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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Apr 20. 2022

소도시 여행을 떠나온 듯한 곳, 신사동 미남 이발관

서울시 은평구 신사동 

신사동이란 동네이름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미남 이발관 / 이하 ⓒ김종성

서울 6호선 전철 새절역(3번 출구)에서 나와 ‘내를 건너 숲으로 도서관’과 신사근린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골목 양편에 아담하고 예쁜 가게들이 눈길을 끈다. 동네이름 신사동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미남 이발관도 이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이색적인 상호와 빨간색 파란색 흰색이 어울려 빙글빙글 돌아가는 싸인볼 때문인지 눈에 띄는 곳이다. 거리를 지나다 이발소가 표석처럼 남아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고, 어디 멀리 소도시에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이발관 안팎이 어찌 보면 촌스럽고 또 어찌 보면 복고풍의 멋스러운 느낌도 난다 싶더니 이유가 있었다. 서울시에서 소규모 점포에 지원하는 ‘우리동네 아트테리어’ 사업의 혜택을 받았단다. 지역 예술가와 소상공인 점포를 연결해 점포 인테리어, 리모델링, 브랜드 개발을 도와주고 있다. 이발관 유리창에 하얀 색상의 암막커튼을 설치하고 레트로 느낌의 새로운 로고와 만화체로 이발관을 새롭게 꾸몄다. 색색의 싸인볼과 어울리는 빨간색과 흰색 포인트의 차양도 산뜻하다. 

45년 경력의 능숙한 이발사


60대 중반의 이발사 최양술씨는 오래된 골목에 예쁜 가게들이 생겨 거리에 활기가 돌고, 단골들 또한 이발관이 예전보다 깔끔해졌다고 좋아한단다. 푹신한 쇼파에 앉아 진한 커피 믹스를 마시며 기다리는데 왠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이발사의 능숙한 가위질에 이어 면도, 머리감기, 염색까지 혼자서 다 하는데 손님도 보는 사람도 여유롭게 느껴진다. TV에 나오는 사건사고와 뉴스를 보며 함께 기다리는 동네 아저씨,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정치 토론을 하는 시간도 흥미롭다.   


이발사의 반평생이 직접 작명했다는 미남 이발관에 오롯이 묻어있다. 45년 경력의 이발사 아저씨 고향은 전남 장성. 1970년대 고등학교 졸업 후 먹고 살 일이 막막해 서울 북가좌동에 상경해서 처음 배운 기술이 이발이었다. 한동안 가위질은커녕 매일 새벽에 일어나 양 어깨에 물통을 지고 물을 떠오는 등 옛 도제식 교육(피고용인이 가르치는 사람과 스승과 제자 관계를 맺고 일을 배우는 제도)을 받았단다. 아저씨 이야기를 듣다보니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사막의 나라 중동까지 가서 열심히 일했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뭉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랑의 이발사 최양술 감사장과 상패


청년시절 고향을 떠나 힘들게 일을 배우며 이발 기술을 닦아 자리를 잡은 아저씨는 동네 기초생활수급자나 거동하기 힘든 홀몸 노인 등을 대상으로 이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발소를 찾아오는 동네이웃사람들 덕분에 먹고 살게 됐으니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단다. 1990년대부터 20년 넘게 이발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발관이 있었던 서대문구와 현재의 은평구에서 받은 표창장과 감사패 등이 한쪽 벽에 자랑스레 걸려 있다.


이발사와 미용사들이 모여 활동하는 이·미용 봉사모임이 있다니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싶다. 표창장에 적혀있는 글대로 ‘재능기부천사’라 불릴만하다. 몸이 불편해 이발관에 못가는 장애인에게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은평재활원장이 수여한 감사장의 타이틀은 '사랑의 이발사 최양술' 이라고 적혀있어 미소가 지어졌다. 


아저씨가 이발봉사를 하는 이유나 보람은 거창한데 있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들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의 머리카락을 손질해드리고 나면 머리는 물론 표정까지 환해진 모습이 큰 보람이란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봉사를 그만둘 수가 없다고. 스스로도 삶의 활력을 얻었다고 하니 남을 돕는 건 나 자신을 돕는 것이겠다. 

수선의 흔적이 훈장처럼 배여 있는 이발기구
옛 이발기구 바리깡

유리 거울 아래 가지런히 놓인 이발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용이 떨어지면 사람도 쉽게 버리는 시대, 수선의 흔적이 훈장처럼 배여 있는 이발기구들에 절로 눈길이 머물렀다. 이발관 의자 오른편에 붙어있는 개폐식 작은 재떨이도 이채로웠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예전엔 이발을 하며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단다. 숨겨놓은 보물인양 서랍 깊은 곳에서 꺼내 보여준 오래된 이발 도구 가운데 ‘바리깡’도 있었다.


바리깡의 어원은 프랑스의 'Bariquand et Mare' 라는 회사로, 이 회사의 제품이 일본에 1883년경 소개되면서 회사명 자체가 이발기의 명칭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한다. 머리칼을 짧게 자르는 데 특화된 도구로 원래 양털 깎는 기계를 개조해 만든 것이란다. 한 손으로 사용하는 바리깡 외에 1960년대 이전에 사용했다는 ‘양손용 바리깡’을 시범을 보여 주셨다. 


요즘 서울시에서 매년 지정하는 ‘오래 가게’가 떠올랐다. ‘오래 가게’는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며 가게만의 정서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서울의 노포(老鋪, 오래된 가게)를 발굴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다. 부러 찾아가고 싶은 좋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미남 이발관을 나만의 ‘오래 가게 1호’로 정하고 혼자 좋아서 웃었다.


ㅇ 위치 : 서울시 은평구 증산로 17길 60 (매주 수요일 휴무)

ㅇ 문의 : 010-8296-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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