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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Jul 26. 2019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2018)

관계의 쳇바퀴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

어제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멘탈 뱀파이어라는.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라는 책에 나오는 용어라는데,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을 숙주삼아 본인들의 감정을 불리우는 부정적인 사람-사실 너무 많은 유형이 있어 한마디로 정의가 안된다-을 뜻한다고 한다. 심지어 누군가는 어떤 시기에 따라 아주 가끔 멘탈 뱀파이어로 한 번쯤은 변한다는 강력한 한 방도 함께 정의되어 있다. 언제는 숙주로 쪽쪽 빨리다가도, 또 언젠가는 뱀파이어로 쭉쭉 빨아 먹는 양가의 존재.


 한 번도 다른사람의 감정을 헤치지 않아 본 사람이 있을까. '없다'. 발화자보다는 청자가 어떻게 판단하고,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속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니. 발화자가 판치는 이 시대에, 이 얼마나 '청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제목인가! 역시 최은영 작가답다.


 최은영 작가는 항상 좀 어렵다. 앞 서 리뷰 했듯이 누군가에게는 띵북이라는 쇼코의 미소를 난 세 번 정도 읽은 후에야 혹시 이 ..맛인가?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 전작보다 좀 더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해야하나. 읽기도 쉽고, 공감하기도 쉽고, 특히 나도 모르게 책을 닫고 가슴에 폭 파묻히는 문장을 곱씹을 때를 생각해보니 이 책은 분명 사랑받아 널리 읽혀야 되는 그런 책이 맞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p.121)


사람을 너무너무 얄밉고 미워지다가도,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속이 좁고 배려가 없는 사람인지싶은 순간들이 있다. 남을 더 많이 이해하고 포용 할 때가 바로 어른이 되는 순간이라 배워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치한 건 나쁜거고, 성숙한 건 좋은 것이라는 무의식이 나보다 남을 더 이해하고자 노력하게했던 것 같다. 정작 그들의 시선 속 나는 오간데 없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내’가 가장 중요해 지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꼭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모든 기준에서 내가 중심이 되는 건 반대 하지 않지만, 나만 있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혼자 살 수 없는 무한한 관계의 망 속에 갇혀 견뎌야 하는거니까 복세편살 나씨나길을 외치며 남에게 무례한 것까지는 결코 이해 받을 수 없다.


그애의 넉넉함은 물질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에서 드러났다. 모래는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나쁘게 보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전전긍긍하지 않고 애쓰지 않았다. 관대했다. 그 관대함은 더 가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비싼 자동차나 좋은 집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p.118)


 항상 이런 사람에 진다. 나만 아둥바둥하다 지쳐서 주저 앉게 된다. 그들과 나를 구분짓는 건 비단 가지고 있는 물질의 양과 질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여유의 크기다. 호수의 물결처럼 크고 잔잔하게 일고 싶은데, 순간마다 일희일비하며 파르르 거리니 하루살이가 따로 없다.


 마음도 근육이라는데 마음근육이 단단해지면, 모든 것에 무던해 질 수 있을까. 웃고 울고 불고 하던 순간으로 이뤄진 나라는 사람이 그런 여유의 사치를 부릴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지도,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그런 사람이 되길 희망한 건 불변의 사실이다.



상처 만들지 않기


이 책이 킬링 포인트는 작가의 말이다. ‘너를 위해하는 소리야’가 듣기 싫어서 어느 순간부터 술자리를 피했고, 어느 노래가사처럼 돈내라는 말보다 싫은 말이 힘내라는 말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무해하지 않았나 생각해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스스로 상처를 내지도 말고, 내 사람들에게 무해하려 노력하되 집착하지 말고, 무엇보다 멘탈 뱀파이어로 자주 변신하지 말고.


개인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개인행동은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p.324)


(그리고 마음에 폭 박혔던 문장도 기록)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덜 아플 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조용히 말해 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을 얼마나 가벼워질까.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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