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인 남편, 내향인 아내
남편이 없으면
지난주 불금엔 닭꼬치랑 맥주 한 캔 마시며 브런치에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5시간 순삭이다. 11시쯤 잘 준비를 마치고 남편에게 전화를 한 통 한다. "어디야? 아직도 먹고 있어? 뭐 먹어? 그래서 언제 자러 가? 알았어! 적당히 먹고 들어가!" 안심하고 아이들을 재운다. 평소보다 늦게 자니 눕자마자 코를 골고 잠든다. 아이들이 잠들면 나는 다시 슬며시 일어난다.
저녁엔 아이들 TV 소리, 게임 소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이 재우고 동영상 인강을 들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가도 글 쓸 주제가 생각나면 메모를 했다. 그렇게 새벽 4시가 되었다. 아이쿠 너무 늦었네, 자야지.
늦잠이 허락된 주말 아침. 농사철엔 주말도 없이 일어나야 하는데 겨울엔 늦잠을 잘 수 있어서 좋다. 늦잠 자고 일어나도 남편의 연락이 없다.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언제 와?" 아침 해장하고 출발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늦은 아침을 챙겨주고 남편이 올 때까지 다시 공부를 했다.
극과 극인 우리 부부
비효율적인 남편
남편의 외향적인 성격에 적응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모든 걸 함께하길 좋아하는 행동이 나에겐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논을 한 바퀴 둘러봐야 할 때 남편은 나랑 아이들을 다 차에 태우고 돌아다닌다. 혼자 다니면 심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차에 가만히 앉아서 남편을 기다린다. 내 기준엔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집안일을 해치우고 싶었다.
기계를 고치러 창고로 갈 때도 나를 꼭 데려 나온다. 나는 남편이 일하는걸 옆에서 지켜보다가 잔 심부름을 한다. 남편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따라 나오라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효율성'에 참 어긋나는 일이었다. 효율을 따지며 따라가기 싫다고 하면 남편은 삐졌고 싸움이 되었다.
늦잠이 유일하게 가능한 주말. 늦잠 좀 자고 뒹굴거리고 싶은데 '주말인데 집에만 처박혀 있을 거야?'하고 닦달한다. 남편은 어딜 다녀와야 '잘 놀았다.'라고 생각한다. 나가기 싫어서 뭉그적거리며 누워있다가 싸운 적도 많았다.
남편 적응기
결혼 10년, 싸우면서 적응했다. 남편의 성격을 이해하기로 했다.
혼자 밖에서 고된 일을 하는 건 참 외롭고 힘든 일이다. 알면서도 '그건 니 일이잖아!' 하며 선을 긋고 귀찮아한 것 같다. '우리 일'인 건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미안해진다.
이제는 웬만하면 알아서 따라나선다. 대신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책을 읽거나 블로그 포스팅을 했고 유튜브 인강을 듣거나 인터넷검색을 했다. 남편이 '옆에서' 딴짓하는 건 아무 말 안 한다. 따라나서면 커피도 타주고 추운 날은 모닥불도 피워준다. 자상함은 보너스다.
주말에 늦잠은 자더라도 일어나는 순간 씻고 나갈 준비부터 한다. 계획이 없어도 나갈 준비를 해둔다. 언제 갑자기 나가자고 할지 모르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자고 말한다. 박물관, 유적지, 체험관 등 내가 관심 있는 유익한 곳으로 장소를 정한다. 덕분에 나는 공부도 하고 호기심도 채우고 포스팅거리도 만들어 온다.
오은영 박사는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에서 "누가 무엇을 더 잘못했든 간에 작용과 반작용을 바꾸고 싶다면, 동기가 있는 사람이 먼저 바꾸어야 한다. 내가 주는 자극이 다르거나 그 사람이 주는 자극에 대한 나의 반응이 달라지면, 그 사람도 바뀌게 된다."라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였다. 그리고 내가 먼저 조금씩 바꿔나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로 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찾아냈다. 덕분에 우리 집 남자 셋 다 출근하고 없는 시간을 더 알뜰하게 사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