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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Oct 11. 2015

감정수업, 강신주 (2013)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한 감정수업

대학교 4학년 때였나,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는데 조그마한 것 하나에도 깔깔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써니야 너는 아직 안 늙은 거 같아 보기 좋다. 나는 어른이 되었나봐 감정이 없어. 크게 기쁘지도, 크게 슬프지도 않고 모든 게 심드렁하다"고 사뭇 우울하게 얘기한 것이 기억난다.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어른에 대한 새로운 정의? 특이점? 이었다랄까. 아무튼 지금까지도 사뭇 생생하다. (여의도 파스쿠찌, 일자형 흰색 소파였다. 아 난 미련이 많은지 옛 것에 대한 기억이 좀 집착적이다. 아니 잘 안 지워진다. 나도 내가 무섭다)


이 책을 산 건 강신주를 사실 좋아해서도, 스피노자를 알아서도 아니고 '머리말'을 읽어보니 그 친구와의 대화가 기억났기 때문이었고, 감정이 나열되어 있는 '차례' 때문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얻었다는 것 아닐까요? 매사에 일희일비하면 너무나 피곤해지는 것, 혹은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불이익을 받기 쉬운 것이 사회생활이자 가정생활이니까요. (머리말, p6)


이 책은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분류한 인간의 48개의 감정을 48권의 문학과 어드바이스, 명화와 함께 소개한다. 나는  1) 차례를 보고 2) 내가 지금 읽고 싶은 감정을 선택하고 3) 읽었다. 그리고 2개의 감정에 크게 동의했는데, 바로 "끌림"과 "두려움"이다.


중요순간엔 다 존잘남이 나온 얼굴이 전부인 뷰티인사이드(2015) '스테이크 좋아해요, 초밥좋아해요?' -네이버영화


사랑과 끌림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우연'이다


나에게 있어 끌림이란 사랑의 전 단계다. 그런데 사랑과 끌림을 따로 떼어내 정의하다니. 멋있자나 스피노자 ㅜㅜ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기쁨이 필연적일 때, 사랑이라고 하고, 우연적일 때, 끌림이라고 말한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는 것이다. '내가 우울하면 그녀의 유머감각은 분명 내게 기쁨을 줄 수 있고, 내가 가난하면 그가 가진 돈이 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이것이 우연적인 기쁨의 핵심 요소'란다.


진짜 인생은 타이밍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끌림을 사랑의 전 단계로 생각하는 나에겐 끌림은 타이밍 같은 거라고나 할까.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우연적인 조건과는 무관하게 그와 함께 있으므로 인해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데 스피노자는 대단한 운명론자였을지도 모른다. 짠-하고 필연적으로 나타나서 지속적으로 기쁨을 주는 존재가 있을까. 있길 바라는 나는 또 한편으론 운명론자인지도.



끌림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나의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음식이 배가 고파서 맛있는 것과 입맛에 맞아서 맛있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이 사랑에 허기질 정도로 불행한 상태는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한다. (p.406)



행복하게 살자! 맞다. 강신주 말이 맞다. 아무거나 넙죽넙죽 이것도 사랑이다, 저것도 사랑이다 하지 않으려면 나부터 봐야 한다. 내가 누구이고,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길 잃은 어린 양이 되지 않을 수 있겠다.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선, 어느 정도 행복해져야겠다. 엄격한 B사감처럼 사랑도 끌림도 부정하는 문제가 심각한 나지만.(나 좀 헷갈리고 싶은데) 아 먼저 행복해지자. 행복이 왜 때문인지 몰라도 자존감과 같은 말로 느껴지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자.


두려움은 결과에 대해 의심되는 미래,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


뒤는 이해 못한 문대생에겐 잔혹한 인터스텔라(2014)-네이버영화


두려움은 과거 불행에 대한 기억과 짝을 이루는 감정이라고 설명하는데, '불행한 과거는 과거지사로 그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는 꿈꾸는 동물이기 때문에 과거가 행복한 사람은 미래를 장밋빛으로, 과거가 불행한 사람은 미래를 잿빛으로 꿈꾼다'고 한다.


가볍게 살자! 지금까지의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앞으로 더 나아질거라는 긍정의 과잉도 말고 가볍게 살자. 말은 엄청 쉽게 하는데 아무튼 가볍게. 과거의 아픈 기억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염려는 좀 제발 제쳐두고 지금 당장에 충실하며 가볍게.


나부터 변해야지 온 세상이 변하지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일단 나부터. 그래야 남탓도 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ha. 끌리는대로, 가볍게 행복하게.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29세의 마지막 3개월이다. 유난이다 호들갑이다 하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 난 심각해서 진지하다. 궁서체로 심난한 29.7세의 10월 둘째 주말의 밤이다. 괜찮아 앞으로 나이스해 질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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