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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Jan 12. 2021

기지개를 켜며

January 2021


미스터리 중 하나는 같은 시간에 시계를 보는 것.


정신 차리고 시계를 보면 11시 20분, 밥 먹고 다시 정신을 차리면 5시 30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뭐 하는지도 모르고 손 틈 사이로 시간이 흐르는 몇 달이었다. 불행히도 시간에 잡아 먹힌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견딜 수 있었던걸 지도 모른다. 그렇게 11월 중순이 와서, 여행 간다는 느낌도 없이 주섬거리다 떠난 제주가 요즘따라 많이 생각난다. 말할 거리도, 말할 기분도 챙기지 못한 채로.


같이 환호했던 그 밤을 기억한다. 같이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빠졌던 잠깐의 정적을 기억한다. 성긴 느낌 없이 진득한 속내를 얘기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와 이들의 관계. 한동안 관계라는 단어가 주는 근원모를 오글거림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던데-소통이란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손발 안으로 말리는 느낌을 말끔하게 해소할 우리의 사이를 규정질 만한 단어를 찾았다. 우리를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할 연대감.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시답지 않게 응원하지 않으며, 드러나는 것 외의 잠재력을 믿고 돋우는 그런 관계. 우리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재질이라는 연대감. 그래서 난 참 이들이 좋다.


영점을 강조하며 발란스를 강요받다 보니 불필요한 내적 강박과 자기기만의 너울에 휩쓸렸고, 결론은 역시나 인생은 혼자라는 것이었는데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애당초 회사에서는 이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는데, 이 역시 늦었다)


어차피 다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니 현재에 매몰되어 지내지 않겠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겠다.

새해, 의미 없는 몇 사람의 백마디보다 소중한 사람들의 한 마디를 아로새겨야겠다. 다시는 말도 안 되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 시키려 나를 좀 먹는 일은 하지 않겠다.


어째 갈수록 진지충이 되어 가는 느낌이지만, 오랜만에 동굴밖에 나와 기지개를 한껏 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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