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에 짜증게이지 상승
나른한 주말. 가족 모두 다 같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전 11시쯤 늦은 아침(?)을 먹었다. 하루가 나른해지자 지루해진 남편이 말했다. "오늘 우리 뭐 해?" 아.. 정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다. '난 당연히 집에 있고 싶지!'
내가 솔직하게 말할 때마다 말다툼을 했다. 나가고 싶은 건 본인이면서, 왜 나가기 싫은 나에게 의견을 묻는 건지. 하지만 이제 요령이 생겼다. 질문은 질문으로 답하기. "여보는 뭐 하고 싶은데?" 사실 딱히 본인도 하고 싶은 건 없지만, 집에만 가만히 있는 건 싫다고 한다. 이건 일단 100% 나가야 한다는 신호다.
남편은 외향인이다. 야근하고 피곤한 다음날도, 농사철에 바쁜 다음날도, 친구들과 술 먹은 다음 날도 집에 가만히 있는 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 젤 고생하는 사람이, 직접 운전해서 어디든 데려간다는데 가기 싫다고 말하기도 뭣하다. 타고난 미친 체력. 남편의 체력에 경의를 표한다.
(남편은 여전히 소파에 누워 있지만;;)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들에게 나갈 준비 하라고 말하고, 나도 냉큼 씻고 옷 갈아입고 화장을 한다. 아이들과 남편이 준비하는 동안 집안일을 해치우며 닦달한다. "나갈 거면 빨리 준비해!!!"
기분 읽기
난 정말 주말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밖에 나가긴 더 싫다. 하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 어디든 따라가야 한다. 아이들은 날 닮은 건지 밖에 나가기 싫어한다. 셋은 집에 있고 싶은데 1명은 나가고 싶다. 그 한 명이 우리 집 대장이라 반박불가다.
내가 가기 싫어하면 아이들은 엄마 핑계를 대며 더 짜증을 낸다. 그래서 나는 가기 싫어도 무조건 남편 편을 든다. 너무 오버다 싶을 땐 조금 조절이 필요하지만, 되도록 남편이 하고 싶은 걸 한다. 오후 1시가 다돼 가는데, 갑자기 '서울에 놀러 갈까?' 같은 개떡 같은 소리는 단칼에 거절한다. 5일 동안 일 하느라 고생했으니 주말은 놀아야 한단다. 못 놀면 삐진다.
남편 비위도 맞춰야 하고, 아이들도 다독여야 한다. 예전엔 이럴 때마다, '나는?' 하고 생각했다. 아내로, 엄마로의 역할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못해 끌려가듯 외출을 하니, 재미도 없고 기운도 안 났다. 시간이 아까웠고, 힘들었다.
남편과 다투지 않고 잘 맞춰서 살려면 '역지사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생각을 곱씹으며,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고 주어진 상황에 빨리 대처하려고 노력 중이다. 행복한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나'에게도 소중하니까.
현실 직시
남편이 바람도 쐴 겸 늦점 먹으러, 오랜만에 안성 스타필드에 가보자고 한다. 안성 스타필드는 딱 1번 가봤는데, 정말 힘들었다. 주차장까지 들어가는데 고생하고, 주차하고 걸어 나오는데 고생하고, 푸드코트 자리 잡고 음식 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건물이 정말 넓었고 복잡했다. 사람은 정말 많았고 정신없었다. 내 돈 쓰는 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외출 좋아하는 남편도 복잡한 건 싫어하는 덕분에, 정신없는 곳은 무조건 걸렀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복잡한 곳을 가보잖다. '거길 왜?'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 그래, 가고 싶으면 가야지. "그래, 아빠가 가보자는 데로 가보자! 거기 맛있는 거 진짜 많아! 나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출발!!"
안성 스타필드는 안성 IC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그런데 그 짧은 거리가 방문차량으로 무척 복잡했다.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려고 삼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고 출발하려는데 꼬리물기한 차들이 집입 차선을 막아버렸다. 꼼짝도 못 하고 갇혔다. "아씨, 운전 참 개떡같이 하네!!" 결국 운전하던 남편이 폭발했다.
