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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자

작년 여름 독서치료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시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나는 모든 것이 '시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늘 그래서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독서치료를 하며 '왜?', '무엇 때문에?'일까를 고민해 볼 기회였다. 


'작가의 서랍'을 정리하다가 몇 년 전에 저장해 둔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잠이 안 오는 어느 날,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다 혼자 청승을 떨었던 이야기다. 그때의 생각과 기분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내가 삶의 변화를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도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을 고민한 이후였던 것 같다.


202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아침 일찍 초상이 났다는 얘기를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뜯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였다. 누군가에겐 마지막 날이었고 누군가에겐 엄마를 잃은 날, 누군가에겐 딸을 잃은 날, 누군가에겐 아내를 잃은 날이었다. 하필 크리스마스. 생각이 많았던 날이었다. 몇 년 전 썼던 글과 최근 경험한 일을 함께 정리해서 적어본다.



나도 언젠간 죽겠지

며칠 전 아는 집에선 한 생명이 태어났고 다른 집에선 한 생명이 떠났다. 삶과 죽음에 대해 갑자기 고민이 드는 밤이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죽기 직전에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데 사실일까? 그래서 '이제 나는 죽는구나...' 하다가 전원을 꺼버리듯 생각이 툭 끝날까? 만화나 영화에서처럼 사후세계가 진짜 존재할까?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어렸을 적부터 '죽음'에 대해 고민한 적이 많았다.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다가 멀쩡히 옆방에서 주무시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혼자 꺼이꺼이 울 때도 있었다. '내일부터라도 엄마, 아빠한테 앞으로 잘해드려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다. 작심삼일이지만.


'죽음'은 상상만 해도 무섭다. 아무도 알려줄 수 없는 세계라서 더 두려운 것 같다. 이 날도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가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될까?'에 멈췄다. 모든 것이 슬퍼졌다. 밤이란 시간이 너무너무 무서웠다. '지금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고, 남편 얼굴도 쳐보다고 울고. 한밤중에 청승을 떨며 진짜 내일 죽을 사람처럼 펑펑 울었다. 쓸데없는 걱정인걸 알면서도 생각은 깊어져만 가고 두려움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쓸 때 없이 높아서 이럴 땐 참 힘들다. 몹쓸 상상력.



노전정리

내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내가 남긴 것들을 알아서 잘 처분해 줄까? 내 블로그에 비공개로 돌려둔 육아일기 못 보면 어쩌지. 갑자기 아이디 비번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 잔고도 정리해야겠단 생각과 내가 가진 물건들도 무엇이 있나 다시 짚어 보았다. 생각은 돌고 돌아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정리수납을 배우면서 '노전정리'라는 개념을 배웠다. 결국은 살아가면서 꾸준히 미니멀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늘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니멀하게 살아야겠다고 맘먹게 된 계기다.


울다가 밤샌 다음 날, 내가 아직까지 정리 못 한건 뭐가 있을까 옷장을 뒤져보았다. 한쪽 짐칸에 있던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은 요가복과 아이들이 안 쓰는 모자, 수면잠옷을 당장 정리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죽음은 두렵지만 죽기 직전에 느낄 답답함을 조금 덜어낸 느낌이다.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은 담담해질 수 있다. 그리고 항상 오늘이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고작 물건 몇 개 정리하고 이렇게 기분이 가벼워지는걸 나는 어젯밤 왜 그렇게 펑펑 울었을까 싶어 웃음이 나온다. 밤에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오고 잡생각이 많아진다는 걸 깨달았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작년 크리스마스. 아이들의 '산타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났다. 미리 준비해 둔 선물을 몰래 꺼내 트리 아래 살포시 내려놓았다. 이 날을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준비했던 나를 칭찬한다. 


새벽이면 엄마를 찾아오는 우리 집 좀비 녀석들. 아직 잠자리 분리가 완벽하지 않아 새벽마다 찾아온다. 새벽 6시 엄마에게 오는 길에 트리 전등 아래 선물자루 2개를 발견했다.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벌써 왔다 갔나 봐. 선물 같은 게 있어." 겨울이라 아직은 캄캄한 새벽. 아이들은 이미 잠이 다 달아났고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두 녀석은 번갈아 거실을 훔쳐보며 선물이 1개라는 둥, 크기가 엄청 크다는 둥 속닥거리며 어둠 속 선물꾸러미를 관찰하느라 바쁘다. "애들아, 더 안 잘 거면 그냥 불 켜고 선물 확인해 봐."


아이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거북이쿠션. 갑옷처럼 거북이 등딱지 모양의 입는 쿠션이다. 이걸 도대체 왜? 아이들이 신났다. 뜯자마자 거북이쿠션 장착. "엄마, TV 봐도 돼요?" 그래, 그래라. "형아, 엄마가 TV 봐도 된데!" 아이들은 신났다. 주말만 되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엄마의 늦잠을 방해하는 녀석들. 엄마도 어렸을 적에 일요일 아침 디즈니만화 보려고 부지런히 일어나 봐서 그 기분 잘 알지. 근데 엄마는 깨우지 마, 늦잠 좀 자자.


그렇게 우리 집 크리스마스는 아침부터 시끌벅적 요란했다.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남편이 만든 핫케이크로 가볍게 아침을 먹고 눈썰매를 타러 가자며 하루 일정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갑자기 누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시댁 쪽 친척이었다. 딸 둘 키우는 젊은 엄마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엄마의 죽음이라니. 이 얼마나 슬프고 황망한 일인가. 평화롭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날 아침 날벼락같은 소식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누군가의 죽음

천진난만 해맑은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이랑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에휴... 어떡해...


아이들과 계획했던 외출과 외식을 포기하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1년을 기다린 크리스마스날인데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아이들은 조문 간 엄마아빠를 기다려야 했다. 섭섭해할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도 덩달아 기분이 다운될까 봐 "엄마랑 아빠랑 인사만 잠깐 드리고 올 거야, 게임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했더니 너무너무 신나 하는 아이들. 


미리 경험해 볼 수 없는 일, 죽음.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다른 사람의 인생 때문에 너무 무거워질 필요는 없지만 가볍게 지나갈 수도 없었다. 죽은 사람에게 미안해지는 이기심. 죽은 사람은 안타깝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매일을 너무 무심한 듯 살아간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일 텐데. 그분 덕분에 무심코 지나칠 오늘 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일에도 감동받고 가진 것에 늘 감사하며 살자.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내게 남겨져 있는 시간은 뜻하지 않게 얻은 선물이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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