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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Jun 19. 2020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전주천 자전거여행 2편

전북 전주시 전주천 여행 

전주천 자전거 산책 / 이하 ⓒ김종성

도깨비 장터가 열리는 전주 남부시장     


섶다리 만큼이나 흥미로운 이름의 다리를 만났다. 싸전다리는 다릿목을 끼고 좌우로 싸전(쌀가게)들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변에서 싸전다리로 올라가면 전주의 전통시장인 남부시장(완산구 전동)을 만난다. 유명한 전주비빔밥은 물론 콩나물국밥 피순대 오모가리탕 떡갈비 등 다채로운 먹거리와 청년몰, 주말 야시장을 개설해 활기가 넘치는 장터다.     


전주천변에 자리한 남부시장엔 40년이 훌쩍 넘은 콩나물국밥집이 여럿 있다. 전국 어디나 콩나물국밥집은 흔하지만 이곳의 콩나물국밥 맛은 좀 달랐다. 구수한 냄새가 나는 콩나물을 후후 불며 국밥을 떠먹다보면 배꼽 언저리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전주 콩나물국밥 맛의 비결을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수질 좋은 물에서 나온 콩나물이 들어간 덕택이란다. 곁에 있는 전주천 풍경을 보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다.

천변에 도깨비 장터가 서는 전주 남부시장
전주남부시장의 피순대

오모가리는 뚝배기의 전주 지방 사투리로 오목하게 생긴 투가리란 뜻이다. 투가리는 뚝배기의 옛말이다. 민물고기와 시래기가 함께 들어간 매운탕이다.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와 흙내가 전혀 나지 않는데 비결은 잘 묵힌 고추장이란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란 옛말이 문득 떠올랐다. 피순대는 일반 순대보다 진하고 묵직함이 더해진 순대 음식이다. 찹쌀과 표고버섯 양파 양배추 등 속 재료가 듬뿍 들어간다.     


전주 남부시장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장이다. 싸전다리 아래 전주천변엔 새벽부터 아침나절까지 생겼다가 사라지는 새벽시장, 일명 도깨비 시장이 열린다. 하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좌판에서 인근 동네 주민이자 상인들이 공들여 재배한 과일과 채소를 판다. 마트에서 파는 번듯한 농산품과 달리 생김새가 투박하지만 무더운 여름날 먹으면 보양이 되고 힘이 날 것 같았다.     


전주천에서 가장 크고 조망이 좋은 정자는 남천교(南川橋) 위에 자리한 청연루로 팔각지붕 형태의 누각이다. 다리 이름으로 보아 예전에 이곳을 흘러가던 전주천 물줄기를 남천이라 불렀나보다. 전주관아 경기전 전주향교 등이 자리한 곳에서 남쪽에 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지 싶다.     

전주천 최고의 정자 청연루


청연루는 전주천의 랜드마크이며 주변에 한옥마을과 국립무형유산원이 자리하고 있다. 누각 위에 앉거나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전주천 풍경을 감상하기 제격인 곳이다. 한옥마을에 찾아온 관광객들이 동네주민이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낮잠을 즐기며 더위를 피해 쉬고 있는 모습이 정답다. 청연루에서는 한옥마을(완산구 풍남동·교동 일대) 전경도 펼쳐진다. 전주 한옥마을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인들이 전주의 상권을 장악하던 1930년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이곳에 근대식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상점으로 변신한 한옥 집에 들어가 보면 ㄱ자형, ㄷ자형, ㅁ자형 등으로 형태가 다양하고 집마다 뜰 같은 아담한 마당을 갖추고 있다. 현재 700여 채의 전통 가옥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다채로운 한복을 직접 입고 한옥마을을 거닐 수 있는 한복 대여점이 내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다.    

 

전주천의 명소한옥마을과 전동성당

한옥마을내 전주향교
전주8경 한벽당

한옥마을 초입에 자리한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지은 궁궐’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봉안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사서를 보관하고 있는 전주사고(史庫)는 4대사고(춘추관·전주·충주·성주)중 유일하게 전쟁이나 화재로 불타지 않고 남아 있는 사적이다.     


경기전을 둘러보았다면 마주보고 있는 전동성당도 들러야 한다. 전동성당은 1914년에 지어진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 호남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 멀리서도 눈에 띄며,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이 이국적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힌다. 한옥마을에는 전주향교도 있는데 마당에 서있는 수 백 년 묵은 장대한 노거수 나무는 보기만 해도 더위를 잊게 해준다.


