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들에게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전통시장. 전국의 대도시와 소도시, 소읍 할 것 없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런 가운데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닷새장까지 품고 있는 시장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강화도에도 박제된 유물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있는 문화유적같은 장터가 있다.
주말마다 강화도를 북적이게 하는 곳 중의 하나인 강화풍물시장(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중앙로 17-9)이다. 강화버스터미널 옆에 자리하고 있어 찾아가기 좋다. 오래된 장터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버스터미널에서 가깝다는 점이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시장을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강화풍물시장의 본래 이름인 강화읍장은 16세기 조선중기 임진왜란 이후부터 이어진 오랜 전통을 간직한 장터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시장의 대부분은 임진왜란이후 본격적으로 융성했다. 그 전에는 단순 물물교환수준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지원군으로 들어왔던 명나라 군대가 큰 역할을 했다. 군사들이 월급으로 받은 화폐(은)가 조선에 유통되면서 장터에 전에 없던 상인이 생기고 상거래가 이뤄지게 된 것.
매 2일과 7일에 열리는 오일장날이면 풍물시장 주차장과 공터에 200여 개의 노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선다. 강화도의 농민들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서 모인 상인들이 각종 농산물과 강화 특산물을 판매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옥수수, 가마솥에서 갓 튀겨낸 장터 통닭, 지푸라기를 엮어 포장한 달걀과 오리알을 보노라면 절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먹거리 살거리 구경거리가 넘치는 시골장터의 정취가 고스란하다.
강화 특산물을 만날 수 있는 풍물시장
상설시장인 강화풍물시장은 상가건물형태로 1층에는 각종 농수산물 등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곳이고, 2층은 식당가로 구성되어 있다. 강화도의 특산품인 화문석, 화방석 및 왕골을 이용한 소품가게도 있다. 풍물시장과 골목으로 이어지는 강화인삼센터에 가면 풍겨오는 진한 인삼 냄새만 맡아도 건강해질 것 같다.
섬 지역이지만 고려·조선시대부터 일궈온 간척사업으로 강화도의 들판은 사뭇 넓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보니 수산물도 다양하거니와 넓은 논과 밭에서 나는 농산물이 풍성하다. 특별한 먹거리인 밴댕이 요리, 새우젓, 강화순무, 갯벌장어, 모시조개, 속노란 고구마, 약쑥떡 등을 먹어보거나 구입할 수 있다.
풍물시장 1층에 가면 강화도 대표 반찬인 순무김치를 직접 버무리는 모습을 보며 시식을 할 수 있다. 순무김치는 담글 때 새우와 다시마, 멸치로 만든 육수를 붓는다. 일반 무와 달리 순무는 단단해서 수분이 없기 때문에 육수를 부어준단다. 육수는 수분이 없는 순무를 제대로 익혀주고 시원한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고. 순무는 생김새도 재미있다. 크고 뭉툭한 팽이 모양에 색깔은 자줏빛이다. 신기한건 순무를 바다 건너 김포에서 키워도 잘 자라지 않는단다.
2층 식당가로 올라가면 50여 곳의 식당이 모여 있는데, 반 이상이 밴댕이회와 무침을 판다. 순대국밥과 찐빵, 칼국수를 파는 집도 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물고기 밴댕이는 강화6미(밴댕이 낙지 깨나리 동어 숭어 장준감)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물고기다. 조선시대엔 ‘소어’라 했고 궁중의 식자재를 담당하던 사옹원 아래에 소어소(蘇魚所)를 두어 관리할 정도로 귀한 물고기였다.
밴댕이는 횟감보다는 구워 먹거나 무침으로 먹는다. 잡은 지 오래된 것은 젓갈을 담근다. 갖은 양념으로 새콤달콤 버무려낸 밴댕이 회무침을 먹었다. 내겐 밥도둑이 아니라 술도적이었다. 밴댕이회와 순무김치에 인삼 막걸리를 곁들인 ‘강화삼합’이 나올만했다. 막 뜸을 들인 밥과 상추쌈에 밴댕이 젓갈을 걸쳐 먹어도 잊기 힘든 맛이 난다.
시골장터의 정겨움이 고스란한, 강화풍물오일장
오일장터를 가득 메운 좌판과 노점에 앉아있는 아주머니, 할머니는 반(半)상인이다. 물건 파는 일은 제쳐두고 사람들과 얘기만 하는 분들도 있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저렴한 가격에 먹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장을 보러 온 주부들, 장터와 사람 구경하러 나온 어르신들, 아이들 손을 잡고 맛집 탐방 온 사람들···
강화도 주민들이 다 나온 듯 너른 장터가 시끌벅적하다. 몇 푼 돈 보다 사람이 그리워 채소, 호박 몇 덩이 가지고 나와 장터 구석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들도 빼놓을 수 없는 오일장 지킴이다.
강화도의 대표 별미 갯벌장어구이는 숯불에 굽는 소리와 기름진 냄새로 단연 눈길을 끈다. 갯벌에서 잡은 뱀장어가 아니라 양식장에서 키운 녀석들을 일정 기간 갯벌에 놓아 기른 거란다. 먹이가 풍성한 갯벌의 영향일까? 강화도 갯장어는 일반 강물에서 가두리로 양식되는 장어에 비해 비교적 크고 굵은 게 특징이다.
오일장터에서 파는 강화 약쑥떡도 꼭 먹어봐야 한다. 정말 약으로 써도 될 만큼 쑥 향이 진하다. 콩고물을 묻힌 쑥떡도 맛있지만 개떡이라 부르는 것이 쑥 향을 오롯이 느끼기에 좋다. 강화도 사람들은 바닷가에 붉게 피어나는 해초 나문재도 나물로 무쳐 먹는다. 상인 아주머니는 ‘헤이’라고도 부르는 나문재는 때깔까지 예뻐 입맛을 돋우어 준다. 해안 염전에서 자라나는 함초와 함께 바닷가 갯벌에서 나는 귀한 먹거리다.
오일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오일장은 서양의 대형 할인마트처럼 대량으로 상품이 거래되는 곳이 아니라 5일간의 일용할 양식과 물품을 장만하던 소박한 유통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강점은 서구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 간의 교류와 정(情)이라는 무형의 물품이 함께 유통된다는 것.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교환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처의 소식을 듣거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광장이요 소통의 공간이었다. - 정영신 <전국 오일장 순례기>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