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오늘 9
자라나는 아이들. 특히 요즘 만나는 청소년 이상의 젊은이들은 하나 같이 너무 열심히 산다. 어떤 어른이 요즘 아이들은 편한 것만 쫓느라 힘든 일을 안 한다고 투덜거리던데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고뇌의 시간을 감당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중장년부터 20대까지의 여자와 남자들이 10여 명 이상이 교육을 받고 있다. 같은 교육을 받더라도 각자의 능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단 노력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 일하러 왔으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교육생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열심히 일하는 자세는 이미 갖추고 있었고, 매 순간 웃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하루 일해보고 괜찮은 청년일세!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호기심은 언제나 감추지 못하는 법이다. 사는 곳이 어딘지 물었더니 1시간 넘는 거리다. 그 동네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일거리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까지 오는 이유를 물었다.
“제가 원래 하는 일이 있는데 이 근처에요.”
원래 하는 일이 있는 청년이었다. 그럼 여기 일은 투잡.
힘들지 않은지 물으려다 뻔한 답이 올 것 같이 그만두었다. 투잡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돈’이 필요한 거겠지. 다음 날은 나이를 물었다. ‘26살’이란다. 요즘으로 치면 한참 놀고 싶은 나이다. 너무 열심히 사는 게 아닌가.
내가 일하는 곳에는 투잡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면서 훗날 자신이 하고 있을 다양한 일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도 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스스로 용돈을 벌거나 학비까지 부담하는 사람도 있다. 때론 한부모 가정의 가장 노릇을 하는 친구도 있다. 심지어 사업을 하다 망한 아버지의 빚을 온 가족이 갚느라 투잡, 쓰리잡을 하기도 한다.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친구들이다.
안타까운 이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맘이 쓰인다. 나도 힘든 시간을 지나왔지만 나보다 훨씬 어둔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직장에서 만난 어떤 아이는 수능을 포기하고 쓰리잡을 하면서 집에 돈을 대고 있었다. 그 아이한테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힘들 게 번 돈을 모두 집에 주고 싶은 맘 알지만 너를 위해 쓸 돈을 좀 모아두는 게 좋아. 그래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네가 잘 돼야 집도 보살 필 수 있어.”
섣부른 충고일 수도 있는데,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진 아이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너의 몫이다. 난 너를 믿어.”라는 말도 해 주었다. 1년 6개월 정도 일하더니 군대에 갔다. 군대 가기 전 빡빡 깍은 머리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사진 속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고 싶다는 답장을 해 주었다.
지금은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지만 하루하루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잘 될 거라는 희망 고문은 하지 않아야 한다.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아프면 그냥 아픈 거고 병원에 가거나 쉬어야 한다. 또 ‘열정페이’ 같은 웃기는 말로 청춘을 힘들게 하지 않아야 한다. 일한 만큼 제대로 보상을 해주어야 다시 일할 맘이 생기는 법이다. (누가 이런 단어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맘에 안 든다.)
청춘에게 힘듦을 참고 견디라고 말하는 꼰대가 되지 말자. 차라리 청춘을 응원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꼰대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