한벽교 아래를 지나면 전라북도유형문화재이자 전주8경이라는 한벽당이 나온다. 천변에 솟은 바위 절벽을 깎아 만든 누각이다.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문신 최담이 별장으로 쓰기 위해 태종 4년(1404)에 지은 유서 깊은 누각이다. 바위에 부딪혀 흰 옥처럼 부서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고 해서 한벽당(寒碧堂)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래로 전주천 물길이 이어지는데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길을 보고 옛 문인들은 ‘벽옥한류(옥처럼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흩어지는 광경)’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천변에서 만난 사찰과 성지

전주천변

승암산은 전주천변에 솟아있는 작은 산이다. 덕택에 하천변에서 돌계단으로 이어진 승암사(완산구 교동 945)라는 절을 만나게 된다. 무려 876년(신라 헌강왕 2) 도선(道詵)이 창건한 오래된 사찰이다. 절 뒤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좌선하는 승려의 모습과 비슷하다 해서 절과 산 이름에 승암(僧巖)이 들어갔다. 시원한 물이 나오는 절 마당에 앉아 쉬며 목을 축였다. 전주천은 물론 교동 일대가 훤히 보였다.     


이 절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불서 간행 사찰이었다고 한다. 당시 책 만들 종이는 대부분 사찰에서 생산했는데 종이 제작일은 지역(紙役)이라 하여 백성들도 기피하는 무척 고된 일이었다. 전주한지박물관에 갔다가 알게 된 전통 한지 제작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닥나무를 심어 키우고, 이를 베어 껍질을 벗기고 잿물에 삶고, 계곡물에 한나절 담가두었다가 꺼내어 돌 위에 놓고 디딜방아로 두드리고, 닥풀 뿌리에서 짜낸 즙을 섞은 물과 함께 지통에 넣어 잘 젓고 이를 발에 올려놓고 앞뒤 좌우로 여러 번 흔들어 고르게 떠낸 것을 차곡차곡 개어놓은 다음, 둥근 나무토막을 굴려 물기를 빼내고, 이릿대로 한 장씩 떼어내어 방바닥에 놓고 말리는 긴 과정을 거친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인지라 승려의 신분은 천민 수준이었다. 절 살림 맡은 사판승(事判僧)도, 공부하는 이판승(理判僧)도 종이를 만드느라 고단하게 살았다. 조선왕조실록 현종 11년(1670) 10월 7일자에는 사헌부에서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전라도의 큰 사찰은 해마다 80여 권, 작은 사찰은 60여 권을 바치도록 하여 중들은 달아나고 절들은 텅 비었습니다.’ 지치고 쇠약해진 승려들이 다 도망가고 폐사된 절도 많았다. 이때 유래한 말이 지금도 흔히 쓰는 ‘이판사판’이다.

정겨운 전주천


승암사를 지나면 치명자산 성지가 나온다. 조선말기 천주교 신자 일가족 7명이 순교해 묻힌 곳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천주교 성지라고 한다. ‘치명자’란 순교자를 일컫는 옛말로, 치명자산은 순교자가 묻힌 승암산의 다른 이름이다. 매일 산상미사가 열린다는 성지에 사람들이 모여 경건하게 산상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성지를 지나가는데 웬 사람들이 말도 없이 한 줄로 천변 숲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이들이 들어간 곳을 보니 ‘참사랑 낙원’이다. 알고 보니 흔히 정신병원이라고 부르는 시설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전주천에 잘 들어선 것 같다.     


상류로 갈수로 천변 생태는 풍성해져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말고 내려서 헬멧을 쓴 채로 나물을 캐는 사람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사각형의 플라스틱 바구니를 물 위에 올려놓고 물속을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은 다슬기를 잡는 아낙네들이다. 다슬기는 지역마다 소래고둥 민물고둥 고딩이 올뱅이 골뱅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작고 친근한 수생생물이다. 건강식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깨끗한 하천 어디나 다슬기 잡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개천위에 놓인 작고 수수한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 모습도 하천 풍경과 잘 어울렸다. 물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잉어를 따라 하려는 걸까, 바지를 걷어 올려붙인 아이들이 물가에 들어가 뛰놀고 있는 모습이 참 건강해 보였다.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밥처럼 거닐수록 정감 가는 하천풍경이다. 나도 징검다리 위에 주저앉아 맑은 하천에 발을 담그며 쉬었다. 보드라운 물결이 발을 간질였다. 멀리까지 오느라 쌓였던 피로가 몸 밖으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무에 덮여가고 있는 폐역 죽림온천역

전주천 상류엔 과거 전북의 대표 관광지로 많은 사람들이 휴양을 위해 찾아왔던 죽림온천역, 신리역이 있다. 인가와 기차역이 번갈아 서 있는 작은 마을들, 그 곁으로 맑은 실개천이 좁게 흐르는 풍경이 떠올려졌다. 아쉽게도 2011년 5월 전라선 복선전철화 개통 후 지금은 완행열차조차 서지 않는 폐역이 되었다.     


역 광장이었던 자리는 주차장이 됐고, 사람의 발길이 닿을 리 없는 플랫폼에는 루드베키아가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일명 ‘계란꽃’이라고도 하는 개망초 같은 들꽃들이 피어났다. 폐역은 옛 영화와 폐허의 흔적이 공존하는 적막하고 쓸쓸한 폐사지(廢寺址, 버려진 옛 절터)처럼 시간이 멎어 있는 듯한 공간이다. 물길과 찻길과 철길이 나란히, 혹은 서로 교차하며 흐르는 전주천은 발원지인 슬치재가 있는 박이뫼산 골짜기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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