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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Jun 12. 2020

민통선, 임진강이 이어지는 파주 DMZ길 자전거여행

경기도 파주 DMZ  평화누리길 자전거여행

삭막한 철책선 너머로 펼쳐지는 민통선 마을 / 이하 ⓒ 김종성

제주 올레 길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전국적으로 'ㅇㅇ길'이 모세혈관처럼 퍼져가고 있다. 남한의 최북단 지역인 DMZ 가까이에도 '파주 DMZ 평화 누리길'이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김포를 지나 파주, 철원까지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을 따라 만든 걷기 혹은 트레킹 하기 좋은 코스다.     


이 길을 다녀와 본 이웃 블로거에게 물어보니 철책길, 논둑길, 마을길, 강변길, 차길 등 다양한 길이 이어진 코스로 자전거 여행도 가능하단다. 하긴 요즘 같은 뜨거운 날씨엔 트레킹 하는 사람은커녕 동네 주민들도 안보일 게다. 애마 자전거를 타고 남한의 접경지역 '파주 DMZ 평화 누리길'을 달려보았다. 

임진강변에 자리한 경의선 임진강역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경의선 열차가 전철 경의중앙선으로 복선화 되면서 파주 가는 길이 편해졌다. 화가이자 우리나라의 근대 신여성 가운데 한 분 이라는 나혜석(1896-1948)은 그녀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16개월간의 유럽 여행을 위한 첫 출발로 이 경의선 기차를 타고 개성, 신의주를 지나 중국 만주와 옛 소련 모스크바를 거쳐 프랑스 파리까지 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도 그런 여행을 했는데... 그리움과 아쉬움만 커진다.


종점인 임진강역은 자전거 여행자에게 쉼터로도 좋은 곳이다. 쓸쓸했던 접경지역 기차역이 이젠 많은 시민들이 놀러오는 최북단 유원지가 됐다. 보통 유원지와 다른 건 놀이공원시설과 함께 지하 벙커 관람, DMZ 철책길 투어 같은 이채로운 볼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해설을 겸하는 인솔 군인들과 함께 관광용으로 개조한 옛 지하 벙커를 돌아보고 나온 한 어린 아이가 "아빠, 북한은 좋은 편이에요, 나쁜 편이에요?"하고 물었다.     


"지금은 비록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적이지만, 머지않아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살아 나아가야 할 좋은 편이란다"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의 젊은 아빠. 하지만 차마 길게 설명하지 못하고 그만 "응... 바이킹 타러 갈까" 하며 얼버무리는 모습이 남일 같지가 않았다.  

자전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마귀
마을 논을 따라 이어지는 DMZ 철책

임진강역에서 잘 쉬고 다시 5분 거리의 '운천2리 철도 건널목'으로 내려오면 DMZ 평화누리길 이정표가 민통선 철책과 너른 평야를 향해 나있다. 문산읍 장산리 동네로 접경지역의 애잔함과 청정함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초록의 마정리 논길을 따라 북쪽으로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철책선이 보이고 초소와 철책을 따라 난 '대비둑' 이 나타난다. 둑길 곳곳에 즐비하게 설치된 철책과 방공참호, 방호벽 등 군사 시설물들은 이곳이 남북 분단의 최일선 현장임을 실감나게 한다.


작은 돌들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철책 너머로 임진강변의 푸르른 논밭과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로 알맞을 것 같은 습지, 초지가 아마존처럼 비밀스럽게 펼쳐져 있다. 이 순간만큼은 철책 위로 자유로이 날아 남북한을 넘나드는 하얀 백로들이 부럽기만 하다. 평화보다는 분단의 안타까움과 상처가 더 다가오는 'DMZ 평화 누리길'이다.


철책 둑길에 이어 숲속 오솔길을 지나자 빈 초소와 함께 파주시에서 만든 관광안내 게시판과 포토존이 나타난다. 마음 놓고 사진도 찍으며 나무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하며 군인 두 명이 나타나 말을 붙인다. 자전거탄 민간인이 홀로 철책선 가까이에서 어물쩡거리는게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나보다. 친철하게도 이어지는 동네 '장산리 장산 전망대'와 '임진리' 가는 농로길을 알려주었다. 


자전거 여행자를 살린 뽕나무 

갈증을 사라지게 해준 열매 오디
북한땅이 보이는 장산 고갯마루 전경

'장산'은 다행히 동네 야산 격이라 오르는 길이 급하지 않으나 문제는 무더운 날씨로 인한 갈증이다. 그때까지 길가의 흙 위에 거뭇거뭇 점처럼 묻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목마름이 심해지자 그 까만 점이 점점 커지더니 자세히 보인다. 그건 놀랍게도 오디 열매. 동네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는지 농익어 떨어진 오돌토돌 까무잡잡한 오디들이 지천이다. 주저 없이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이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도록 오디들을 주워 먹었다.


