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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Oct 05. 2015

말하다, 김영하 (2015)

시작을 말하다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 모릅니다.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9월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하면서였다. 인생의 낭비라던-하지만 절대 끊을 수 없는- SNS 타임라인에 채널 예스에서 김영하 산문집 출간 기념으로 개최한 북토크 내용가 공유된 것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딱보기에도 엄청난 스크롤바를 쓸어 올리며, 오늘 퇴근하면 서점에 들러 당장 이 책을 사야겠다 생각했다.



Question.작가님이 만약 초등학생에게 독서교육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실지 궁금해요.

Answer. 저는 어렸을 때 자발적으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글쎄요. 선생님이 읽으라는 책은 늘 읽기 싫었던 것 같아요. 와타나베 쇼이치 『지적생활의 발견』 이라는 책이 있어요. (중략) 이분의 글 중에 재미있었던 게, 왜 아이의 공부방은 마련해주면서 아버지의 서재를 만들지 않는가 하는 거였어요. 아이의 공부방은 만들 필요가 없고, 일단 방이 하나 더 생기면 아버지의 서재를 만들어야 한대요. 아이는 그 밑에 앉은뱅이책상을 두고 공부하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는 아버지의 세계를 선망하게 되어 있다면서 ‘아, 내가 어른이 되면 저렇게 내 마음대로 책을 많이 살 수 있구나, 저 책을 다 내 마음대로 읽을 수 있구나’ 하게 된다는 거죠. 와타나베 쇼이치는 출타할 때 자기 방문을 잠갔대요. 아이는 아버지의 금지된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서, 내가 빨리 성장해서 나도 서재를 만들거야, 나도 커서 저 책을 다 읽을거야, 한다는 거예요. 혹시라도 아버지가 실수로 문을 잠그면 들어가서 몰래 책을 읽는 거죠. (중략)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하면 아이들은 분명 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것을 보여주고, 어느 정도는 아이를 책으로부터 금지시키면 어떨까요.



나는 아직 결혼도 안했고, 심지어 언제 할지도 모르지만 내 자식에게 꼭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몇 가지의 것들이 있었다. 그 중 이 대목에 생각는 두 가지가 있었다. 1)어렸을 때 부터 신문을 꼭 읽히겠다. 2) TV 보는시간 만큼 책을 많이 읽히겠다. (내 친구들은 지금부터 내 자식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아우성인데 나도 사실 딱히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대 전제는 변하지 않겠지. 결혼을 해야 자식을 낳는다는 것. 으악)


아무튼 나는 지금까지 1) 내가 항상 아침마다 신문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겠다, 2) 어딜 가면 책을 항상 휴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겠다는 다짐만 했었는데. 유레카. 답을 얻었다. 맞아. 어렸을 때 엄마가 TV 보지 말고 공부하고 있으라며 외출 할 때 나는 몰래 항상 TV를 봤었지. 그리고 엄마는 외출에서 돌아와서는 나에게 TV 봤냐고 물어 보는 대신 조용히 TV 뒷면을 만지시곤.... (이하 생략) '금지'가 답이다. 못하면 더 하고 싶으니까.


(이미지는 모두 문학동네 싸이트에서)



 책『말하다』는 김영하 작가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해 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새로운 형식으로 묶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참 호흡이 빠르다. 물론 구어체를 구어체로 엮어냈으니 읽기도 편하고 내용도 쏙쏙 들어온다. 앞에서부터 읽을 필요도 없다. 가지고 다니다가 시간이 나면 내가 읽고 싶은 부분부터 먼저 골라 후딱 읽으면 된다.


내 브런치(작가가 될지도 안될지도 모르겠지만) 첫 글을 이 책으로 선택한건 바로 '시작'이라는 키워드가 같아서다. 미생 3년차 정도 됐을 때, 친구들에게 '나 한 번 책을 내보고 싶어. 엄청 거창한거 말고, 출판사도 아니고 지금 딱 공감받을 수 있는 이야기로, 아주 소소하게. 우리 같이 해보면 진짜 좋을텐데' 라고 이야기 했다가 정말 나의 위시리스트가 되어버렸다. 블로그는 너무 광범위 해서 재미가 없고, 그렇다고 어디 써 볼 곳도 없는데 마침 후배의 브런치 극찬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진짜 시작했다.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수업에는 글쓰기를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백지를 나눠주고 적당한 주제를 줍니다.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기억에 대해 쓰라' 같은 것이었는데, 단, 미친듯이 쓰라고 했습니다. 일단 첫 문장을 쓰면 숨 쉴 틈 없이 몰아쳐서 써내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자, 이제 우리가 마음속의 악마를 잠재우고 자기 예술을 시작하려고 할 때, 이제는 밖에서 적들이 나타납니다. 배우자일 수도 있고 부모일수도 있고, 회사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여러분이 하려는 작업을 막아섭니다. (중략)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말하면 됩니다. -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p076-077)



지금 당장 시작하자. 회사에서 선배들이, 관리자들이 '지금 당장' 해달라는 일만 제 딱 제 딱 해주지 말고, 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도 빠릿빠릿하게 하자. 언제까지 하릴 없는 시간만 탓하고 있을 건지 나부터 반성해야겠다. 아아아 난 그래도 시작했다. 이 시작이 절대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한 두번에 게을러지지 않도록 작심삼일 x 12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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