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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Oct 19. 2015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2015)

항상 고마운 내 옆에 있는 사람

scene 01.

지난 주의 그레이트한 발견은 '72초 드라마, 오구실' 이다. 시작은 출근길 동기 언니의 페이스북 태그. '운명은 만드는 거다! 나 요즘 이거 봄' 30대 흔녀의 일과 thㅏ랑, thㅏ랑과 일의 한 꼭지를 72초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동영상인데, 1편을 보는 순간 뭔가 입가에 미소가 띄어지면서, 막 심장이 간질거리면서, 전두엽이 찌릿거리는 게 길거리에서 으악 소리 지르고 바보처럼 실실 웃고 말았다. 누가 나이고, 누가 오구실일까. (정답:예쁘면 오구실 아니면 이하생략)


scene 02.

병원과 은행 콤비네이션 클리어를 목표로 금요일 오후에 무려 입사 첫(!) 반차를 냈다. 오후 1시쯤 지하철을 탔는데 당산철교를 건널 때 그 한강과 햇빛도 너무 좋아 피식 웃음이 났다. 10년을 내리 타고 있는 2호선 내선순환 열차의 그 공기atmosphere가 말 그대로 좋았는게 새삼. 좋았다? 행복했다!


scene03.

서촌에서 아끼는 후배를 만나 정말 단 한 방울의 알콜도 없이 카페인으로만 4시간을 수다 떨면서 삼라만상을 훑었는데 정말 유쾌하기 짝이 없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다. 어느새 우리가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다 컸다 다 컸어 우쭈쭈쭈 하기에는 너무나 대학생활이 그립고, 미래는 두렵다.


scene04.

내 annual event인 GMF를 다녀왔다. 제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구름 한 점 없는 정말 넓은 잔디에 누워서 발등 까딱이며 듣는 노래는 마치 인셉션같았다. 천지를 울리는 노래라니. 이것이 꿈이라면 절대로 깨지 않길. 킥 따위는 멍멍이에게나 줘버리라지. 모든 것이 좋고, 즐겁고, 행복했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시간을 붙잡고 싶다.


scene05.

처음 보는 사람과 6시간 동안 얘기하는 경험을 아주 오랜만에 했다. 친구들 외에는 다시는 못 할 줄 알았는데. 아무튼 색다르면서도 의미 있었고, 신선했다. 뭐 좋은 분 만나시겠지 ㅋ.ㅋ



지난 주는 정말 오랜만에 '사람'으로 가득 찬 한 주였다. 그래서 생각난 책이 바로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다.


운명을 기다릴꺼야, 만드는거야. 자기전에 잠깐 봐요 오구실.


난 이병률이라는 작가보다는 이병률의 책들을 좋아한다. 여행길에서 문득 맞닥뜨리고, 잠깐 스쳐가는 생각들을 적어내는 이병률은, 여행을 좋아하고 이런 감성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땡큐다. thank you so much. 하지만 사실 모든 글이  좋다기보다는 몇 부분이 정말 크-게 공감돼서 오-래 남는 게 좋음의 더 큰 이유다. 제일 많이 선물해 준 책도 역시 이병률 책이고, 심지어 얼마 전에 책장을 정리하다 보다니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3권이나 꽂혀있었는데, 다 이유가 있는거겠지.




우리 모두에게는
미처 열어보이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는 법이다.


뙇! SNS에서 이병률의 신간을 예약한다는 소리를 듣곤 정말 1초의 고민 없이  결제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왠지 전작과는 다르게 '1초의 고민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이병률이 아니던가. 역시나 이 부분이 나의 마음에 성큼, 그것도 아주 크고 묵직하게 차지해 버렸으니 이제 어쩔 수 없다.




나와 많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두렵다. 비슷한 사람하고의 친밀하고도 편한 부위기에 비하면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속을 여미게 된다. 그럴수록 나와 같은 사람을 찾겠다면서 여러 시험지를 들이대고 점수를 매기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기준과 중심들을 꺼내놓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해 못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은 참 그렇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살며 혼자만의 시력만큼 살아간다.



예전과 다른 게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이어간다는 것이 참 어려워졌다. 꼭 사람들이 변하고,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라기보다는 그냥 믿음에서 오는 기대감이 무너지는, 억장이 무너지는 실망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겠지. 아이고 내 머리가 컸네, 내 머리가 컸어. 설익은 기대와 쥐고 있던 믿음이 무너졌을 때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몰려오는 그런 허무한 기분과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듯한 느낌을 더 받지 않도록 자꾸만 속을 여미는 내 모습이 싫긴 하지만. 그럼 어떻게 해. 나는 일단 살고 봐야지. 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 스스로를 채근질 하기 보다는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혼자만의 시력으로 사는'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게 좀 덜 아프겠지. 알면서 왜 이렇게 안되는 거니. 미치겠네 정말.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즘 따라 부쩍 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고맙다. 미숙한 모습부터 루저 외톨이 쎈척하는 겁쟁이 모습까지, 내 날 것을 보고도 뒷걸음질 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고 기다려 준 내 사람들. 나도 그 사람들이 힘들고 지칠 때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큰 다짐을 한다.


매일 한번 쯤은 웃을 거리가 있었던 주중과 북적이는 주말을 보내고 나면 정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월요일이 말도 안될 만큼 더디게 흐른다. 이런 날에는 왠지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저기 날갯죽지 밑 어딘가에서부터 모락모락 피어난다. (이래서 될 수 있으면 일요일을 아주 경건하게, 매우 홀-리holy 하게 보내려고 한다. 마음의 준비 차원에서) Hㅏ 쉬운 게 하나 없네. 쉽지가 않아.


서울의 회색분자 같은 내 모습을 반성하면서 심쿵 하게 했던 책 속 구절로 마무리해본다. 아무튼 외로운 밤이다.


조금 바보처럼 살아도 되겠다 마음먹고 살고는 있으나 바보 같은 사람을 만나면 풀어진 나사를 조여주고 싶어 안달하고, 느리게 살아도 되겠지 하면서도 바로 앞에 지름길을 놔두고 다른 길로 가겠다는 사람을 보면 눈이 삐었느냐 묻는 나는 이 얼마나 요란 복잡 시시한 사람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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