갈증이 금방 사라지는 게 신통한 알약 같았다. 내게 오디 열매를 알게 해준 시골이 고향이었던 오래 전 친구의 얼굴이 반갑고 그립게 떠올랐다. 오디는 달기도 하지만 신기하게 한 주먹만 먹어도 심했던 갈증이 사라져 버린다. 어릴 적 흙에 떨어진 것을 먹으면 '땅그지' 라고 놀림을 받았는데 수십 년 만에 다 커서 땅그지 라이더가 되고 말았지만 다행히 목격자는 장산의 새들과 부지런히 지나가는 개미들뿐이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 장산 전망대라 써있는 팻말을 따라 가보니 평범한 고갯마루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은 평범하지 않았다.  DMZ 생태의 보고인 임진강 유일의 자연섬 초평도와 남북 접경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 DMZ 안 대성동 마을과 북쪽 기정동 마을이 나란히 보이고, 오른쪽 강 너머엔 실향민 마을인 진동면 해마루촌이 아련하게 펼쳐졌다.      


분단의 강에서 평화의 강으로 흐르길       

임진강변의 옛 별장터 '화석정'


강변에서 만나는 마을 이름들이 이채롭다. 임진강변 마을 임진리를 지나면 '율곡리'를 만나게 되는 데 바로 조선시대의 학자 '율곡 이이'의 고향이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던 동네이며 '화석정(花石亭)'이라는 임진강 벼랑위의 목좋은 별장이 또한 유명하다. 신발을 벗고 정자안 마루에 들어가 앉아 보았다. 화석정 밖으로 보이는 임진강 풍경이며 560살 먹었다는 정자 옆 신령스러운 느티나무가 그냥 한 폭의 그림이다.      


林亭秋已晩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騷客意無窮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 저 멀리 임진강 물은 하늘에 잇달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서리 맞은 단풍은 해와 같이 붉구나


山吐孤輪月 산은 외로운 보름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 강은 만리나 가는 바람을 머금었구나


塞鴻何處去 변방에서 날아 온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지

聲斷暮雲中 해 저무는 구름 가운데서 울음 소리 끊어 지누나


신사임당의 아들로 8살 아이 일 때 지었다는 율곡 이이의 시가 정자 안에 새겨져 있다. 옛날 양반가에선 5살 때부터 과거시험을 준비했다니 이런 멋진 한시를 지을 만 하겠구나 싶다. 게다가 율곡 이이는 평균적으로 2천 대 1 정도의 경쟁율을 보였던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수석합격(장원급제)를 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저 임진강을 이렇게 바라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싶을 것 같다. 화석정은 이렇게 편안히 앉거나 누워서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감상에 젖을 수 있는 곳이다. 북한의 함경남도 덕원군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서 한강과 합쳐지는 임진강,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의 경계를 흐르고 있어서인지 다른 강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강이다.           

임진강변 적벽이 바라 보이는 산책로
오래전 용암이 식으면서 생겨난 임진강변 적벽

차길과 마을길을 교대로 달리며 두포리를 지나 파평면사무소 방면의 금파 삼거리에 이르면 임진강을 다시 한 번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길이 나오는데 바로 '임진강변 적벽 산책로'가 그곳이다. 이정표가 작으므로 금파 삼거리에서 동네 주민에게 적벽 산책로를 물어보면 잘 알려준다. 임진강가에 병풍처럼 둘러선 적벽은 오래전 한탄강 상류에서 분출하여 흘러내려온 용암이 강물을 만나 급속하게 식으면서 만들어진 절벽으로, 붉은 빛이나 자줏빛으로 보인다고 해서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적벽 산책로'를 다 지날 즈음 저 앞에 지도에도 안 나오는 다리가 놓여 져 있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한 다리 밑 강가에서 어구를 손질하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리비교'라는 군사용 다리란다. 요즘은 다리 건너편의 논밭을 돌보러 미리 허가받은 주민들이 오간다고 한다. 임진강가의 어선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는 처음 보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자니 여기서 사진 찍으면 군인들한테 카메라 뺏긴다며 어부 아저씨가 말린다.   


장좌리 마을을 구경하며 농로길을 지나다보면 황포돛배(이용문의 : 031-958-2557)를 탈 수 있는 두지리 나루터가 나온다. 두지리에서 자장리 사이의 임진강을 오가는 이 유람선은 생김새도 흥미롭고 임진강과 적벽을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어 좋다. 두지리 나루터에서 황포돛배와 함께 해가 저무는 임진강의 풍경을 여유 있게 기다려 봐도 좋겠다.       

임진강을 유람하는 황포돛배가 머무는 두지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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