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가능케 하는 그녀
문화쟁이들이 들으면 어이 없어 할 일이지만 사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이 좋은 날씨와 분위기를 두고 어두컴컴한 검은 공간으로 가는 것도 주저되는데, 가뜩이나 감정 이입까지 심해서 보고 나면 한동안은 속이 울컥인다. 액션영화를 보고도 눈물 짓는 나란 존재는 넘나 감성적인 것.
그런 내가 요 1-2년 사이에 재미붙인 게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밤에 혼자 영화보기'. 토요일 아침에 접속 무비월드를 보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문화평론가가 '그래비티'에 별점 다섯개를 주는 것을 보고 바로 예매해 본 것이 시작이 됐다. 그리고 혼자 본 영화들이 다 너무 좋아 취미를 붙이게 됐달까. (이제 남은 건 혼밥보다 혼자하는 여행이다)
그 때 본 영화 그녀HER가 이상하게 이번 9일간의 뀰같은 설 연휴를 시작하면서 계속 생각이 난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2가지. 첫번째는 시티뷰가 너무 예뻐서 너무 외로워지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언제고 스칼렛요한슨이어야만 하는 사만다OS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 지기때문이다.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저 뷰가 보인다면, 마음이 몽실몽실해진다면, 지금 당장 우쿨렐레가격을 알아보고 있다면 우리는 다 유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성장하는 것.
서로를 겁먹게 하지 않으면서 변화하고,
삶을 공유하는 것.
주인공이 OS와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싶으면서도, 이건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알싸해진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웃어준다는 건 어쩌면 사랑을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현실에서 이처럼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만 나를 바라봐 준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존재가 있을까. 아무튼 우리는 다 철컹철컹 유죄꾼들이다.
유독 잦은 주인공의 클로즈업 샷이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다. 왠지 내가 스칼렛요한슨이 된듯한(!) 느낌, 나와 너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나를 클로즈업 한다면 저렇게 즐거운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가능할지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비록 그것이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OS일지라도 함께 시간과 감정을 교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멋지고 강한 유대감일테니까.
누군가에게 이런 따뜻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며 순간순간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 플러스. 이 글을 쓰면서 자꾸 머리속에서 맴돌던 시의 한구절을 덧붙인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김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