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021
지하철은 타기만 하면 목적지 전에 내리는 경우는 없다고 철떡같이 믿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고깃집에서 1인분에 6천원하는 돼지고기를 구워먹고 어른이 다된 듯한 뿌듯한 기분이 들던 중학생 때. 중간고사인가 끝나고 친구들이랑 이대에 갔다가-엄마 몰래 귀 뚫고-집에 오는 길이었는데, 신도림이 종점이라며 불 다 꺼지고 내리라길래 당황했더랬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대세를 따라 스무스하게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가, 인천행 1호선 승강장에서 친구와 동공 흔들렸던 비행청소년이 장성하여 이제 메트로 우수고객이 된지 언 15년.
기진맥진해서 달달구리가 필요할 때 가끔 사먹은 델리만쥬집도, 환승통로에선 나던 이름 모를 나물냄새도 그대로일까. 쉴새 없이 삑삑 소리 나던 개찰구, 말소리대신 들리던 신발굽소리들, 아는 사람을 만나도 타이밍을 놓치면 뒷사람에 치여 무빙워크 탄 듯 스쳐지나갔던 공간들. 홧김에(=빡쳐서) 회사 점심시간에 나와 피어싱 2개나 뚫었는데 그 가게는 없어졌더라.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가 지하철이 아닐까. 이 곳에는 시간약속에 예민한 나에게 안성맞춤이 담보된 적시성과 교통수단 중 유일하게 책읽기를 가능케 하는 가독성이 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방향마저 다르게 두 번 이상도 타는 지하철엔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는 삼라만상의 네박자. (별 얘기가 많은데 글 여백이 좁아 증명하지 못함)
택시도 안 잡히는 12월의 어느 날. 빡빡한 신도림행 막차를 타며 떠올랐던 단상을 끄적끄적. 우리도 신도림에서 옷깃 한번 스친 인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