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1
회사원의 기쁨 중 하나는 명실상부하게도 긴 연휴다. 연말엔 냅다 ‘내년 빨간 날 00일, 올해보다 0일 적어’란 기사가 올라오는 거보면 기자도 회사원인 거 쌉인정. 올해 가장 긴 연휴였던 추석, 우리 회사는 공식적인 빨간 날 뒤의 이틀을 고맙게도 전사 휴일로 지정해 주어 총 9일을 내리 쉰다. 그동안 이제 피부와도 같은 마스크와 함께 오랜만에 피아노 연주회도 갔고, 더 오랜만에 카페 투어도 했고, 책도 3권이나 읽었다. 가족끼리 식사도, (매한가지 스타일링이긴 하지만) 머리도, 옷장 정리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물론, 내가 아무 곳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절은 명절이다. 결혼은? 연애는? 소개팅은?이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물어보지는 못하고 내 눈치만 보는 더 짜증 나는 상황이 있을까 봐, 그것도 아니면 엄마 아빠의 푸념 섞인 잔소리-나 이모할머니 됐는데, 누구네는 둘째도 애 낳았다던데 우리 애들은.. 식의-에 눈치가 보여 알아서 다 빠졌다.
요 몇 달 사이 다들 부쩍 다들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바람에 지레 겁먹은 것도 부인하진 않겠다. (특히, 몇몇은 나를 아주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는데 도대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그렇게 입 밖으로 내뱉는 건지 모르겠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나른한 회사원1의 삶도 심심하고 지루해 텐션을 단도리질 하는 것도 힘들고, 누군가의 훈수들에 굳이 웃는 낯으로 누군가를 맞이하는 것도 매우 골치 아픈 일이라 필요 이상의 만남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데, 뭘 또 굳이 호랑이 소굴로 들어가, 들어가길. 아, 이럴 땐 해외로 튀는 게 최곤데 진짜. 별게 다 신경쓰이고 눈치보이고 짜증나는걸 보니 진짜 명절은 명절이다.
휴일 7일 차. 옆동네에서 친구와 간단하게 커피 한 잔마시면서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 중간, 대뜸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이 돌아온다. 비단 결혼뿐 아니라 모든 게 한다고 행복, 안 한다고 불행 이건 아니라고. 그때는 가볍게 맞아 맞아하긴 했지만, 어째 집에 돌아오는 길엔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또 다른 사람 기준에 맞춰 생각하느라 감당하지도 못할 오버페이스에서 강제로 스피드 다운시켜주는 그 말이 너무 고맙다. 10년도 더 전에 귀에서 진물 나게 들었던 그때는 비 오는 날이 더 제격이었던 거 같은데, 요즘엔 익어버린 초가을 볕이 드는 버스 안에서 더욱 완벽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 노래의 가사가 더욱 또렷하게 흐른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네가 필요로 하는 나의 모습이 같지가 않다는 것 잘못된 건 아니지 않나요. 미안할 일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왜 또 그렇게 자꾸 날 몰아세우는 건데. 도대체 뭐를 더 어떻게 해. 난 몇 마디의 말과 몇 번의 손짓에 또 몇 개의 표정과 흐르는 마음에 울고 웃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대체 내게서 뭐를 더 바라나요. (한계/넬)
아, 우리다 모든 순간에 일희일비하는 나약한 존재면서, 그냥 서로 의지하며 잘 살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버라이어티, 익스트림까진 아니어도 알아서 재밌게 잘 살고 있으니 뒤흔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이 정도면 각도기로 태어났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넘치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채워서라도 각도 지키려 노력하고 있으니 속도 모르고 헤집어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간에 되는대로 충실하게 나를 위해 살아야 남 탓하지 않고 단단하게 자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좌충우돌하는 중이니 그냥 믿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쭉 지켜봐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