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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Mar 28. 2019

성찰, 데카르트 (1641)

모르는 것이 약인 성찰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을지는 몰라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읽겠다 싶은 고전 철학책이었다. 굳게 마음먹고 시작만큼 더 열심히 읽고 싶었지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힘든 게 현실. 소설 위주로 읽기에 아무런 서사구조, 어떠한 미사여구도 없이 아주 담백하게 쓰여있는, 쉴 틈 없이 생각게 하는 논리적 문장들이 매우 낯설었다.


나는 이제껏 내가 가장 참되다 여겨온 모든 것을 한편으로는 감각으로부터, 한편으로는 감각을 거쳐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감각이 가끔씩 속인다는 것을 알아챘다. 게다가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아무리 감각이 아주 작은 것과 아주 멀리 있는 것에 관해서 가끔 우리를 속인다 하더라도, 똑같은 감각으로부터 얻은 것들이면서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것들이 꽤 있다.


Cogito, ergo sum이라는 너무나 유명한 철학적 명제보다 오히려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에 관한 부분과 오류의 원인을 인식/선택능력인 자유의지와 연결시켜 설명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전자는 시니피앙/시니피에의 개념이 생각나면서 모든 것은 이렇게 기표와 기의로 나눠질 수 있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후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념과 지각에 따라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이나 행동을 취사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런 의지가 작용하는 부분에서 오류가 생긴다는 점에 깊게 공감했다.


뿐만 아니라 데카르트가 서언에 밝혔듯이 각 장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단계에 따라, 발견 및 증명의 순서에 따라 더 깊게 기술함으로써 읽는 사람들의 몰입을 높인 점이 신의 한 수였다. 신의 창조 질서가 아니라 지각의 순서에 따라,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는 방법적 회의란 가정 아래,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할 수 있다고 지각하는 인식에서부터 그 밖의 다른 인식들로 확장해나간 것이다. 이 책을 읽어 냄에 있어 내가 무려 데카르트의 사고를 따라가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매우 근사한 순간이었달까.


반면에 우리의 존재함을 증명하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명제의 명제의 증명을 신으로 설명하고, 그러므로 신의 존재에 대해 반드시 증명해 보여야 하는 과제 (무려 여러 번에 걸쳐 증명해내는!)가 무신론도 유신로도 아닌 내가 이해하기는 조금 의아했다.


고등학교 때 윤리와사상 과목에 도움이 될까 들췄다가 정말 밤새 읽었던 소피의 세계, 난 열정이 없는가에 대한 자괴감에 한줄기 위로를 주었던 피로사회 이후 아주 오랜만에 읽은 철학책이다. 취미를 갖는 것도 의무감이 들어버리는 여유없는 생활 속에서도 철학을 놓을 수 없음을 느끼게 해 준, 지하철에서 펴는 것만으로도 지적 허영심을 채 워 준 이 책이 반갑다. 하지만 이번 생은 소설 위주로 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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