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20
첫 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 방바닥에 누워만 있었다.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물론 잔뜩 습하고 흐린 날씨가 한 몫했다. 뭐랄까, 남들은 일하는데 나는 놀아서 기쁜 와중에 비에 젖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즐거움을 극대화했달까. 연차는 여행갈 때만 쓰는 것이라 여겼거늘 간혹 하루씩은 장마철에 쓸 듯. 물론 남는다는 가정아래.
둘째날엔 여수엘 갔다. 도착해서 꽃게장을 일단 채워넣었는데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더욱 달고 시원했다. 역시 기대는 해롭다. 돌산대교가 맛지게 보이는 곳에서 느긋하게 햇살을 즐겼다. 날씨의 요정이 이겼다. 그러곤 숙소에 들어가 쉬었다. 날이 또 꾸물해 나가기 보다는 초밥셋트를 시켰는데 2시간이 걸렸다. 비가 들이퍼부었는데 가져다 준 것에 감사해야하나. (그러기엔 프론트에서 받아오느라, 다 젖었다) 막 먹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한 번의 천둥에 인터넷이 나가더니, 그 다음 번의 번개에 거푸집이 나갔다. 그 와중에 (빗물 반) 초밥은 들어가더라. 그 암흑속에서 1시간을 버텼다. 천둥번개가 요란할 때는 최대한 유리에서 떨어져 있어야 된다고 해 쇼파에 앉아 쉴새 없이 치는 번개를 감상했다. 번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양이 맞고, 빛은 매우 많이 강하다. 번개와 비가 잦아들 때쯤 누군가 와서 거푸집을 올려주었고 긴장이 풀린 우리는 그대로 페이드 아웃.
넷째날엔 선암사를 갔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걸어서라도 가라던 선암사를 갔다. 나는 역시 바다보다는 산이다. 이런 각기 다른 초록의 채도들이 좋다. 눅눅한 이 풀냄새, 흙냄새들이 좋다. 셋째날에 간 향일함도 그랬다. 모기에 다리를 다 쥐뜯겨도 초록의 길이 좋았다. 아 향일암에선 정말 상반기 못난 모습의 나에게 하는 좋은 말이 있더라.
불견 :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하리
7말8초 한국의 여름을 아주 물로 보고 손풍기도 없이 몸만 휴가가 끝났다. 아마도 입사하고나서의 첫 국내 하계휴가인 듯. 역시 서울은 좋지만 여행용얼굴은 서울을 벗어나야 가능하고, 대자연은 위대하다. 갖가지 배려는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므로, 일상의 일시정지는 확실하게 필요하다.
그래도 난 아직도 여전히 비행기 10시간 타고 싶다. (편도로.) 구글맵 보고 운전하다 길 한복판에서 목적지도착 했다며 네비 종료되고 싶다. 면세점에서 호들갑 떨며 물건 찾고 싶다. 잘 모르는 이문자들을 내 멋대로 읽으며 헤죽헤죽 싶다. 세면대가 높아서 까치발 들고 세수하고 싶다. 휴 깨지기 쉬운 일상 더 아껴주며 누릴 수 있을 때 더 누려야지. 아 출근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