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인터넷 지도에서 백령도(인천광역시 옹진군)를 찾아보면 섬의 위치가 먼저 눈길을 끈다. 서해에서 가장 서쪽이자 가장 북쪽에 있는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큰 섬으로, 동해에 울릉도가 있다면 서해엔 백령도가 있는 셈이다. 북한 땅인 황해남도 장산곶에서 불과 15km 거리로 해병대가 주둔해 섬을 지키고 있다.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행 쾌속선을 타고 4시간 동안 뱃길을 달렸다. 가는 길에 소청도와 대청도에 들르고 짙푸른 바다위에 그림처럼 떠있는 작은 섬들을 구경하느라 긴 뱃길이 덜 지겹다. 해무가 둘러쳐진 섬은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여 몽환적이었다. 원래 곧장 가면 2시간 걸릴 거리인데 같은 위도에 북한 땅이 있어서 인천에서 공해로 빠졌다가 백령도로 간단다.
* 교통편 :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하루 2번 출항 (오전 8시 50분, 오후 1시)
섬 내 순환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배편+렌터카+숙박)도 많다.
* 여행정보 : www.baengnyeongdo.com (032-899-3510)
사람의 발길과 손길을 덜 탄 덕택일까. 백령도는 서해의 해금강, 신이 만든 절경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대자연이 빚어낸 멋진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19년 환경부에서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국가지질공원(National Geoparks of Korea)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으로 이를 보전하고 교육, 관광 사업에 활용하기 위하여 환경부장관이 인증한 공원이다.
백령도에는 과거 비행기가 뜨고 내렸을 정도로 드넓은 사곶 해변, 장촌 포구의 용틀임바위, 진촌리 현무암분포지, 남포리 콩돌해변, 두무진 등 섬 곳곳에 아름다운 지질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지질공원은 아니지만 용기원산 자연동굴과 고전소설 <심청전>의 무대 심청각도 빼놓을 수 없다.
백령도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냉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백령냉면은 반골(소꼬리뼈)과 잡뼈를 함께 우린 육수 국물을 낸 고소하고 뽀얀 육수와, 쫄깃하면서도 질기지 않은 메밀면의 식감이 특징이다. 이는 북한 황해도식으로 남북 분단 이전에 백령도는 황해도에 속했다. 여기에 백령도의 특산물인 까나리 액젓이 곁들여져 간을 맞춘다. 슴슴한 맛의 평양냉면과는 전혀 다른 냉면이다.
백령도의 지질공원 가운데 두무진(백령면 연화리)을 최고로 뽑고 싶다. 두무진(頭武津)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우뚝 선 바위의 모습이 장수가 모여 앉은 형상과 같다’하여 유래한 것인데 주변 풍경을 보니 그럴듯하다. 예부터 해적의 출입이 잦았으며, 1904년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러일전쟁 땐 일본군의 병참기지였을 정도로 요충지였다.
국가문화재 명승 제 8호로도 지정되어 있는 두무진 지질공원은 두 가지 관광코스가 있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인 '두무 비경길'과 포구에서 작은 배를 타고 해안가로 떠나는 유람선 투어다. 먼저 두무 비경길을 걸어보기 위해 포구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나지막한 산속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능선에 오르면 지척에 북한 땅 장산곶이 보이고 통일을 기원하는 비석을 만나게 된다. 능선 너머 해변으로 내려가다 보면, 선대암 형제바위 등 돌기둥과 기암괴석이 불쑥불쑥 나타나 탄성을 부른다. 빨리 지나가면 갈수록 손해 보는 길이지 싶어 발길이 절로 느려졌다. 왜 이곳이 비경길인지 알만했다.
파도가 셀 수 없는 시간동안 들이치면서 바위에 만든 큰 굴들은 안온한 쉼터처럼 아늑해서 들어가 숨고 싶을 정도였다. 파도가 오가면서 ‘자그락 자그락’ 소리를 내는 작은 해변에 주저앉아 맑디맑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쉬었다. 보드라운 모래가 발을 간질였다. 멀리까지 오느라 쌓였던 피로가 몸 밖으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갈매기들이 사람들 곁을 걸어 다니고, 여러 맛집과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있는 두무진 포구에서 수시로 출항하는 유람선을 탔다. 두무진 해안은 수 억 년 동안 바다와 파도가 조각한 해안절벽과 기기묘묘한 거석들이 4km나 되는 해안선을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돌기둥과 기암괴석, 병풍처럼 펼쳐진 바닷가 수직절벽··· 상상하기 어려운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주상절리 등 천혜의 비경이 펼쳐진다. 무려 10억년 세월이 빚은 신비한 풍광이다.
코끼리바위 병풍바위 우럭바위 등 서해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웅장한 바위들이 마치 사열을 받는 것처럼 바닷가에 위풍당당하게 도열해 있다. 보는 방향과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그 느낌이 달라 경이로웠다.
유람선 갑판에 나와 두무진 해안가 감상을 하던 승객들이 갑자기 탄성을 쏟아냈다. 대자연이 빚은 절경에 생명의 신비까지 더한 존재 점박이 물범의 출현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동물로 몸에 점이 많아 그런지 더 친근하고 정감이 간다. 백령도는 국내 제1의 점박이 물범 서식지란다.
유람선과 관광객들에게 익숙한지 개의치 않고 물질을 하거나 넓적한 바위에 누워 쉬고 있다. 포유류인 물범은 먹이를 잡거나 이동할 때만 바다에 들어가고 대부분의 시간은 물 밖에서 보내는 동물이라 발견하기 쉽다. 광해군 5년(1612년)에 백령도로 유배 온 이대기는 두무진의 풍경에 매료되어 <백령도지(白翎島誌)>에 이렇게 적었단다.
“이 세상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두무진의 경치는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