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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Jun 21. 2018

왓치아웃

June 2018


우리 사무실은 모두가 벽을 쳐다 보고 있는 레이아웃이고, 내 뒤에는 가깝지도 멀지도 자리에 부장님이 계신다. 그래서 오늘은 낯이 뜨겁기 보다, 등이 뜨겁고 뒷통수가 시리는 보고서 킬링 타임이었다. 소올직히 옆 누구를 막 딛고 먼저 승진, 먼저 인정 이런 것에는 관심도,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도 잘 모르겠는 사회적 명예욕이 제거(!)당한 일개미지만 그래도 내 업무에 대해서는 멍청하다는 소리듣기는 죽기보다 싫다. 그래서 오지랖 극혐, 내 일은 잘하자주의 였는데 이런 내 최후의 보루같은 내 다짐이 훼손(!!) 위협 당한 하루, 종일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간다. 아 처음부터 꼼꼼하게 했으면 후회도 걸 했을텐데, 시간에 치여 하덕이며 일한 댓가다. 어쩌겠남, 이 보고서는 초벌구이 였다 치고 재벌, 삼벌구이까지 해서 입맛에 맞게 육즙 촉촉하게 태워가야지 (굽다가 내가 먼저 다 타버릴 수도) 이렇게 또 뼈 아프게 땀이 나면서 배워간다.


이렇게 재가 되어가는 동안, 동기언니들이 퇴근하고 뭐하냐면서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고 한다. 마음같아서는 엉덩이라고 붙여사며 12시까지 보고서 써야지 했는데, 떡볶이 앞에선 아무것도 이길 수가 없다. 이미 엉덩이는 의자에서 떨어진지 오래.


마라탕 속 건두부처럼 쭈글거려 흐느적거리던 나를 보듬아 주는 동기언니들이 참 좋다. 심플하게 딱 저 단어다. 좋다. 모남이 불쑥 튀어 나왔던 얘기를 하면 그러지 말라고 회초리도 들어주고, 난 입력대로 행동하니까 명령어도 더 추가해주고, 여행이야기를 하면 깔깔깔 같이 웃어도 주고, 형부들 이야기에 같이 분노도 해주고 (근데 이 언니들, 마지막엔 행복한 이야기를 하며 염장 맛도 보여준다. 언니들! 누누히 얘기하지만, 결혼을 혼자 할 수 있는 거라면 진작했어^^)


기울기가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그래프를 그린 피곤한 하루였음에도, 이런 즐거움이 있어 또 견딜 수 있는가 보다. 인연은 기다려서 오는게 아니라 찾을 때 오는거라고 하던데, 나도 작은 즐거움들을 찾아 내 일상을 더 만족스럽게 꾸며줘야겠다. 이 참에 잊지말고 내 인연도 슬쩍. 역시 오늘도 나는 나를 응원한다. 다들 됴딤해! 왓치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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