비상이다! 큰맘 먹고 나왔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남편이 짜증을 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지만, 맘 속으로 삼켰다. 이미 집 밖으로 나왔고, 목적지가 코 앞이다. 여기서 짜증내면 즐거운 외출이 될 수 없다. 어떻게든 들어가서 주차하고, 점심을 먹어야 한다.
긍정회로 돌리기
꼬리물기 차가 길을 막은 바람에, 우리 차는 가지도 못하고 횡단보도에 걸쳐버렸다. "아, 차 많은데 딱 질색인데. 여길 내가 왜 오자고 했을까? 미쳤지." 남편이 말했다. "안 가보면 가 보고 싶지. 그때 처음 왔을 때, 왜 다신 안 온다고 했었는지 지금 생각났어. 또 이렇게 한 번 질리면 당분간은 안 오고 싶잖아. 천천히 가자."
신호가 다시 바뀌고, 꼬리물기 차를 피해 겨우 빠져나왔다. 남편은 여전히 복잡한 도로를 보며 짜증을 냈다. 좌회전을 하자마자 주차장 입구 진입로로 들어가야 하는데, 진입로를 미처 못 보고 지나쳐 버렸다. 아뿔싸. 진입로를 놓치고 직진했더니,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나왔다. 다시 고속도로 타고 집에 가야 하는 거야?? "뭐야, 어디로 빠지라는 거야. 아, 길이 없잖아. 와, 씨, 길이 뭐 이래??"
남편을 진정시키고, 톨게이트 직전에 있는 주유소 앞에 잠시 차를 정차시켰다. 유턴도 할 수 없고 샛길도 없었다. "좌회전하자마자 좁은 길로 들어가는 거였나 봐. 좀 제대로 표지판 표시를 해놓지. 길인줄도 몰랐네. 여보, 여기 주유소 가로질러서 다시 나가자." 남편보다 운전을 잘할 자신이 없기에, 남편을 탓할 수는 없었다. 복잡한 낯선 도시길은 운전하기 어려운걸 잘 알기에, '니 탓 아니야, 길이 이상한 거야!'라고 긍정회로를 돌렸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도로에 진입하였다. 이상한 샛길을 네비가 알려주어서 겨우 찾아갔다. 주차장까지 차가 꽉 막혀서 느릿느릿 겨우 도착했다. 도시라서 차가 많구나, 우리 사는 곳은 차도 없고 한적한데 참 신기한 경험이라며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차에서 일어날 법한 응급상황 시, 차에서 탈출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지루한 시간을 버텼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성공적으로 식사를 마치고, 매장 구경 후 간식 사 먹고 3시간 만에 나왔다.
집에 가는 길, 고속도로 2차선에서 천천히 가는 트럭을 추월하려고 1차선으로 차선을 바꿨다. 우리 앞에 가던 차가 추월차선에서 속도를 줄였다. 어쩔 수 없이 브레이크를 밟고 속도를 줄였는데, 우리 뒤에 바짝 붙어 쫓아오던 차량이 클락션을 울린다. "아니, 앞에 차가 안 가는데 어쩌라고! 안전거리도 유지 안 하고 바짝 쫓아와 놓고 빵빵거리네? 참 나."
밥 잘 먹고 기분 좋게 집에 가는 길이구만, 왜 또 누가 우리 남편의 신경을 건드리는 건가. 2차선으로 차선을 바꾸자마자 뒤에 쫓아오던 차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바쁜 일이 있나 보지. 아님, 화장실이 급한걸 수도 있잖아. 저번에 나도 화장실 급해서 여보보고 빨리 가라고 난리친적 있잖아. 분명 급똥일 거야." 배탈이 났는데, 남편이 과속하면 안 된다고 천천히 가서 신경질 났던 기억을 떠 올렸다. 남편도 기억이 났는지 웃는다. "그때 내 덕분에 살았다?!""(아까 그 차) 잡으러 갈까?""에휴, 됐어~"
외출 한 번 하기 참 힘들다. '우리 복잡한덴 가지 말자.'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집에 돌아오니까 좋다.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