할지 정말 꾸준히 고민해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 책에서 답을 찾은 것 같다. 그들과 순간을 만족스럽게 보낼 것. 감정이 무뎌지지 않도록 나에게 꾸준히 집중해주기. 건강한 감정은 배려와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순간들은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겨지게 하루걸리가 .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조급해하지 않아도 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일상 속 아름다움과 경이의 발견을 무디게 하는 익숙함에서 기인하는 무관심이 내 일상을 압도하지않도록 오감을 열고 잘 살펴야 겠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감정들이 건조하게 뭉텅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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