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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Jan 21. 2020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2017)

그래도 아름다운 나의 외로운 도시

 

 여행을 카테고리화 하자면 나는 도시형 뚜벅이다. 일단 나는 24시간을 바다만, 산만 보며 지낼 수가 없다. 눈이 부시게 푸른빛이 거둬지고 난 칠흑 같은 그 어둠이 싫다. 지금은 휴양과 직결되는 이미지가 부여되어 있지만 과거의 자연은 고난과 외로움, 무서움의 대표적 상징물이었다는데 나는 어째 과거의 표현이 더 그럴듯하게 와 닿는다. 그래서 나는 도시가 좋다. 어제 본 풍경과 오늘의 풍경, 내일의 풍경이 달라지는 그 도시의 순간들이 좋다. 사람들이 생동하고, 그 사이를 촘촘히 매운 푸른 여유, 적절한 백색소음이 가득한 도시 말이다.


한국버전 보다 나은 서양버전. from google


 도시는 다 다르다 미국의 도시들은 돈이 최고임을 느끼게 해서 신이 나고, 유럽의 도시들은 돈이 다가 아님을 느끼게 하고 신이 나고, 아시아의 도시들은 서울 같은 익숙함에 신이 난다. 여행지에서 나는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길티플레져, 커피에 의지해 2만보쯤 걸으면 공복의 기쁨이, 비가 오면 싱잉 인 더 레인이 흥얼거려지고, 눈이 오면 러브스토리가 생각나는 무한 긍정체가 되어버리지만, 그래도 이제 한 가지는 정확히 안다. 돌아 올 곳이 있어 즐겁다는 것을. 맨날 쉑쉑버거만 먹고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난 떡볶이가 필요해!


  그래서 아무래도 절대 잠들지 않는 나의 도시, 서울이 제일이다 싶다. 서울은 생동감 있달까, 흥이 넘친달까. 눈코입귀 만족을 넘어서 말할 수 없는 그 흥을 주는 오감이 만족되는 나의 도시. 출퇴근 시간에 그 부대낌은 진짜 너무 싫어서 할 말은 없지만, 2AM까지 거리에 왁자지껄해 어이없는 웃음이 나는 도시. 내 맘 이해해주는 이 1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함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는 정말 거리마다 추억 하나씩은 꽁쳐 둔 마력의 도시. 나는 심심한 천국보다는 재밌는 지옥이 좋다.



  얼마 전에 집 앞에서 버스를 타는데 그 날따라 무척 붐볐다. 한 정거장 지났을 뿐인데 내 앞에 자리가 비었다. 심지어 레그룸이 넉넉한 앞에서 두 번째 자리. 기분 좋게 앉아 본격적으로 노래를 들을 겸 선곡을 하고 있었다. 또 한 정거장쯤 지났을까, 구부정하게 할머님 한 분이 타시길래 자리를 비켜드렸다. 나도 쭈뼛, 할머니도 고맙다고 쭈뼛하다가 부스럭 부스럭, 가방에서 요쿠루트 하나를 주셨다. 고마워 학생. 엉겁결에 꼭 쥐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이 요쿠루트를 마실 수가 없는 거다. 불현듯 떠오른 '어떤 어른이 주신 음료를 먹고 정신을 잃었는데, 몹쓸 일을 당했다'카더라의 도시괴담이 왜 이때 떠오르는 건지.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 선행조차 믿지 못하게 만든 이 사회가 이상한 건지, 아님 본디 도시란 이렇게 항상 의심을 하게 하는 특성인 건지 이거 정말 지옥이 따로 없네.


그럼에도 호퍼 만세 만세 만만세

 

 호퍼부터 앤디 워홀 그리고 뉴욕이라는 팬시한 아티스트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예술과 사회이슈를 풀어내는 내용엔 충분히 눈길이 갔다. 그러나 외로움은 사람이니까 당연히 느끼는 촉감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라서 이 책에 깊게 몰입할 수 없었다. 시골은 외롭지 않나요, 수도권은요?


 이 책의 마지막쯤엔 작가 역시 '개인으로서의 우리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스티그마와 배제라는 것이 낳은 결과'임을 인정하는 걸 보니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대와 싸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설정한 기준과 관계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내 기대의 정도가 만족할 수준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 더 크게 지각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마음을 열어야겠다. 기준을 넓히고, 사고의 유연함을 키워야겠다. 모든 것이 내 범주안에 들어와 외로움을 느낄 틈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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