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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Jul 09. 2020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2011)

일상적 선택의 빛과 물질

사람 간의 관계에서, 그리고 이따금 스스로도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감정들이 있다. 때로는 그럼 감정에 죄책감도 느끼고, 그 감정에 파묻혀 외롭기도 우울하기도 하지만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체화시켜 살아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는 것. 요즘 작가들은 그것을 기가 막히게 잘 뽑아내고 나는 한동안 그것을 열심히 소비했다. 이게 바로 한국소설의 맛이라면서. 이런 감정들은 한국 소설로만 이해받을 수 있다면서.



그런데 그런 나의 개똥철학이 미국 소설에서, 자의적으로는 읽지도 않았을 제목의 이 책에서 린치를 당했다. 심지어 5년도 더 전의 나왔던 책에서, 10개의 크고 작은 미국의 어느 도시에 놓여 10번의 어퍼컷을 당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나의 중요한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p.125)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위로는 포옹으로, 해결은 돈으로’라는 나의 사고 구조를 자책하게 된다. 특히나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2♡를 통해, 해결 역시도 포옹이라는 것에 거대한 방점을 찍어버린다. 이거 뭐 내 기준 찐 낭만이다.


다른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글에서처럼 다른 사람이 나를 채워주거나 구원해 주는 일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머리든 마음이든 안정적인 것을 언제나 추구하기 때문에-대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없도록 설계된 까닭에- 불행히도 안정을 주는 사람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게 아닐까.  ‘정확히 그 사람만큼의 크기와 모양의 구멍’이 내 마음에 뚫리길 바라는 그 마음으로.


제목과 내용을 연결시켜 누가 빛이고 누가 물질이니, 헤더가 누구를 더 사랑했다더니 이런 말보다는 그냥 나는 콜린의 모든 것을 품는 그 모습도 해결이고, 정신적 교감을 통한 포옹 역시도 돈으로는 풀 수 없는 해답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심지어 둘 다 엄청 훈남으로 묘사된 건 행간에 묻어둔다). 사실 내가 마음으로 끌리는 사람과 머리로 끌리는 사람은 다를 수 있으니까. 다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면 내 선택으로 하나는 놓아야 하는 그런 통제라인의 마지막은 바로 나니까, 이건 우열을 다툴 수가 없게 된다. 헤더가 콜린을 대하는 방법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죄의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거냐고? 글쎄. 나는 이 또한 헤더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선택



단편을 읽을 때면 응당 작가는 왜 이것을 썼을까, 한 권으로 묶어낼 수 있게 한 이 단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실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10개의 단편이 어떻게 한 권으로 모아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설명할 수 있는 무수한 키워드 중 하나는 '선택'이 아닐까.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관점만 있어 정말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남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남의 속도 모르고 뭐 이렇대. 체념적이지만 그래도 끌고 왔던 긴장들 역시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끔 툭 하고 끝내버리는 결말 하고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활도 다르지 않다. 결코 '이 이야기들 속 소재들이 과거의 내 경험입니다'라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돌이켜 보면 늘상 나의 선택은 남의 속도 모르고(참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알아서 했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시시할 수도, 미적거리다 사라질 수도, 혹은 더 크게 불어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나의 몫.


읽을 때는 너무 재밌게 빠져서 읽었는데, 뭔가 이런 나른한 삶을 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기도 하다. (나른한 삶이 가능한 그들의 rich함이 부러울 따름) 그러다가도 또 간간히 이런 사랑의 모습이 생각 날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 나의 선택을 받을 걸까, 받지 아니한 걸까.


잠시 나는,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지난날의 늦여름 오후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 짓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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