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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Dec 27. 2016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아야코 (2016)

더 오래가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둔다

최근 2년간 정말 결혼이 하고 싶었다. 대화 주제 속에 결혼이 자연스럽게 껴들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나이도 되었고, 회사생활에 묻혀버린 내 삶을 발목까지만이라도 좀 꺼내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는 이야기가 남자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나였고 그래서 모든게 서툴렀고 내가 나를 보아도 어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그래서 '지금'에서 벗어나고자 2년동안 정말 여행을 습관적으로 떠났다. 떠나면 모든 것이 좋았다. 햇빛에도 마냥 행복하는 내 모습이 좋았고, 이상하게 뒤틀린 내 마음도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아서 좋았고, 사진을 찍어도 웃고 있는 내 표정이 밝아서 좋았다.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꼭 드라마 도깨비 속 공유의 대사처럼.


내가 처음 보는 환경에서도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다시 오지 않을 곳, 다시 보지 못할 사람'이 주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말투 하나까지도 입방아에 오르는 세렝게티 같은 사회생활과는 다르니까. 혼자 가는 여행은 꿈도 못꿨던 내가 이제는 혼자 여행도 좋다고 시간만 나면 항공권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나는 아무도 나에게 집중하지 않음이 주는 자유로움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람만 보면 좋아서 꼬리 흔드는 강아지 같았던 내가 이제는 피곤하다. 관계가 주는 피로감이 잘 극복 되질 않는다. 이야기를 이야기로 들으면 되는 건데 그게 잘 안된다. 더 솔직하자면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간의 믿음은 '판단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무조건적인 응원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미없는 작은 한마디로 서로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나를 위한 한마디에도 일희일비하며, 믿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론 저 사람을 믿고 솔직해도 되나를 끊임없이 묻는 내 자신이 정말 밉고 답답하다.


믿다[믿따]
1. 어떤 사실이나 말을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여기다.
2.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의지하며 그것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다.
3. 절대자, 종교적 이념 따위를 받들고 따르다.
그리고 4.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다.


회사 점심시간에 밥대신 혼커 하는게 너무 좋은 직장인 6년차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보게 된 책이 바로 『약간의 거리를 둔다』 이다. 아 정말 이 책. 피고 되고 살이 되는 촌철살인마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 장 한 장 느끼는 바가 너무 많은 바람에 안그래도 이 얇은 책을 너무 빨리 읽어버릴까 싶어 가방에 항상 넣어두고 시간이 나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천천히 읽었다. 어이없게 맞는 소리, 배려하는 직설 화법, 감동적인 명료함이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 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 경우엔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세월과 더불어 그에게 품었던 나쁜 생각들, 감정들이 소멸되고 오히려 내가 그를 그리워 하는 건 아닌가, 궁금함이 밀려온다.


저 단락을 읽고 나는 책을 덮고 한동안 카페 밖을 쳐다 봤었다. 유치원 2년 + 초중고 정규교육과정 12년 + 대학생활 4년 + 회사생활 5년 도합 23년을 사회적 동물로 살아왔지만 번번이 거리재기에는 실패한게 서른살의 나다. 때로는 너무 가까워서 타버린 적도 있었고, 때로는 너무 멀어서 추웠던 적도 있다. 뜨겁고 추워 한동안 잠잠하더라도 언제 데이고 언제 얼었냐는 듯 제 풀에 먼저 연락하는게 나라는 미련한 동물인데.. 이 분 언제 나를 보셨나.  소름돋는 명쾌함은 또 있다.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귀머거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청각장애자를 차별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적의나 차별 없는 말과 행동이더라도 상대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치욕스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도록 강해지는 방안을 생각해내야 한다.


어디다가 뒀더라 내 포스트잍. 어디있나 내 형광펜. 내가 아무일도 아닌 것에 상처 받듯이 분명 우리 중에 누군가는 나로 인해 상처 받았을텐데 왜 나는 잊고 있었을까. 사람의 아픈 구석은 너무나 사소하고 작은 부분이라  내가 상처 주지 않겠노라 다짐한다고 한들 마음처럼 되지 않을텐데 말이다. 정답은 바로 하나다. 청자로서의 내가 강해지기. 나부터 튼튼해지기. 의미 없는 말이 흔들리지 말고, 흘러가는 말은 흘러가는 대로 둬서 내가 나를 지키기. 찾았다. 내 포스트잍!


최근 본 전시회의 너무나 마음에 든 너무 멋진 작품 @leeum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도망칠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과 같은 생활을 앞으로도 유지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달라지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의 기본은 소박한 의식주의 확보로 충분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 살아가는 것보다 훌륭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 무엇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회사 다니기 싫어 죽겠다고 하면서도 여행만 하고 오면 '열심히 벌어야 또 논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바로 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뿐이랴. 여행을 다니다 보면 '여기 떡볶이집만 차려도 엄청 잘 되겠다'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이렇게 여행으로 와서 생각나는 거지 여기서 살면 생각 하나도 안 날테고, 혼자 살면 엄청 외로워 죽을 것이라며 자기합리화의 이유만 찾던 것도 나다. 그래도 이렇게 활자로 읽고 보니 지금에 대한 욕심과 도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목잡혀 있는 게 영 나만의 소심한 합리화는 아니었다싶다. 그래도 나는 현실욕심쟁이로 살 것 같다. 아직은 일개미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삶이 좋다는 변명은 덤이다. (그런데 월초/월말 이럴땐 진짜 싫다. 일개미 안하고 싶다. 여왕개미 하고 싶다. 꿀벌하고 싶다. 윙윙)


그럼에도 환영합니다.


모든 것에는 다 통과의례가 있다고 한다. 지금의 이 엄청나고 꽤 고통스러운 고민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고민인 때도 오겠지. 강한 내가 되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생각하면 못 견딜 것도 없다. 사실 적당한 거리에서 중불로 서서히 데워져 오래 가는게 더 좋은 일이니까. 그래도 먼저 나에게 뜨겁게 다가오는 사람은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이다.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하루아침에 지혜로워질 수는 없다. 사람은 오랜 세월 헤메야 하며,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때로는 어리석음에 정열을 불태우다가 끝내는 자신에게 필요한 최고의 선택을 내리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눈이 내리고 새싹이 움트고 작렬하는 태양이 시들어 비로소 단풍이 빛나는 가을이 찾아오는 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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