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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Feb 21. 2016

토닥토닥, 김재진 (2012)

삶이 자꾸 아프다고 할 땐 토닥토닥

#1.

고생 많이했다, 속앓이 많이했지라는 말에 위로가 되던, 많은 말이 생략되어 있는 ^^에 팔이 찌릿하면서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은 하루. 마냥 기쁘다기엔 웃픈 하루였다. 생각하면 속은 쓰리지만 어떻게 하겠나. 감당이 안 되면 지워버리면서 덮어두고 다독이면 되겠지. 괜찮다 다 괜찮다.


#2.

참 놀랍다. 어쩜 그렇게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건지.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건지. 아님 잊은 척을 하는건지 그 생각이 궁금하다. 아님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정신병이 있는건가. 난 아직도 정말 아무렇다. 아무렇지 않지 않다고 나는.



어제 오늘은 참 '그 때'가 많이 생각난다. 가장 보통의 생활을 하길 바라던 그 때가 말이다. 그래서 인지 그 때 한창 읽었던 시집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는 밤이다.(나는 책을 매우 잡식으로 읽는데 시기마다 읽는 장르가 매우 다르다. 한 3년쯤 전에가 바로 시집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시는 이 앞전 브런치에도 포스팅했듯이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인데, 그 때를 돌이켜보면 문정희 시인의 '겨울사랑'과 구영주 시인의 '헛된바람' 그리고 김재진 시인의 '토닥토닥', 이렇게 3편이 마음에 남는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문정희, 겨울사랑)

나는 감정표현에 솔직한 편이다. 신나는 건 얼굴에 그대로 '개 신 남'이라고 적혀 있고, 우울하거나 신경쓰이는 일이 있으면 또 얼굴에 '개 우 울', 화가 나면 '건들이면 뭅니다'라고 써있는게 바로 나다. 단순하고 어려터졌다고나 할까. 그런데 유독 어색한 건 뭐라고 얼굴에 써야할지를 모르겠다. (대한민국 대표  미생답게 엑셀로 표현하자면 #N/A, #VALUE!, #REF!, #DIV/0!,#NAME 정도? 극혐) 그래서 누구를 좋아하는게 힘든지도 모르겠다. 어색한걸 어떻게 처리 해야될지 몰라서 ㅋ.ㅋ (뭐 이런걸 변명이라고 하고 앉아있네.)


그런데 머뭇거리지 않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너에게 가고 싶다니. 아 마음이 몽실몽실 간질간질하다.


하루에 한 줄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예고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안에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 없음처럼 (구영주, 헛된바람)


내 이상형은 매우 복잡하다. 말 그대로 내 이상이니까. 마이 아이디얼 타입이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 이상형은 한 마디로 반전매력이 있는 사람인데, 인간관계는 좁은 듯 넓고, 스타일은 안 꾸몄는데 꾸민 것 같고, 다른 사람에게는 시크하지만 나에겐 다정해야하고, 재치와 센스는 넘쳐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과하면 안된다. (내 '이상'형인걸 다시 한 번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이 현실세계에서 눈길이 가는 사람들은 정말 저런 것들과의 교집합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다. 정말 예고없이 내 마음에 훅 들어오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눈이 쫓고 있는 그런 거.


예고없이 들어왔을 때 처럼 예고없이 그대와 만나고 싶다는 이 시. 읽을 때마다 그 설레는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이 시. 이 시, 정말 너무 좋다.


얼마 전 제주도에 갔을 때, 밥깡패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너는 자꾸 토닥거린다./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김재진, 토닥토닥)


말이 따로 필요가 없는 시다. 말 그대로 삶이 자꾸 아프다고 했을 때가 있었다. 기대고 싶은데 이런 모습으로 기대면 안 될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그 때 이 시가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 잘 될거야가 아니라 다 지나간다고 서로를 토닥여주는 모습에 위안을 많이 받았다. 위안을 받고 싶을 때가 있으면 이 시가 떠오른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고등학생 때의 마인드라면 진짜 못할 게 없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의 마무리는 고등학생 때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시 한 편으로 해 볼까 한가. 너무 Aㅏ련해서 문학(상)시간에 이 시로 발표까지 했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10년도 더 전이라니. S***. 전직 문학도의 스멜이 짙은 포스팅에 뿌듯하게 주말을 정리한다.

그래도 I HATE MONDAY.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먼 후일,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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