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뜻밖의 위로
이번 주 1.
문득 출근길 버스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시기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바뀌는 구나. 중고등학생때는 대학교만 잘 가면 끝날 것 같았는데, 대학생때는 (아니 입사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친구들과 항상 북적인다면 부러울 것이 없었고, 미생 2-3년차부터는 공항에 가는 공항 리무진을 타면 이미 유토피아와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요즘엔 유독, 부쩍 마음이 든든해 지길 바라는 걸 보니 남 편이 아닌 '내 편'인가. 후. 너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시간도 다 지나간다. 흐릿해져 간다.
이번 주2.
이제야 좀 겨울 같다싶지만, 체감 영하 25도라니. 너무 심한거 아닌가 싶다. 이럴 때, 다시 말하자면 너무 추워서 목도리로 얼굴의 반을 휘감고 장갑 낀 손은 주머니에 푹 눌러 쓰고 있을 땐 유독 노래 가사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외롭다. 이 추위에 온기를 나눌 사람이 내 옆에 없어서가 아니라 이 노래가사를 함께 듣고, 나눠줄 사람이 없어서. 좋은 영화를 보고 멋진 노랠 들을 때 보여주고 싶어서 들려주고 싶어 전화기를 들 뻔 했다는, 언제들어도 좋은 김동률의 노래가사처럼.
이번 주3.
순간순간의 만족이 행복이 아닐까. 예를 들면, 여행가자!고 하면 언제든지 그래!라고 말이라도 해 줄 친구가 있다던지, 웃으면서 다가가도 우습게 보지 않고 미소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던가, 전화하면 '왜, 무슨일이야'가 아니라 '안그래도 네 생각이 났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다던가, 그리고 만날 사람이 있다던가. 기꺼이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 줄 사람이 있다던가.
이번 주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게 심드렁하다. 매 순간이 뭉클거리다가도 한 순간에 울컥인다. 이삽십의 글루미 시작.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요즘들어는 나를 위한 삶이라기 보단 남을 위한 삶, 남에게 (잘) 보여지기 위해 사는 삶이었다. 터놓고 종알종알 거리고 싶은데, 지금 내 주위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싶어 혼자 곱씹는 중이었는데, '뜻밖의 위로'라니. 지금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이 아닌가!
자신을 당장 이해해주기를 바란것도 아니다. 그저 옆에서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실은 큰 힘이 된다. 때론 비를 막아주는 사람보다 함께 맞아주는 사람이 더 위로가 되는 것이다.
6년차에게 신입사원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지만 신입사원 교육을 다녀왔다. 역시 죽을 때 사람이 변한다더니, 다들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그런 의미로 진짜 오래 살 것 같다. 내 동기들) 막내던 내가 서른이니 내 동기 오빠들, 이제 삼촌으로 불러줘야지. 가기 전에는 왜 가나 싶었는데 역시 다녀오니 3개월치 웃음보를 달고 왔다. 말그대로 "거친 바람에 떠밀려 뒤로만 계속 뒷걸음질치는 것 같다가도 함께 걷는 '동료'들이 건넨 손을 잡고 전해오는 그 온기에 다시 한 번 앞으로 걸어가보자고 힘을 내게 되는 것"
영하 18도, 체감은 영하 30도라는 (왜 하필 느껴도 삽십도일까. 30.. 너 참 안 익숙해진다. 흥) 오늘. 일요일이지만 사무실에서 하얗게 불태운 오늘. 또 난방기까지 고장나서 오들오들 떨다가 아랫층 동기 사무실에서 노래부르고 춤추다가 낄낄거리며 사진찍고 동영상 찍은 오늘. 맞다. 순간을 영원처럼 즐기며, 소소하고 즐겁게! 이렇게 1월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